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5일 경기 시흥시 SPC 삼립 시흥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대통령 오른쪽은 허영인 SPC그룹 회장.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손원제 | 논설위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5일 경기도 시흥의 에스피씨(SPC) 삼립 시흥공장을 찾았다. 크게는 격세지감, 좁게는 정권 바꾼 보람에 잠시 젖게 한 상징적 사례가 아닐까 한다.
에스피씨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발효된 2022년 1월 이후에만 3명이 숨지고 5명이 다치는 사고가 벌어진 상습적 중대재해 기업이다. 과로사로도 3명이 숨지는 등 ‘죽음의 공장’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2022년 10월과 2023년 8월에 각각 사망 사고가 벌어진 데 이어, 지난 5월19일에도 삼립 시흥공장에서 50대 여성 노동자가 숨졌다. 세명 모두 기계에 끼여 숨졌고, 심야·새벽 근무 중 참변을 당했다. 사고 뒤 허영인 그룹 회장이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가 고개를 숙이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허 회장의 사과는 실질적 안전대책 마련과 작업 환경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국내 최대 제빵기업에서 사망 사고가 되풀이되는 사태를 보며,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낀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 대통령의 공장 방문은 이런 무력감과 좌절감을 깨는 망치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대통령이 직접 중대재해가 반복돼온 기업 공장을 찾아 노사 양쪽과 함께 원인을 짚고 해결책을 모색한 건,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처음 본 일인 듯싶다. 이 대통령은 반복되는 사고 배경에 장시간의 심야노동과 그걸 불사할 수밖에 없게 하는 저임금 문제가 깔린 게 아닌지 캐물었다. 실제 에스피씨의 경우 하루 12시간씩 맞교대(2조 2교대)하는 노동자 비율이 지난 4월 기준 53.7%였고,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일하는 야간근무자 비중도 29.1%에 이르렀다. 이 대통령은 “심야시간이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부주의 탓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주의를 기울일 수도 없는 객관적 상황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경영자 입장에서는 12시간 맞교대를 하는 것보다 8시간씩 3교대로 일을 시키는 것이 유리한데도 맞교대가 유지되는 것은 기본임금이 매우 낮아서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 같다”며 “사고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저임금→장시간 야간노동→사고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를 짚은 것이다.
난제를 풀기 위해선 질문을 어떻게 던지느냐가 중요하다. 이 대통령은 일단 “사람이 버틸 수 있는 근로시간이라는 게 있는 게 아니냐”며 장시간 야간노동 문제를 제기했다. 여러 근거를 통해 이런 문제 설정의 적합성이 확인된다면, 이제 문제를 차근차근 풀 수 있게 된다. 장시간 야간 노동을 줄이면서도 임금 감소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가면 된다. 또 이 대통령은 “똑같은 현장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건 문제가 있다”며 “개별 사건마다 원인을 분석해야 되겠지만 돈 때문에 안전과 생명을 희생하는 것이라면 그건 정말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영진 처벌 조항은 기업이 이런 구조적 변화 쪽으로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 대통령은 그 자신이 소년공 시절 프레스에 눌려 왼팔이 비틀어진 산재 피해자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표명한 데는 그런 개인사의 경험도 반영됐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중에도 어려운 집안 출신이 적지 않았지만, 이 대통령처럼 중학교 진학 대신 공장 노동을 해야 했던 경우는 없다. 또 어렵게 자랐다고 해도 출세한 뒤에는 ‘나도 고생해봤지만, 다 이겨내지 않았느냐’며 다른 사람들의 고난을 가볍게 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대통령은 적어도 그런 교만함과는 거리가 멀다. 철학자 김용옥은 최근 이 대통령에 대해 “전태일이 대통령이 된 것 같다”고 했는데, 변호사, 시장, 도지사가 되고서도 바래지 않은 소년공 경험의 진정성을 눈여겨본 평가일 것이다.
이재명 정부를 특징짓는 키워드를 하나만 꼽자면 실용이 될 것이다. 실용이 어떤 방식으로든 양적 성장만 이루면 된다는 사고의 발현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에스피씨 방문은 다행히 이재명표 실용의 지향점이 추상적 수치 확대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향상임을 말해준다. 실로 정치의 본령은 국민의 삶을 지키고 북돋우는 데 있다. 이 대통령은 “죽지 않는 사회, 일터가 행복한 사회, 안전한 사회를 꼭 만들어야 되겠다”며 “산업재해 사망률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 뭔지 단초를 마련하자”고 했다. 그 약속을 꼭 이뤄주기 바란다.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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