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완화의료는 한국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도태의 길을 걷고 있다. 30개 가까운 대학병원이 밀집한 서울에서 2022년 고대구로병원이 호스피스 병동을 폐쇄한 이후 입원형 호스피스를 제공하는 대학병원은 서울성모·여의도성모·은평성모 병원 단 세곳뿐이다. 지방도 위태롭긴 매한가지다.
지난봄 호스피스·완화의료팀의 돌봄을 받는 60대 후반 남성 위암 환자가 임종 전날 병실에서 둘째 딸의 약식 결혼식을 함께했다. 사진 공개는 유족의 허락을 받았다. 필자 제공 |
오늘도 문전박대를 당했다. 우리의 방문이 몹시 불쾌했나 보다. 1인실 병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자 환자의 부인은 눈을 흘기며 어디서 왔냐 물었고, ‘완화의료팀’이라고 밝히자 그런 재수 없는 소리는 꺼내지도 말고 즉시 나가달라고 했다. 70대의 폐암 환자는 말기 진행에 심한 폐렴까지 겹쳐 이제 임종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배우자는 현실을 부정했다. 호흡이 더 불안정해지면 중환자실로 옮겨 기관삽관 뒤 인공호흡기가 달리는 연명의료를 받다가 임종을 맞이할 텐데 연명의료 계획서 작성이나 호스피스 상담 일체를 거부했다. 며칠 전 50대 여성도 비슷했다. 진단 당시부터 이미 4기였고 지역 대학병원에서의 항암치료에도 암은 간 전체에 거칠게 퍼져 황달이 온몸을 뒤덮었다. 담당의사가 치료 중단을 말하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서울 대형병원을 찾았다. 이곳 역시 이미 말기 상태임을 고지하고 단지 시간을 조금 늦추는 차원의 임상시험을 제안했다. 동시에 연명의료계획서 작성과 고통을 더는 완화의료 상담을 연결했다. 침착하게 설명을 들으려는 남편과 달리 환자는 욕을 내뱉듯 “내가 살려고 왔지 죽으러 왔어!”라며 한참 동안 거친 말을 쏟아냈다.
어떻게든 희망의 불씨를 키워 보려 대형병원까지 찾아온 환자와 가족들에게 되레 절망을 설명하는 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의사이다. 대한민국에서 말기 환자에게 호스피스를 얘기하면 저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흔하다. 거친 분노와 모진 말을 듣는 것은 내게는 익숙한 일이다. 호스피스는 전용 병동을 갖추고 완화치료와 임종까지 책임지는 ‘입원형’, 전용 병동은 없고 병실 방문을 통해 호스피스 준비를 돕는 ‘자문형’, 그리고 집에서 지내는 말기 환자를 방문 진료하는 ‘가정형’ 세가지로 나뉜다. 서울의 대형병원들은 대부분 입원 병동 없이 자문형만 운영한다. 대형병원이 호스피스 입원 병동을 만들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는 호스피스는 병원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신 장비를 통한 고가의 검사와 로봇 수술 등 첨단 치료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대기하고 있는 환자가 넘쳐나는데 더 이상 검사도 치료도 무의미한 말기 환자를 병원이 껴안고 있을 이유가 없다. 둘째는 첨단 의학을 통해 목숨 연장이 목표인 대형병원에서 임종 돌봄이란 그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 살려야 할 환자를 보기도 바쁜 대형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를 위한 노력은 일종의 자원 낭비이기에 요양병원이나 중소병원의 역할로 미룬다.
살기 위해 찾은 병원에서 죽음을 안내하는 의사를 만나는 것은 환자들의 말대로 정말 재수 없는 일이다. 특히 호스피스 입원 병동이 없는 이 병원에서 호스피스 안내를 받는다는 것은 치료받을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나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호스피스 안내를 잘 듣다가 환자와 가족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여긴 그럼 호스피스 병동이 없나요? 그래도 정이 들었는데 마지막을 여기서 보낼 수는 없을까요?”였다. 그때마다 나는 잠시 침묵 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다. 치료에 대한 희망을 품고 경남 통영에서, 전남 나주에서, 제주도에서 매달, 때론 매주 시간과 돈을 퍼부어 이곳을 찾았는데, 마지막이 되면 고개를 돌려 비정하게 외면하는 것이 대형병원의 민낯이다. 치료 종결 뒤 거주지 부근의 호스피스 병원을 소개받고도 미련이 남아 수시로 이곳 응급실을 찾는 환자도 많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서울 대형병원 암 환자라고 하면 중소병원에서는 진료를 꺼려하며 무조건 다니던 병원을 가라고 회피한다. 그래서 치료가 종결된 말기 환자들은 모든 곳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게되므로, 그들이 되돌아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게 대형병원의 큰 숙제이다. 마치 젖먹이 아이로부터 젖을 떼듯, 말기 환자에게 치료가 종결되었음을 최대한 친절하게 이해시켜 연을 떼게 하는 것이 병원이 내게 바라는 역할이다.
