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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서 지워졌던 '최초의 추상화가'... 영적 계시로 그린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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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서 지워졌던 '최초의 추상화가'... 영적 계시로 그린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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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미술관 힐마 아프 클린트 국내 첫 회고전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에서 19일부터 열린 19세기 스웨덴 추상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의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에 '10점의 대형 그림' 연작이 전시돼 있다.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에서 19일부터 열린 19세기 스웨덴 추상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의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에 '10점의 대형 그림' 연작이 전시돼 있다.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미술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최초의 추상화가.' 2018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의 대규모 회고전을 열면서 내건 수식어다. 유명한 초기 추상화가 바실리 칸딘스키나 피에트 몬드리안과 동시대에 추상화를 그렸으나 알려지지 않았던 아프 클린트는 이 전시가 60만 명을 끌어모으며 단숨에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잊혔다가 재발견된 작가의 블록버스터급 전시가 세계를 돌고 돌아 한국의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이 19일 개막한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전은 스웨덴 여성 화가 아프 클린트의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이다. 대표작 '10점의 대형 그림'을 비롯해 주요 연작과 스케치 등 139점이 전시장에 나왔다. 강승완 부산현대미술관장은 "아프 클린트가 던진 삶과 죽음, 정신과 물질 등 이분법을 초월한 진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세상 이면에 숨은 본질을 열망한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가 1907년에 그린 추상회화 연작 '10점의 대형 그림' 중 '성인기'(왼쪽 사진)와 1915년에 그린 '제단화' 연작 작품. 힐마 아프 클린트 재단 제공

힐마 아프 클린트가 1907년에 그린 추상회화 연작 '10점의 대형 그림' 중 '성인기'(왼쪽 사진)와 1915년에 그린 '제단화' 연작 작품. 힐마 아프 클린트 재단 제공


아프 클린트의 작품 세계는 신비로 가득하다. 전시 설명에 따르면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본질을 그려내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혀 신지학을 공부했다. 신지학이란 동서양의 종교·철학·과학을 통합해 인간 의식이 감각 너머의 실재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종교 운동을 말한다.

아프 클린트는 1906년 영적 존재(하이 마스터) '아말리엘'로부터 계시를 받고 세상의 질서를 그리겠다는 의도로 '신전을 위한 회화'로 불리는 연작을 그렸다. 괴이해 보이지만, 칸딘스키나 몬드리안 역시 신지학의 영향을 받아 추상회화를 그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프 클린트가 최초의 추상화가 반열에 오르는 데 '영매'로서의 경험은 필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시기에 가장 유명한 약 3m 높이의 '10점의 대형 그림' 등이 등장했다. 삶에서 죽음까지 인생을 주제로, 원형과 사각형 등을 부드러운 색채로 가득 채운 그림이다. 거대한 규모는 마치 신전의 벽화처럼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아프 클린트는 실제로 그림을 걸 신전을 만들고 싶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00년간 묻힌 작가, 2018년 뉴욕 전시로 재평가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 전시에 힐마 아프 클린트가 1914∼15년에 걸쳐 그린 '백조' 연작이 전시돼 있다.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 전시에 힐마 아프 클린트가 1914∼15년에 걸쳐 그린 '백조' 연작이 전시돼 있다.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전시는 아프 클린트가 '영매'에서 벗어나 현실 관찰과 과학 이론에도 관심을 뒀던 인물임을 강조한다. 백조 두 마리가 점차 추상회화로 변하는 과정을 그린 '백조' 연작이나 당대 과학이 발견한 원자 개념을 활용한 '원자' 연작에서 이런 면모가 드러난다.


아프 클린트는 사후 40여 년이 지난 1988년에야 첫 개인전이 열렸을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다. 2018년 구겐하임 뉴욕 전시를 계기로 재조명됐다. 19세기에 탄생한 여성 추상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사후에까지 한동안 은폐했다는 서사는 미술계 안팎에서 극적으로 소화됐다.

그의 삶과 작품을 묘사한 영화도 여럿 나왔다. 2019년 독일에서 할리나 뒤르슈카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힐마 아프 클린트-미래를 위한 그림(원제 '보이는 것 너머')'과 2022년 스웨덴의 라세 헬스트룀 감독이 만든 드라마 '힐마' 등이다. 다큐멘터리는 부산현대미술관 전시장에서 볼 수 있고, '힐마'는 전시 연계 이벤트로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31일부터 일곱 차례 상영된다. 전시는 10월 26일까지다.

부산=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