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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Why] 죽은 엡스타인이 산 트럼프 잡는다… MAGA마저 “의혹 해명하라”

조선일보 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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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Why] 죽은 엡스타인이 산 트럼프 잡는다… MAGA마저 “의혹 해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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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성착취범과 친분 관계 연일 논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00년대 초 제프리 엡스타인과 가까운 사이를 유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00년대 초 제프리 엡스타인과 가까운 사이를 유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AP 연합뉴스


2기 임기 시작 6개월을 넘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엡스타인 논란’이라는 정치적 파고(波高)에 직면하고 있다. 탄탄한 고정 지지층의 환호 속에 초강경 관세와 이민·보수주의 정책을 밀어붙이던 그가 아동 성 착취로 수감 중 2019년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억만장자 월가 투자자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과거 친분 관계를 다룬 뉴스가 쏟아지면서 예상치 못한 정치적 고비를 맞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기 임기 6개월째 되는 날인 지난 20일을 전후해서 미국 여론조사 업체 일곱 곳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율은 38~46%였다. 미 언론들은 임기 초 50%를 훌쩍 넘었던 지지율이 하락세를 탄 주요 원인으로 엡스타인 논란을 꼽고 있다. 연일 뉴스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대표되는 핵심 지지층은 분열하고, 충성파 측근들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트럼프 2기 내내 ‘지뢰밭’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래픽=박상훈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래픽=박상훈


앞서 지난 17일 트럼프가 과거 엡스타인에게 음란한 내용의 생일 축하 편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 또 다른 의혹을 보도했다. WSJ는 “팸 본디 법무장관이 지난 5월 트럼프에게 ‘엡스타인 파일을 확인해 보니 대통령(트럼프) 이름이 여러 차례 나온다’고 보고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트럼프는 이 파일에 자신의 이름이 있다는 보고를 받은 적 없다고 부인했었다. 다만 본디는 엡스타인 파일에 이름이 등장한다고 해서 불법이란 의미는 아니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엡스타인 관련 총책임자인 본디는 피해자 개인정보가 담겨 있는 만큼, 엡스타인 파일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엡스타인 파일’이란 과거 엡스타인이 자신의 사업을 위해 유력 인사들과 미성년자와의 불법 성매매를 알선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수사 기록을 말한다. 전날에는 CNN이 트럼프가 두 번째 부인이었던 말라 메이플스와 결혼식을 치를 때 엡스타인이 하객으로 참석한 모습 등 두 사람의 친분 관계를 보여주는 사진을 입수해 공개했다.

제프리 엡스타인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성착취범 중 한 명으로 꼽힌다. 2001~2006년 뉴욕 맨해튼과 플로리다 팜비치 저택에 최소 36명의 미성년자를 동원해 정·관·재계 인사들에게 성 접대를 강요한 혐의로 2008년 기소돼 징역 13개월을 선고받아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이후 2002~2005년 125차례 미성년자 성 착취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가 2019년 8월 뉴욕 맨해튼 교도소에서 목숨을 끊었다. 혐의가 인정될 경우 징역 45년을 선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의 사망 이후 ‘엡스타인 파일’과 관련한 각종 소문과 추측이 난무했다.

특히 사망 후에도 수사가 계속되면서 영국 앤드루 왕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진보 학자 노엄 촘스키 MIT 명예교수 등이 과거 엡스타인과 친분이 있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앤드루 왕자의 경우 ‘왕실의 수치’로 비난받으며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이름이 언급된 유력 인사들은 “이미 오래전에 연을 끊었다”며 극구 부인했지만 트럼프의 경우는 엡스타인과 각별한 친분을 말해주는 ‘물증’이 많았다.


엡스타인은 2000년대 초반 트럼프의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에 자주 드나들었다. 트럼프는 2002년 뉴욕 매거진 인터뷰에서 “엡스타인과 15년간 교류했다. 멋진 녀석이다. 그는 나만큼 미녀를 좋아하는데, 그 미녀들이 대부분 나이가 어리다”고 말한 적도 있다. 다만 트럼프 측은 2019년 “엡스타인의 성범죄 문제가 불거진 2007년 무렵 그가 마러라고 리조트를 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해명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엡스타인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트럼프 2기 실세’에서 ‘불구대천의 정적’이 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다. 그는 지난 5월 ‘정부효율부’ 수장직에서 물러나면서 트럼프를 향해 독설을 쏟아부으면서 그의 이름이 엡스타인 파일에 있다는 취지로도 발언했다. 이를 계기로 논란이 재점화되자 트럼프는 지난 1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엡스타인 관련 논란을 ‘급진 좌파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기극’으로 규정하고 “일부 어리석은 공화당원들이 사기에 속았다”며 지지층 결속을 독려했다. 하지만 이 발언은 오히려 매가 진영의 분열을 불렀다.

일부 지지자는 “트럼프가 대선 후보 기간에는 엡스타인 파일을 공개할 것이라고 공언하더니 돌연 말을 바꿨다”며 빨간 MAGA 모자를 불태우는 동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등 분노를 표출하며 ‘손절’을 선언했다. 엡스타인 파일에는 소아성애자 좌파 엘리트 집단이 대거 포함돼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온 음모론자들도 트럼프의 ‘소심함’에 실망감을 표출했다.


트럼프의 핵심 참모들도 갈팡질팡하면서 내부 분열까지 일어나는 모습이다. 트럼프의 충성파 각료인 본디 법무장관이 일체의 문서 비공개 방침을 밝히자, 강성 매가 인사로 꼽히는 마저리 테일러 그린 연방하원의원과 존 케네디 연방상원의원 등은 “문서를 공개해야 한다”며 트럼프의 방침에 반기를 드는 모습을 보였다. 사법 당국 내부에서도 본디의 비공개 방침에 댄 본지노 연방수사국 부국장이 “민주당과 좌파 진영에서 파일을 위·변조했을 가능성이 있어 공개해야 한다”고 반발하는 등 내홍이 일고 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엡스타인과 트럼프 관계의 ‘실체’에 대한 의심이 증폭하는 상황에서 공화당과 트럼프 내각 내 불협화음이 커질 경우 내년 중간선거의 악재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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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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