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담은
포레 오페라 ‘페넬로페’ 공연
원작 비틀고 파격 해석 화제
韓소프라노 이선우도 출연
베르디 ‘군도’ 주인공 열연
10분 넘게 커튼콜 이어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담은
포레 오페라 ‘페넬로페’ 공연
원작 비틀고 파격 해석 화제
韓소프라노 이선우도 출연
베르디 ‘군도’ 주인공 열연
10분 넘게 커튼콜 이어져
독일 뮌헨 중심가에 위치한 국립극장에 무지개가 떴다. 보통 7~8월이면 문을 굳게 닫고 휴가를 떠나거나 해외 투어에 나서는 다른 유럽 극장과 달리, 이곳의 7월은 5주 동안 매일같이 세계 최고 수준의 오페라 공연을 올리는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로 북적인다. 특히 올여름은 축제 개최 150주년을 기념해 특별 설치된 현대미술 작가 우고 론디로네의 ‘꿈과 드라마(Dreams and Dramas)’가 유서 깊은 극장 지붕 위를 화려하게 밝혔다. 하늘과 땅을 잇는 듯 신비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지개가 올해 축제의 대주제인 ‘신화’를 은유한다.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은 1875년 첫 회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진 세계 최고(最古)의 오페라 축제 중 하나다. 독일 남부의 경제적 중심이자 맥주로 유명한 10월 옥토버 페스트 외에도 도시를 상징하는 역사를 자랑한다. 축제의 거점인 뮌헨 국립극장은 주빈 메타, 페터 슈나이더 등 세기의 마에스트로들이 음악감독으로 거쳐 간 바 있다. 또 19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 바그너가 ‘트리스탄과 이졸데’ ‘라인의 황금’ ‘발퀴레’ 등을 초연한 무대다. 매년 바그너, 모차르트, R.슈트라우스 등 독일어권 작품을 중심으로 지난 시즌 대표작들을 다시 선보인다.
올해 축제에서 이 쟁쟁한 작품들 사이로 주목받은 건 단연 프랑스 작곡가 포레의 ‘페넬로페’였다. 뮌헨에서의 초연이자, 세계적으로도 자주 상연되지 않는 작품이라 더 이목을 끌었다. 고대 그리스 신화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중 트로이 전쟁에 나갔다가 20년 만에 귀환한 영웅 오디세우스와 정절을 지키며 그를 기다린 아내 페넬로페의 재회를 다룬다. 포레가 바그너의 음악극에서 영향받아 남긴 유일한 오페라로, 1913년 첫선을 보인 바 있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이번 축제 개막식에서 이 작품을 콕 집어 “유럽 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완벽한 정수”라고 찬사를 보냈다.
지난 21일 뮌헨 프린츠 레겐텐 극장에서 이 작품은 핀란드 여성 지휘자 수잔나 말키와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수준급 연주로 관람객을 맞았다. 2021년 오페랄리아에서 1등을 거머쥔 러시아 출신 메조소프라노 빅토리아 카르카체바는 극에 어울리는 무게감 있는 음색에 안정적인 고음을 선보였다. 또 다른 주역, 오디세우스(율리시스) 역의 미국 테너 브랜든 요바노비치는 영웅적이면서도 풍부한 음색과 존재감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조연 출연진 중에선 구혼자 안티노우스 역을 소화한 가이아나 출신 테너 로익 펠릭스의 활약이 돋보였다. 우리나라 소프라노 이선우도 페넬로페의 시녀 중 한 명인 멜란토 역으로 열연했다.
연출은 원작을 비틀고 뒤집어 인간의 내면, 젠더 권력과 폭력에 관한 현대적 해석을 가미했다. 독일 연출가 안드레아 브레트는 연극적 서사보다는 시각적 이미지에 집중했다. 그리스 신화를 연상케 하는 흰 대리석상, 활을 당기는 여성 곡예사, 우에서 좌로 움직이는 칸막이 무대 등의 볼거리가 있긴 했지만, 출연진은 극히 제한된 정적인 움직임만 수행했다. 극의 전개도 연기나 연출이 아닌 대사로만 전달됐다. 예컨대 2막 내용은 오디세우스가 거지꼴을 하고 귀향해 페넬로페 주변의 구혼자들을 처단하려는 계획을 꾀하는데, 정작 무대 위 오디세우스는 멀끔한 흰 정장 차림에 고뇌하는 연기를 펼쳤다.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특히 테너 요바노비치 외에 또 다른 배우까지 2명이 무대에 동시에 존재하는 분열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오랜 고립과 고통을 겪은 인간 내면과 관계의 복잡성을 드러냈다. 또 고대 서사시 속에선 오디세우스가 활시위를 당겨 구혼자 남성들을 처단하지만, 이번 연출에서 활은 무대에 따로 등장한 여성 곡예사가 당기고 오디세우스는 이방인으로 남았다. 수많은 남성을 뿌리치고 헛간에서 바느질하며 남편을 기다리는 페넬로페의 행동은 희롱과 시선에 순응하다 활력을 잃은 시녀들과 대비를 이뤄 주체적으로 묘사됐다.
이 밖에도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은 베르디 ‘군도(도적떼)’, 슈트라우스 ‘다나에의 사랑’, 바그너 ‘로엔그린’ ‘라인의 황금’ 등 국내에선 접하기 어려운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군도’는 프리드리히 실러 원작에 베르디가 음악을 붙여 1847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형제간 갈등과 배신, 영웅이 되고자 했던 주인공 카를로의 타락과 비극을 다룬다. 특히 뮌헨 국립극장에서 21일 선보인 공연은 카를로의 연인이자 비극적 최후를 맞는 아말리아 역을 쿠바계 미국인 소프라노 리제트 오로페사가 맡아 섬세한 연기와 고음으로 뜨거운 관객 반응을 끌어냈다. 막이 완전히 내린 후에도 박수가 끊이지 않는 통에 10분 넘게 커튼콜이 이어졌다. 뮌헨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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