이렇다 보니 호스피스에 대한 환자들의 인식이 좋을 리 없고, 언제부턴가 대형병원에서 호스피스는 일종의 금기어가 되어버렸다. 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의사이지만 병원에서는 호스피스를 지우고 완화의료 의사로만 소개된다. 환자들의 거부감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이다. 환자와 가족들의 예민함을 의식해서 항암 주치의들도 내게 환자를 의뢰할 때 암성 통증 조절 전문가라고 에둘러 표현한다. 항암주사를 맞으러 왔는데 왜 호스피스 설명을 듣게 됐는지 어리둥절하는 환자와 가족들을 만나는 것은 내 흔한 일상이다. 이런 처지이다 보니 호스피스·완화의료를 배우겠다는 후학도 없고, 환자뿐 아니라 병원과 동료 의료인 모두에게 환영받지도 못한다. 이래저래 호스피스·완화의료는 한국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도태의 길을 걷고 있다. 30개 가까운 대학병원이 밀집한 서울에서 2022년 고대구로병원이 호스피스 병동을 폐쇄한 이후 입원형 호스피스를 제공하는 대학병원은 서울성모·여의도성모·은평성모 병원 단 세곳뿐이다. 그나마 대학병원을 대신해 호스피스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서울시 산하 공공병원들인데, 그 중심인 서울의료원 역시 지난 4월부터 호스피스 병동 운영을 중단했다. 지방도 위태롭긴 매한가지다. 울산 지역을 총괄하는 권역 호스피스기관이었던 울산대학교병원이 지난 6월 호스피스 병동을 폐쇄했다. 말기 환자 돌봄 대신 중증 환자 치료 병상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 호스피스는 사라져가고 있다.
“소비자가 옳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늘 하는 말이다. 민간병원이 대부분인 한국 의료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귀속되어 소비 주체인 환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경영을 한다. 병원들은 일찌감치 환자를 의료 소비자로 인식하고 ‘고객님’이라 부르며 서비스 개선을 위해 앞다퉈 ‘고객 만족팀’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에는 보험이 되지 않는 비급여 치료와 고가의 검사, 효과가 불확실한 임상시험을 병원의 장삿속이라고 비난했지만, 이제 이들은 환자들이 서울 대형병원을 찾는 이유이자 지역 병원들과의 차별성이 되었다. 고객들은 다른 곳에서 팔지 않는 상품을 원하고, 시간과 돈을 기꺼이 투자한다. 대형병원이 호스피스에서 멀어진 이유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건 인간은 예외 없이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며, 병원은 한국인 넷 중 셋이 죽음을 맞는 가장 보편적인 임종 장소라는 점이다.
내가 담당했던 60대 후반 남성 위암 환자는 1년 반의 투병 끝에 올해 2월 처음 호스피스를 권유받았다. 하지만 두달 뒤 둘째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계속해서 치료를 이어가 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암은 멈추지 않았고 주치의는 더 이상은 어렵다며 내게 환자를 의뢰했다. 기대가 무너진 상황에서 환자와 가족들은 오히려 침착했다. 항암보다는 환자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판단하였다. 여지껏 버텨줘서 고맙다며 사랑과 감사의 표현을 반복했다. 호스피스 병원으로 전원을 기다리던 중, 호흡이 약해지고 의식이 흐려져 결국 임종실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이었던 둘째 딸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호스피스·완화의료팀은 병실에서 약식 결혼식을 진행했고, 다음날 그는 평온히 눈을 감았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는 사후 장기기증을 원했으나 말기 암 환자는 어렵다고 하자, 시신기증 서약을 했다. 죽음 앞에서 고인이 남긴 태도는 큰 울림이 있었다. 보통 사별 후 남겨진 가족들은 오랫동안 우울감에 빠지고, 치료중단 시기를 놓쳐 중환자실 연명의료까지 간 경우엔 심한 트라우마로 고인을 기억하는 것조차 힘들어 한다. 하지만 이 가족은 달랐다. 수시로 가족들이 모여 울고 웃으며 고인의 삶을 추억했고, 고인의 유지를 기려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에 기부도 했다.
오늘도 60대 후반의 여성 말기 암 환자가 응급실로 내원했다. 한달 전 호스피스 상담을 했던 분이다. 지난 한달간 어떻게 지냈느냐 물으니 마약성 진통제로 통증이 많이 줄고, 항암치료 중단 뒤 오히려 기운이 회복되어 가족여행을 다녀왔고, 고향에 내려가 친척, 친구들과 작별 인사도 나누었다고 했다. 사흘 전부터 먹지 못하고, 다시 기운도 빠지고, 통증도 심해져서 정말 때가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내게 말했다. “선생님, 이제 호스피스로 갈래요. 후회는 없으니 마지막까지 아프지만 않게 해주세요.” 옆에서 남편은 이러다가도 다시 나을 수 있지 않느냐고 연신 물었다. 나는 답했다. “저는 기적을 믿습니다. 그런데 지난 한달이 기적 같은 시간이었네요. 이제 아프지 않게 해드릴게요.” 인간에게 노화와 질병은 운명이고 탄생과 함께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 인생이다. 생에 대한 의지뿐만 아니라 삶의 마무리에 대한 철학을 갖추는 것, 우리에겐 그것이 필요하다.
박중철
연세암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 없는 삶을 지키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의사이자, 인간 질병의 생물학적 측면을 넘어 사회·문화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탐구하는 인문사회의학 박사이다. 주된 관심사는 젊음과 생동력을 추종하며 삶의 완성인 죽음의 가치를 소외시킨 한국인들이 겪고 있는 ‘생’(生)의 방향 상실이다. 저서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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