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 MBK 파트너스 부회장 겸 홈플러스 공동 대표(사진 왼쪽)와 조주연 홈플러스 대표이사가 14일 오전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기업회생절차와 관련한 회사의 입장을 발표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7조원짜리 아파트가 있습니다. 이 아파트엔 2조9000억원의 전세가 있고, 전 주인은 자신의 지분을 포기했습니다. 새 매수자는 이 아파트의 부동산을 담보로 2조원을 빌려 전세 일부를 갚고 남은 일부만 현금으로 메운다면, 1조원 미만으로 아파트를 소유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최근 홈플러스가 언론에 보낸 자료 말미에 적힌 문구다. 기업회생을 추진 중인 회사를 '전세 낀 아파트'에 빗댄 것도 모자라 "7조원짜리 회사를 현금 1조원 미만으로 살 수 있다"며 은근슬쩍 '갭투자'까지 권유한 것이다.
비유 자체도 황당했지만, 비정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 자료를 보낸 직원에게 "이런 표현을 회사 경영진이 승인한 게 맞냐"고 되물었다. 답변을 망설였던 그는 "회사 사정이 워낙 급박한 것 같다"고 답했다. "청산 전에 빨리 팔아야 한다"는 최대주주 MBK파트너스(이하 MBK)의 '강박감'이 느껴졌다.
실제로 홈플러스는 벼랑 끝에 몰렸다. 법원이 승인한 '회생 인가 전 M&A(인수합병)' 로드맵에 따라 2~3개월 이내에 새로운 인수자를 찾으면 극적으로 재기할 기회가 생기지만, 새 주인 찾기에 실패하면 회사가 공중분해 돼 2만명의 직원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MBK는 지난 2015년 홈플러스를 7조40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홈플러스 주식을 100% 보유한 피인수기업(홈플러스스토어)을 설립했고, 이를 담보로 금융권에서 5조2000억원대 자금을 조달했다. 전형적인 '차입 인수'(LBO) 방식이다. 공교롭게도 MBK는 새로운 인수자에게도 비슷한 방식을 권유한다. 홈플러스가 갚아야 할 초단기 채무 2조5000억~2조7000억원 중 2조원을 홈플러스가 보유한 부동산 담보 대출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한 게 대표적이다.
그런데도 이번 M&A가 녹록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는 과거와 현재의 홈플러스는 전혀 다른 회사가 됐단 점에서다. 홈플러스는 대형마트 호황기였던 10여 년 전 연 매출 9조원에 5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뒀다. 하지만 지난해 실적은 매출 6조원대에 영업손실은 31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이커머스(전자상거래)로 고객 수요가 옮겨간 영향도 있지만, 근본적으론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이후 지속적인 점포 자산 유동화와 차입 경영으로 경쟁력을 떨어뜨려서란 게 중론이다.
이 때문에 홈플러스의 현재 가치가 7조원이란 전제부터 논란거리다. 보유 중인 부동산 자산과 브랜드 가치, 사업 지속 가능성 등 종합적으로 반영한 결과란 게 MBK의 주장이지만, 노조는 물론 유통업계 관계자들도 이런 계산법에 동의하지 않으며 이보다 낮을 것으로 추정한다.
회사를 살릴 수 있는 견실한 인수자를 찾아야 하는데 마치 아파트 급매물 떠넘기듯 M&A를 추진하려는 행태는 비정상적이다. 고용 문제에 민감한 정부와 정치권도 이 문제를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MBK는 "홈플러스가 정말 좋은 회사라면 왜 계속 경영하지 않느냐"는 업계의 의문을 해소하고, 더 큰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유엄식 기자 |
유엄식 기자 usy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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