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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정신을 유지하려 얼마나 아팠을지...’ 빈센트 반 고흐<br>[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조선일보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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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정신을 유지하려 얼마나 아팠을지...’ 빈센트 반 고흐<br>[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서울맑음 / -3.9 °
1890년 7월 29일 37세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미국 포크 가수 돈 매클레인 노래 ‘빈센트(Vincent)’를 먼저 듣는다.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별이 별이 빛나는 밤에/ 당신의 팔레트를 파랑과 회색으로 칠해봐요

Look out on a summer’s day/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어느 여름날의 밖을 내다봐요/ 내 영혼의 어둠을 아는 눈으로

Shadows on the hills/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언덕 위의 그림자들/ 나무와 수선화를 그려봐요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산들바람과 겨울 추위를 그려봐요/ 눈내린 듯 하얀 천의 터전 위에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이제서야 나는 이해해요/ 당신이 내게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제 정신을 유지하려 얼마나 아팠을지/ 그것들을 떨쳐버리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지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그들은 듣지 않을 거예요, 알려 하지도 않겠죠/ 아마 지금쯤 듣겠네요

[번역 ‘나무위키’]



돈 매클레인 노래 '빈센트'

매클레인은 1971년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삶과 작품에 영감을 얻어 노래 ‘별이 빛나는 밤’을 만들었다.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인 유화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면 매클레인 가사처럼 고흐가 “제 정신을 유지하려 얼마나 애썼을지” 느껴지는 것 같다. 노란 달과 별이 걸린 하늘에 하얗고 푸른 소용돌이가 거세게 물결친다.

고흐 그림 '별이 빛나는 밤'.

고흐 그림 '별이 빛나는 밤'.


고흐는 식민지 시기 조선인에게도 잘 알려진 화가였다. 조선일보 1930년 12월 8일 ‘근대 태서(泰西) 미술 순례’라는 기사에 작품 ‘해바라기’와 함께 고흐의 삶을 소개했다. ‘근대 태서 미술 순례’는 40회 연재한 시리즈 기사로 고흐는 24회째였다. ‘해바라기’를 한자식 표기로 ‘일향규(日向葵)’라고 썼다.

1930년 12월 8일자 석간 3면.

1930년 12월 8일자 석간 3면.

기사에 쓴 고흐의 삶은 현재 알려진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흐는 1853년 화란(네덜란드)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다, 미술상이었던 숙부에 이끌려 견습으로 헤이그, 런던, 파리로 다녔다, 독학으로 회화에 전심(專心)하고 1885년 파리로 와서 고갱과 세잔을 알게 되었다, 선배 화가로는 밀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화가로서의 생애는 짧았으나 불 같은 성정으로 작업에 열중했다, 작품 활동으로 말미암아 건강은 저항력을 잃고 정신은 피폐되어 드디어 발광(發狂)에 이르렀다, 아를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단총(短銃)으로 자기 생명을 뺏은 열정적이요 열광적인 화가였다, 세잔과 함께 불란(佛蘭·프랑스와 네덜란드) 신흥 예술의 선구자라고 했다.

고흐 그림 '해바라기'.

고흐 그림 '해바라기'.


양인자 작사 조용필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내래이션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구절처럼 고흐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작품 중 생전에 판 그림은 ‘아를의 붉은 포도밭’ 단 한 점뿐이었고, 동료 화가 고갱과도 불화했다. 정신 질환에 시달렸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파리서 열린 고흐 작품전 소식을 전한 조선일보  1972년 1월 22일자 5면.

파리서 열린 고흐 작품전 소식을 전한 조선일보 1972년 1월 22일자 5면.


사후엔 달라졌다. 그는 서양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반열에 올랐다. 동생 테오의 아내 요 반 고흐 봉허르가 애를 많이 썼다. 197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건립된 반 고흐 미술관은 유럽 미술 기행에 단골 코스가 되었다. 앞서 1972년 1월 파리에서 열린 고흐 작품 전시회는 대성황을 이뤘다. 신용석 조선일보 파리 특파원은 고흐 작품 212점이 파리에서 4월까지 열리는데 하루 6000명 관객이 몰리고 있다는 소식(1972년 1월 22일자 5면)을 전했다.

고흐 그림 '가셰 의사의 초상'.

고흐 그림 '가셰 의사의 초상'.


고흐의 작품은 경매에 나오면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리곤 한다. 1990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1890년 작 ‘가셰 의사의 초상’은 당시 최고가인 8250만달러(약 932억원)에 낙찰됐다. 일본 사업가 사이토 료에이가 샀고 이후 미국인 컬렉터에게 넘어갔다고 하는데 현재 그림 소재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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