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막부 시절 괴담 모은 책
'에도괴담걸작선' 표지 |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무더위에 지친 한밤에 에어컨을 켜자니 다음 달 관리비가 걱정되고, 무서운 영화를 보자니 좀 껄끄럽다. '그래, 무서운 이야기나 읽으며 더위를 식히자'면서 이 책을 펼쳐 들지도 모른다. 좋은 생각은 아닐 듯싶다. 해가 쨍쨍 빛나는 한낮에 읽기를 추천한다. 밤에 책장을 넘기다가는 더운 데 이불로 얼굴까지 가리고 자야 할지도 모르니까. 신간 '에도괴담걸작선'(소명출판) 얘기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일본은 괴담의 천국이다. 일본에는 수백만 개의 신이 존재한다고 하고, 일본인들은 온갖 사물에도 영(靈)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돼 인기를 얻고 있는 '가치아쿠타'나 '블리치' 같은 애니메이션도 이런 범신론(汎神論)적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공포 전시 |
에도시대(1603~1868)에는 유난히 괴담이 성행했다. 법과 질서가 자리 잡은 가장 안정적인 시대였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불안한 시대이기도 했다. 질서의 혜택을 얻는 지배자 계급은 태평성대를 누렸으나 민초들의 생(生)은 고달팠다. 노력해도,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한때 높은 지위에 있던 사무라이는 일감이 부족해 몰락했고, 가난한 집 어린 소녀들은 유곽으로 팔려나갔으며, 서민들은 먹고살기 위해 발에 땀 나도록 쉬지 않고 뛰어다녀야 했다.
에도시대 괴담을 모은 쓰쓰미 구니히코(堤邦彦) 교토 세이카대 인문학부 명예교수는 '에도괴담걸작선'에서 "유교 사상에 기초한 도쿠가와 막부의 강권적인 지배 아래 서민들은 가혹한 복종과 억압을 견뎌야 했다"며 "이런 가혹한 막부의 권력 아래 신분이 낮은 자, 특히 약자였던 여성이 유령이 되어 에도 괴담의 주역이 되어 간다"고 설명한다.
공포영화 '분신사바' |
주로 치정 관계가 많다. 남편이 첩과 바람이 났는데, 아내는 원통히 죽어 원귀가 된다. 그런데 정작 바람피운 남편은 가만히 두고, 첩을 해코지하는 이야기가 서사의 큰 줄기를 이룬다. 책에 따르면 원한이 됐든, 사랑이 됐든, 대상에 대한 깊은 감정은 영(靈)이라는 하나의 형태가 돼 세상사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공포영화만 잔인한 장면이 있는 건 아니다. 시신을 훼손하는 장면과 피 칠갑의 향연이 활자 속에서 펼쳐진다. 책을 읽고 나면 한밤중 '치링 치링 치링'하는 환청이 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치링 치링 치링…불안에 휩싸인 채 귀를 기울여보니 아무래도 징 소리는 마당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 같다…치링 치링 치링…시커먼 피바다 속에서 모든 것이 끝났다."(옷칠된 여자 中)
박미경 옮김. 216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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