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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큐브 저우 리 개인전···한 송이 꽃서 피어나는 우주

매일경제 김유태 기자(ink@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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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큐브 저우 리 개인전···한 송이 꽃서 피어나는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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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시적 흐름 속 생멸하는 꽃
꽃이란 형태 통해 우주 담아내
“꽃의 삶과 죽음은 한번의 윤회”


‘The world in a flower: Metamorphosis No. 2’(150x130cm). [화이트큐브]

‘The world in a flower: Metamorphosis No. 2’(150x130cm). [화이트큐브]


경전 ‘화엄경’엔 이런 문장이 있다. ‘한 송이 꽃 속에 하나의 세계가 있고, 한 잎 속에 한 부처가 있다.(一花一世界, 一葉一如來).’ 여기서 말하는 ‘세계’는 정교한 계층구조를 지닌 우주를 뜻한다. 꽃 한 송이가 우주의 축약본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뿐인가. 도교에서도 ‘꽃은 스스로 피어날 뿐, 결코 억지로 피지 않는다’고 했으니, 동양의 오랜 정신 속에서 꽃은 우주를 응결하는 하나의 사물이었다.

중국 작가 저우 리의 새 작품들은 꽃을 통해 우주를 응시하는 행위일 수 있다. 그는 꽃을 그렸지만, 꽃을 그린 게 아니라, 꽃이라는 형태를 통해 하나의 미시우주를 우리에게 선보인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갤러리 화이트큐브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저우 리 개인전 ‘한 송이 꽃 속에 우주가 피어나다’는 이런 감각을 사유케 하는 전시다.

화이트큐브 서울의 첫 여성 개인전의 주인공이기도 한 저우 리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은 14점. 분홍빛과 푸른빛의 꽃들을 근거리에서, 원거리에서 바라보는 작품들이다. 실제에 가까운 사실적인 묘사는 그의 작품의 주안점이 아니다. 탁자 위에 놓인 정물로서의 꽃이 아니라, 어떤 비가시적인 흐름 속에서 피고 지는, 지고 피는 시간을 감각하게 만드는 강렬한 힘 때문이다.

가령 ‘The world in a flower: Metamorphosis No. 2’는 꽃잎 같기도, 성운(星雲) 같기도 하다. 푸른 우주에서 별의 요람이자 별의 무덤인 성운은, 공원의 한 귀퉁이에서 개화했다가 낙화하는 식물성과 유관하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 전시장의 감상자는 꽃을 통해 우주를 보게 되는 환시를 마주한다.

‘Mandala No.9’(180x180cm). [화이트큐브]

‘Mandala No.9’(180x180cm). [화이트큐브]


전시장에서 만난 저우 리 작가는 “꽃잎에는 우주가 담겼다. 꽃잎은 자연의 일부이지만 우주의 일부이기도 하다”며 “꽃이 죽고 다시 살아나는 과정은 일종의 윤회와 같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상 속에 있는 ‘나’라는 존재를 떠올릴 때, 상의 바깥에서 나를 봐야 하는가, 혹은 상의 안쪽에서만 나를 보는가에 따라 사유는 달라진다. 날 제대로 바라봐야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장에 소개된 작품들은 종교적 색채를 전면화하진 않지만, 작품 ‘Mandala No.9’만큼은 종교색이 짙다. 제목부터가 만다라이기도 하지만, 그려진 방식의 독특한 의미 때문이다.


만다라는 수행의 도구로서, 정교한 색채와 기하학적인 구조를 통해 그렸다가 그림이 완성된 후 손으로 ‘쓸어버리는’ 과정이 수반된다. 저우 리의 작품들 역시 마치 다 그린 그림을 무화(無化)하겠다는 듯이, 작품 곳곳이 백색의 스프레이가 뿌려져 있다. 그 과정은 탄생과 소멸이 반복되는 우주적인 흐름을 닮았다.

1969년 중국 후난에서 태어난 저우 리 작가는 선전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광저우미술대학을 종업했고, 8년간 프랑스에서 활동한 바 있다.

전시는 8월 9일까지.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저우 리 작가. [화이트큐브]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저우 리 작가. [화이트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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