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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쿠폰 대란·'좀비딸' 흥행이 영화관과 정부에 안긴 숙제 [현장에서]

이데일리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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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쿠폰 대란·'좀비딸' 흥행이 영화관과 정부에 안긴 숙제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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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딸' 할인쿠폰 최대 수혜작…개봉일 43만 돌파
"정부 쿠폰이 극장 관심 환기…화제작과 맞물려 시너지로"
극장 가치 재확인…자구책과 함께 정부 지속 지원 이어져야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영화 티켓값이 비싸기도 하고, 볼 만한 것도 딱히 없다고 생각했는데 할인쿠폰으로 어제(31일) ‘좀비딸’을 보러 갔다. 극장에 사람이 이렇게 바글바글한 건 오랜만이더라. 조금만 기다리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작품을 볼 수 있으니 극장 가는 게 비효율적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잊고 지낸 극장의 재미를 간만에 느낄 수 있었다.”(회사원 하용석(37·가명)씨)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지난 31일 오후 7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인근의 한 영화관. 평일이었지만 ‘좀비딸’, ‘전지적 독자 시점’(전독시), ‘F1 더 무비’(F1) 등 신작들을 보러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침체의 늪을 겪고 있던 영화관들이 정부가 배포한 영화할인쿠폰을 계기로 오랜만에 기지개를 켰다는 반응이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오전 10시부터 전국 주요 영화관들에 영화관 입장권 6000원 할인권 450만 장을 배포했다. 민생 회복 및 영화관 소비 진작을 위해 올해 추가경정예산 271억 원을 들여 추진한 사업이다.

여름 휴가철 성수기와 폭염, 국내외 주요 기대작들의 개봉과 맞물려 정부 할인쿠폰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작품이 탄생했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조정석 주연 ‘좀비딸’(감독 필감성)이다. ‘좀비딸’은 개봉일 43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 톰 크루즈 주연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을 제치고 올해 개봉작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경신했다. 천만 영화 ‘극한 직업’의 기록까지 제치며 역대 한국 코미디 영화 최고 오프닝 기록도 다시 세웠다.

정부가 발급한 할인쿠폰은 통신사 멤버십을 제외한 경로·장애인 우대, 문화가 있는 날 할인 등과 중복 적용 가능하다. ‘좀비딸’이 개봉한 30일은 영화관 반값 할인이 적용되는 ‘문화가 있는 날’로, 정가 1만 4000원의 2D 영화를 7000원 반값 할인과 함께 정부 쿠폰 6000원 할인까지 적용받아 1000원에 관람할 수 있는 날이었다. 이날 극장을 찾은 전체 작품 관객 수는 총 83만 명. 2019년 7월 문화가 있는 날(134만 명) 관객 수엔 못 미쳤지만, 코로나19 이후 ‘문화가 있는 날’ 영화관을 방문한 관객 수 최다 기록을 새롭게 썼다.


이 현상은 영화관이 가격을 다시 일제히 내리면 예전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는 의미를 시사하는 것일까. 실제 쿠폰 소진량을 살피면 그렇지만도 않다.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에 따르면, 지난달 30일까지 각 영화관들이 할인쿠폰을 소진한 비율은 평균 23%로 30%에 채 못 미친다. 의외의 결과에 대해 한 영화계 관계자는 “쿠폰을 배포한 시기 ‘좀비딸’, ‘F1’ 등 파급력있는 화제작들이 때맞춰 개봉한 덕에 시너지가 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소진량이 아직 많지 않은데도 뜻깊은 성과를 거둔 건 1차적으로 ‘좀비딸’, ‘F1’ 등 주요 작품들이 관객들의 영화적 체험 욕구를 충분히 자극했다는 의미”라며 “여기에 정부의 시의적절한 지원이 티켓값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해소해 관객들의 관심을 환기하는데 일조했다”고 덧붙였다.


24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한 시민이 키오스크 기계를 통해 예매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24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한 시민이 키오스크 기계를 통해 예매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아이맥스(IMAX), 4DX, 광음시네마, MX4D 등 특별관들도 모처럼 활기를 얻었다. 쿠폰이 1만 6000원~2만 7000원에 달하는 특별관 가격 부담을 줄여주면서 ‘기왕 싸게 보는 김에 특별관에서 제대로 된 경험을 하자’는 관객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개봉 6주차에도 흥행 화력이 뜨거운 ‘F1’이 대표 사례다. ‘F1’은 개봉 4주차 주말까지 좌석 판매율이 31.8%였으나 쿠폰이 발급된 후 5주차 주말 판매율이 42%로 급등했다. 2D는 여유 좌석이 많지만, 현재까지도 4DX·MX4D·광음시네마는 대부분 매진에 가까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30일을 기점으로 ‘F1’의 특별관 상영도 확대됐다.

지금의 상황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대에도 극장 영화의 가치와 수요는 여전하다는 것.

희망의 불씨를 조금이나마 더 살려보고자, 영화관들은 여러 자구책을 실천 중이다. 보다 쾌적한 영화적 체험을 위한 도전들이 이어지고 있다. 메가박스는 코엑스점 25주년을 맞아 전관을 특별관으로 리뉴얼했고, 관객들이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신규 특별관인 ‘르 리클라이너’, ‘MEGA|LED’를 도입했다. CGV는 4면 스크린X, 울트라4DX 등 자체 특별관을 강화하는 한편, 관객들의 접근성, 편의성을 높이고자 홈페이지 및 앱 시스템을 전면 개편했다. 롯데시네마 역시 최근 월드타워점에 음향특화관인 광음시네마의 10번째 상영관을 새롭게 오픈했다. 영화관 자체 단독 개봉 콘텐츠를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관측된다.

다만 이번의 반등이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부활로 이어지려면 업계의 목소리를 듣고 보폭을 맞추려는 정부의 관심과 정책적 노력도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할인쿠폰의 성과가 일회성이 아닌, 업계와의 더 폭넓은 소통, 지원으로 향할 신호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