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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2월 7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최근 대미 관세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이시바 총리는 트럼프와 각을 세우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
사마천의 역사서 '사기'에는 70권의 열전(列傳)이 포함된다. 황제를 제외한 당대 영웅들의 활약이 담겼는데, 드물게 어린 시절 친구 둘이 함께 수록된 사례가 있다. 장의와 소진이다. 소진은 아홉 번째, 장의는 열 번째 열전의 주인공이다. 사마천에 따르면 장의와 소진은 각각 위나라와 동주 낙양 출신으로, 귀곡 선생 밑에서 함께 공부했다. 그러나 동문수학 두 친구는 평생의 라이벌이 됐다.
□지금은 이해관계에 따른 여러 세력들의 이합집산을 뜻하는 보통명사가 됐지만, 두 사람의 경쟁은 ‘합종연횡’이라는 고사성어를 만들었다. 전국시대 최강국 진(秦)에 대응하는 나머지 6개국의 전략과 관련해 장의와 소진은 다른 주장을 폈다. 소진은 6국이 힘을 합쳐 진에 대항하는 합종을, 장의는 합종을 이간시켜 개별적으로 진과 친교를 맺는 연횡을 제시했다. 처음에는 소진의 합종이 성공적으로 작동, 진의 군대가 15년간 함곡관을 넘지 못했다.
□최종 승자는 6개국 군주 사이의 원한과 개별 욕심을 파고든 '연횡'이었다. 진의 꼬임에 넘어간 제(齊)는 진이 조(趙)를 공격할 때 방관했고, 연(燕)은 궁지에 몰린 조를 공격했다. 이런 분열로 6국은 땅을 합치면 진의 5배, 병력은 10배에 달했다지만 진에 흡수됐다. 후대 사람들은 6국의 어리석음을 조롱했지만, 국제 정치의 냉혹함을 감안하면 연횡의 승리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죄수의 딜레마’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나와 손잡은 이를 믿지 못하는 현실에선 이성적 선택의 결과가 최적의 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요국이 대미 관세협상에서 합종연횡을 고민하고 있다. 이시바 일본 총리가 이례적으로 미국과 각을 세우고, 유럽연합(EU)은 캐나다 일본과의 공조로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한다. 우리 내부에서도 이들과의 공조로 미국과의 협상에서 이득을 챙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경계해야 할 낙관론이다. 8월 1일 시한을 앞두고 그 어떤 나라가 돌연 트럼프와 손잡아도 이상할 게 없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개방에 적극적”이라는 트럼프의 회유성 발언도 2250년 전 장의의 수법을 닮았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