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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고 병 없는 아기로요”…유전자 골라 낳는다는 ‘수퍼베이비’ 논란

조선일보 김자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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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고 병 없는 아기로요”…유전자 골라 낳는다는 ‘수퍼베이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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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외수정 과정./ABC 캡처

체외수정 과정./ABC 캡처


건강하고 똑똑한 유전자를 골라 ‘우성 인간’을 만들어내는 영화 같은 이야기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한 스타트업이 시작한 배아 유전체 검사 서비스인데, 부유층을 중심으로 이 서비스가 확산하면서 자녀 유전자를 선택해 낳을 수 있는 이른바 ‘수퍼베이비’ 논란을 낳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최근 보도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난임 스타트업 ‘오키드헬스’는 배아를 대상으로 향후 발병 소지가 있는 수천 가지 질병을 검사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스타트업은 최초로 30억 염기쌍의 배아 전체 유전체를 시퀀싱(DNA의 염기 배열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배아에서 채취한 5개 세포만으로 전체 유전체를 분석하고, 조현병·알츠하이머·비만 등 1200여 질병의 발병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질병 가능성은 점수화되는데, 이 데이터를 통해 아이를 선별해 낳을 수 있는 셈이다.

현재는 시험관 시술(IVF)을 받는 커플이 낭포성 섬유증이나 다운증후군 같은 단일 유전자 변이나 염색체 이상을 검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창업자 누르 시디키는 지난봄 투자자 모임에서 “유전자 분석으로 아이의 질병을 예방하고 더 나은 인간을 설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관계는 즐거움을 위한 것이고, 아기는 배아 스크리닝으로 고르는 시대다. 나 역시 이 기술을 활용해 자녀를 낳을 계획”이라고 했다.


이 자리에는 일론 머스크와 사이에서 4명의 자녀를 낳은 전 뉴럴링크 임원 시본 질리스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머스크와 질리스가 낳은 아이 중 최소한 1명은 오키드헬스의 유전체 선별 기술을 통해 태어났다고 전했다.

오키드헬스의 유전자 스크리닝은 IVF 성공률을 높이고 부모들의 유전 질환에 대한 불안감을 줄임으로써 출산을 장려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기술이 인간의 우수한 유전형질만 골라 미래의 자녀를 선별하고 설계하는 ‘현대판 우생학’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재 이 스타트업의 검사 비용은 배아 하나당 2500달러, IVF 1회 평균 비용은 2만 달러(약 2800만원)에 달해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다. 부유한 계층이 유전적으로 더 뛰어난 아이를 골라 태어나게 하는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키드헬스는 “지적 장애는 선별하지만 지능 예측은 제공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회사 관계자는 머스크와 질리스 커플을 포함해 일부 커플에 지능 관련 선별 서비스를 비공식적으로 제공했다고 말했다.

미국 임신협회는 유전자 선별 기술에 대해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인간 배아의 미래를 실질적으로 조작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MIT 생명윤리학 교수 앨리슨 브룩스도 “우리는 지금, 아이들이 선택받은 이유와 선택받지 못한 이유를 아는 사회로 가고 있다”며 오키드헬스의 서비스가 “건강을 위한 선택을 넘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베틀라나 야첸코 스탠퍼드대 교수는 “5개 세포로 전 유전체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오류가 발생한다”며 “잘못된 유전자 정보에 따른 선택은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논란 속에서도 유전자 기술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오키드헬스는 지난해 말 1200만 달러(약 167억원)의 자금을 유치했고, 유사 기업들도 억대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김자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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