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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진의 그 사람의 글씨] [11] 이상향이 높은 간디, 점을 높은 지점에 찍는다

조선일보 구본진 필체 연구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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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진의 그 사람의 글씨] [11] 이상향이 높은 간디, 점을 높은 지점에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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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글씨

간디의 글씨


세상은 진실과 거짓이 뒤엉켜 끓어오르는 거대한 정보의 화산이 되었다. 말들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고, 뜨거운 연기처럼 퍼지는 소문과 추측이 시야를 뒤덮는다. 우리는 그 한복판에서 어디로 뛰어야 살 수 있는지도 모른 채, 아비규환 속을 본능처럼 내달린다. 누구도 지도를 갖고 있지 않지만 모두가 달리고 있다. 멈추면 죽을 것만 같아서.

그런 시대에 마하트마 간디를 떠올린다. 그는 언제나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말하던 사람이었다. 증기기관보다 물레를, 기차보다 맨발을 선택하며, 조용히 되물었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의 서명 “M. K. Gandhi”는,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묵묵히 알려준다. 이니셜 ‘M. K.’는 작고 균형 잡혀서 겸손과 자기 절제의 태도가 담겨 있다. 이어지는 ‘Gandhi’는 크기와 기울기가 제각각이지만, 끝내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필체는 말한다. “과시하지 말라. 휩쓸리지 않도록 조심하되, 휩쓸려도 다시 돌아와 분명히 서 있으라.”

특히 ‘d’의 형태는 인상적이다. 루프 없이 곧게 솟았다가 오른쪽으로 휘는 이 구조는 전통을 비틀되 무너지지 않는 간디의 사고방식, 창의적 저항의 미학을 상징한다. 그 글자 하나가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남의 말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말을 하고 있는가?”

‘d’와 ‘h’의 세로선은 높고, ‘i’의 점도 높게 찍혀 있어서 이상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우리에게 그의 필체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언제를 보고 있는가? 당장인가, 아니면 몇 달, 몇 년, 몇 십 년 뒤인가?”

정치인답지 않게 특유의 느린 글씨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당신만은 균형 있게, 흔들림 없이, 끝까지 밀고 가라.”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거짓은 더 정교해지고, 더 많아지며, 더 요란하게 퍼질 것이다. 정신을 붙잡기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방법은 늘 그 자리에 있다. 잠시 멈추고, 조용히 되묻는 일. 간디는 말한다. “달리는 것보다 먼저 가는 곳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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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진 필체 연구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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