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서울 강남구의 대형 입시 학원 앞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외국인 '다크 투어' 참가자들. /장경식 기자 |
“당신도 지옥 같은 삶을 살았나요?” 스코틀랜드인이 물었다. 서울 강남을 거닐며 한국 사회의 현실을 소개해 준다는 외국인 대상 투어 상품을 동행 취재하던 중이었다. 3시간 투어에 4만5000원. 관광객은 모두 금발 서양인이었다. 이들이 가장 많이 탄식한 곳은 강남의 대형 입시 학원 앞이었다. 하루 15시간씩 책상에 갇히는 한국 학생들 일상이 소개된 뒤, 돌연 기자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 ‘헬조선’에서 살아온 경험담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이방인들에게는 낯선 풍경이었을 것이다. 성형외과로만 가득 찬 고층 빌딩, “입주하려면 수백만 달러를 내야 한다”는 압구정의 허름한 아파트, 어딜 가도 무수한 모텔은 다른 나라에선 흔히 볼 수 없는 것이다. 청년들이 구직 면접을 위해 성형을 한다거나 커플들이 집 살 돈이 없어 모텔로 간다는 식의 왜곡되거나 과장된 설명도 잇따랐다.
이 외국인 투어에 대한 기사가 나간 뒤 독자 반응은 둘로 갈렸다. “부끄러워도 대부분 현실인 걸 어쩌겠느냐”와 “굳이 나라 이미지를 망칠 필요가 있느냐”다. 내심 후자에 가까운 마음을 품고 취재를 시작했다. 또 혹시나 엉터리 해설을 늘어놓을까 싶어 투어 내내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일부 자잘한 오류를 빼면 투어가 보여준 한국의 현실을 마냥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강남을 ‘비극의 현장’으로 만든 요인은 집값이다. 의식주(衣食住)에서 주거는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됐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이 ‘N포 세대’를 양산하고, 성공을 향한 무한 경쟁으로 청년들을 몰아넣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국민 행복 지수는 낮고, 청소년 자살률은 가장 높은 수준이다.
투어가 끝나고 13세 아들을 둔 한 호주인은 “한국의 이면을 제대로 봤다”고 말했다. 호주 학생들은 오후 2~3시면 하교해 뛰어놀고 주말마다 여행을 간다고 했다. 명문 대학에 가려 목숨 걸고 공부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도 했다. 찾아 보니 호주의 국민 행복 지수는 OECD 평균치를 웃돌았다. 장강명 소설 ‘한국이 싫어서’ 속 주인공이 경쟁주의와 외모 지상주의에 지쳐 향한 곳도 그 나라다. 그에겐 한국이 지옥처럼 보일 수도 있겠거니 싶었다.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한강공원이었다. 우리가 자랑하는 ‘한강의 기적’을 소개했지만, 관광객들은 “비극적인(tragic)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기적의 이면에는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불안과 불행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관광 상품은 역사적 재난·고통의 현장을 찾는 여행인 ‘다크 투어’라 할 수 있다.
다크 투어 본연의 목적은 비극을 되새기며 앞날을 위한 교훈을 얻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가 주목한 번영을 일궈냈다. 그러나 동시에 외국인들이 경악할 만한 어두운 그림자도 낳았다. 더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 자신을 되돌아봐야 할 때다.
[김도균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