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로 당정 간담회 열어
한국농축산연합회와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회원들이 1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한미 상호 관세 협상에서 ‘농축산물 시장을 개방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스1 |
국회 농림수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8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당정(黨政) 간담회를 열었다. 여당 의원들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 과정에서, 과도한 양보로 우리 쌀·한우 농가가 피해를 입어선 안 된다”는 취지로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협상에서 미국이 미국산 소고기, 쌀, 사과의 수입 확대를 요구하고 있고 정부가 타협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여당 내에서 반발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정 간담회는 보좌관 배석 없이 의원들만 참석한 채 비공개로 진행됐다. 여 본부장은 참석자에게 한미 협상 진행 상황을 설명하고 의원들은 농민들의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의원들은 간담회 이후 별도의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간담회는 민주당 의원들의 요구로 열렸다. 한미 통상 협상을 담당하는 여 본부장은 지난 14일 기자 간담회에서 “어느 나라와 통상 협상하든 농산물이 고통스럽지 않은 협상이 없었고, 우리 산업 경쟁력은 강화됐다”며 “농산물도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본다”고 했다. 농축산물 추가 개방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해석됐다. 그러자 이튿날 농해수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농업은 결코 한미 통상 협상의 희생양이 되어선 안 된다”며 “정부가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은 수출 실적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식탁의 안전, 그리고 식량 주권”이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 의원들은 대부분 지역구가 농어촌 지역이다.
미국이 그간 한국에 개방을 요구해온 대표적인 품목이 쌀과 소고기다. 현재 한국은 미국산 쌀에 대해 쿼터제(할당제)를 적용하고 있다. 연간 13만2304t까지 5% 관세율을 적용하고, 이를 초과할 땐 훨씬 높은 세율(513%)을 매긴다. 또 지난 2008년 ‘광우병 파동’ 이후 미국산 소고기는 30개월령 미만만 수입하고 있다. 지난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낸 ‘관세 서한’에서 지난 9일로 예정됐던 한국산 제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 시점을 8월 1일로 연기하면서, 비관세 장벽 철회를 요구했다. 정부 관계자는 “관세만 따로 떼서 협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비관세 문제까지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문제는 정부가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을 확대할 경우, 여당의 지지 기반인 전라·충청 농가가 반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기준 전국 쌀 생산량의 60%가 전라·충청 지역에서 생산됐다. 현 여권 지지자들은 이명박 정부 당시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관련해 ‘먹거리 주권’까지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했었다.
한국농축산연합회 등 농축업 단체들도 이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농업인의 양해와 동의 없이 농축산물 관세·비관세 장벽을 허문다면 절대 간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지난 17일 정책조정회의에서 한미 통상 협상과 관련해 “과거처럼 힘과 동맹의 논리에 따라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한 것도 당 안팎의 반발 여론을 의식했다는 분석이다.
정치권에선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 규제 완화 문제가 이재명 정부 집권 초반기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부 입장에선 미국과의 협상도 쉽지 않은 상황인데 여당, 지지자들과의 ‘국내 협상’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미국과 협상하면서도, 농촌 민심을 크게 잃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권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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