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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가 인수 반년 만에 살려낸 美조선소... 그 뒤엔 기술력과 집요함 [르포]

조선일보 필라델피아=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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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가 인수 반년 만에 살려낸 美조선소... 그 뒤엔 기술력과 집요함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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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한화 필리 조선소 4도크에서 국가안보다목적선박(NSMV)이 건조되고 있는 모습./한화오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한화 필리 조선소 4도크에서 국가안보다목적선박(NSMV)이 건조되고 있는 모습./한화오션


“작년 12월 이 조선소를 넘겨받을 때 저 배를 진수(進水) 하려면 1년은 걸린다고 했습니다. 점검해 보니 기간을 반년가량 앞당길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고,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의심의 눈길로 쳐다봤지만 보다시피 결국 해냈습니다.”

16일 오후 3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州)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 조선소’(이하 필리 조선소·Hanwha Philly Shipyard) 4번 도크, 길이 약 140m, 너비 약 34m, 무게 약 1만t의 해저 암석 설치선(SRIV)이 바다 위에서 거대한 몸집을 움직이고 있었다. SRIV는 해저에 암석을 깔아 구조물을 단단히 고정하는 작업을 하는 배로, 앞으로 뉴욕 롱아일랜드 남쪽 해역에 조성 중인 ‘엠파이어 윈드’ 해상 풍력 발전 단지에 투입될 예정이다. 한화오션이 노르웨이 에너지 회사 아커(Aker)에서 1억달러(약 1445억원)에 필리 조선소 지분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지난해 12월 19일 한화 필리 조선소로 새 출발을 한 뒤 두 번째로 진수한 배다. 현지 예상보다 무려 5개월을 앞당겨 진수했다. 국내 기업이 미국 조선소를 인수한 첫 사례인 필리 조선소 현장을 이날 찾아보니 불과 반년 만에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도크 회전율 등 효율화에 집중

경상남도 거제에 본진(本陣)을 두고 있는 한화오션은 수십 년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술을 이곳에 쏟아붓고 있다. 선박을 건조하거나 수리하기 위한 공간이자 회전율에 따라 매출이 결정되는 도크의 사용 방법부터 시작해서, 현지 인력 채용 및 교육까지 한동안 계속된 미국 조선업의 침체로 조용했던 이곳에 생기가 도는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한화 필리 조선소에서 골리앗 크레인이 블록을 인양하고 있다./한화오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한화 필리 조선소에서 골리앗 크레인이 블록을 인양하고 있다./한화오션


43만㎡(약 13만평)에 달하는 조선소 한가운데 서 있는 주황색 ‘골리앗 크레인’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크레인은 조선소에서 선박 블록을 들어 올리거나 이동시키는 역할을 하며 조선소의 상징으로 불린다. 이곳에 있는 골리앗 크레인은 최대 하중이 660t이다. 필리 조선소가 거제 사업장에 비해 규모는 10분의 1 수준이지만, 크레인만큼은 거제 사업장에 있는 크레인(최대 하중 900t)과 비슷한 역량을 갖고 있다. 현장에서는 크레인 옆과 아래로 작업 공간 조성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원래 이 공간은 일반 적치장으로 썼는데 전부 비워 더 큰 블록을 놓을 수 있게 하려는 작업이다. 이 소장은 “작업 공간 조성이 끝나면 대형 사이즈 블록을 들어 올릴 수 있게 된다”면서 “쉽게 말해 80번 들어서 옮겨야 하는 것을 40번만 움직여도 되게 되면서 작업 효율,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라 새로운 건조 공법(탠덤 공법)을 적용, 여러 척의 선박을 동시에 건조해 도크 효율성을 높일 예정이다. 지금까지 거제에서는 사용했지만 필리 조선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공법이다. 현재까지 한 도크에서 1년에 1.5척 정도를 짓고 있는데 4척까지 만들 수 있게 된다. 필리 조선소는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사이즈 배를 만들 수 있는 도크를 두 개 보유할 정도로 미국 내에서도 큰 도크를 갖고 있다.

◇韓 기술 인력 50여 명 투입해 인재 양성

필리 조선소는 배를 건조하는 기술을 도입할 뿐 아니라 미 현지 인력을 대거 길러내는 작업에도 집중하고 있다. 작업량이 많아지면서 더 많은 기술자가 필요하지만 아직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조선소 한쪽에는 ‘트레이닝 아카데미’라고 이름 붙인 상아색 건물이 보였다. 필리 조선소는 2004년부터 필라델피아 금속노조협의회와 공동으로 견습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한화가 인수하기 전에는 80명 이하였다. 지금은 그 수가 120명으로 늘었고, 2027년부터는 매년 240명을 선발해 기술을 가르칠 예정이다.

1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한화 필리 조선소에서 견습생 제임스 투니아(왼쪽)가 강사 존 윌리엄스로부터 용접 기술을 배우고 있다./윤주헌 특파원

1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한화 필리 조선소에서 견습생 제임스 투니아(왼쪽)가 강사 존 윌리엄스로부터 용접 기술을 배우고 있다./윤주헌 특파원


거제에서 건너온 숙련 기술자 50여 명은 현지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마이크 기안토마소 필리 조선소 인사팀 부사장은 “필라델피아가 겪었던 문제 중 하나가 젊은 인력을 가르칠 믿을 만한 기술자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는데 한화오션이 인수하며 이 문제가 해결됐다”고 했다.


이곳은 입사 첫날부터 정식 직원으로 대우받고 유급 휴가와 건강보험이 제공된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총 8주 견습 과정 중 3주차인 제임스 투니아는 용접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그는 “취업하는 데만 약 3개월이 걸릴 정도로 인기가 많다”면서 “손으로 만드는 것을 항상 좋아하던 나에게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기술 강사로 근무 중인 존 윌리엄스는 “위험한 도구를 다루는 조선소이기 때문에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가르치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기술을 배우겠다는 열정이 뛰어난 지역 인재들이 몰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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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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