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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갑자기 4명으로…'며느리' 금융권은 무슨 죄인가요"

머니투데이 김도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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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누구를 위한 감독체계개편인가(下)

[편집자주]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임박했다. 십수년 전 일부 학자들이 주장해 온 방안의 재탕이다. 비슷한 체계로 운영중인 나라들에선 부작용에 대한 반성문이 나오고 있지만 이 기회에 권한 확대를 노리는 감독기구들은 이전투구 중이다. "왜 이 시기에 개편이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게 금융권의 반응이다. 실용을 강조한 이재명 정부의 금융감독체계 개편, 이대로 괜찮은지 짚어본다.



금소원 독립하면 소비자보호 강화?…'반-반' 분쟁조정기구 전락할라


한국소비자원, 금융·보험 부문 분쟁조정비율 50% 조정 사례/그래픽=윤선정

한국소비자원, 금융·보험 부문 분쟁조정비율 50% 조정 사례/그래픽=윤선정


금융감독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 조직을 떼 별도 기구인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설립하더라도 소비자 보호가 강화될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검사·감독 및 상품심사 부서와의 순환근무가 완전히 막혀 분쟁조정의 전문성이 떨어질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독립적인 검사권을 부여하지 않는 기구로 개편되면 금융회사가 일방적으로 제공한 정보에 의존해 분쟁조정을 해야 해 "양쪽이 알아서 반반씩 양보하라"는 '주먹구구식' 단순 중재만 가능한 기구로 전락할 수 있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들어 소비자원의 금융·보험 분쟁조정 결과에 불복하고 금감원을 찾는 금융소비자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원이 의견이 갈리는 분쟁 건에 대해 소비자와 금융사의 조정 비율을 50대 50(반반중재)으로 중재하는 경우가 많아 양쪽이 모두 이를 수용하지 않아서다.

지난 2월 공개된 소비자원의 위소매절제술(위축소술) 관련 질병수술보험금 지급 요구 건의 경우 신청인(소비자)과 피신청인(보험사)의 조정 비율이 각각 50%로 결정됐다. 당뇨 치료 목적이냐, 비만 치료(미용 치료) 목적이냐에 따라 보험금이 크게 갈리는 분쟁건이다. 소비자원은 "비만 치료 목적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일부 전문위원 의견이 엇갈린다"며 '50% 배상' 판단을 내렸다.

금감원 분쟁조정 결과는 달랐다. 당뇨병이면서 비만인 상황에서 위 축소술을 한 소비자 주장을 인용(100%) 했고, 보험사도 이를 수용했다. 금감원 검사국 직원들이 '암 입원보험금'과 관련한 보험사 검사를 나간 뒤 법정 분쟁까지 이어진 사례를 찾아내 이번 분쟁조정에 적용한 것이다. 대법원은 2010년 암 증상을 호전시키기 위한 수술이라면 암 치료의 직접 목적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 축소술에도 적용한 것이다.


다른 사례도 있다. 소비자원은 실손의료보험의 도수치료 보험금 지급(2021년 10월) 분쟁에서 "적정한 도수치료 횟수를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며 "상호 양보로 원만하게 해결하라"는 취지로 50% 조정을 내렸다. 반면 금감원은 판례와 분쟁조정 사례, 내부 평가지표, 제3의 의료자문 결과 등 객관적인 기준을 종합해 분쟁조정을 했고, 보험사도 이를 수용했다.

유사한 분쟁조정 사례임에도 양 기관의 조정안이 달랐던 이유가 있다. 우선 금감원 분쟁조정 직원들은 금융상품 심사와 감독·검사 순환근무 경험이 있다. 여기에 소비자가 직접 입증하기 어려운 사항에 대해 금감원의 검사국 직원들과 협업해 현장 검사를 통해 자료를 확보하고 이를 분쟁조정에 연계한다.

지난해 홍콩 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불완전판매 분쟁조정도 분쟁조정국과 검사국의 협업이 주효했다. 은행 검사·감독국에서 46명, 금소처에서 10명 등 총 94명의 임직원이 투입돼 손실 배상이 시작된 지 약 1년 만인 지난 4월 기준 피해 계좌 16만5523건 중 약 96.5%가 배상에 동의했다. 상품 가입목적, 투자 경험 등을 감안한 정밀한 배상기준이 마련돼 소비자-금융사 수용도가 100%에 가까웠다.


하지만 향후 금소처를 금감원에서 떼어내 별도의 독립 기구를 둘 경우 이같은 협업이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금감원의 건전성 부문과 소비자보호 부문을 분리해 '쌍봉형'으로 쪼개는 경우 금소원에 검사권을 부여 하더라도 순환근무가 막히면서 감독·검사·상품 심사를 모두 경험한 직원은 찾기 어렵게 된다. 지금도 금소처 소속 금감원 직원들은 감독체계 개편에 동요해 사직을 고려하는 등 대규모 이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금소원을 분리하고 검사권은 독립적으로 부여하지 않는 '소봉형'으로 갈 경우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검사권이 부여되지 않으면 민원과 분쟁 처리 기관으로 전락해 금융회사가 제출한 정보에만 의존해야 한다. "양쪽이 알아서 반반씩 양보하라"는 식의 분쟁조정이 늘고 신뢰도, 수용성이 대폭 떨어질 우려가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들이 가장 두려운 건 금감원 검사국에서 금융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다"라며 "금융사가 금감원의 분쟁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티다 검사로 연결되면 매우 곤란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분쟁조정 수용률이 높은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공급자 중심 행정 하지 마"...금융회사 '패싱'한 금융감독 개편


금융회사가 지출하는 금감원 감독분담금 추이, 금융협회 현황/그래픽=이지혜

금융회사가 지출하는 금감원 감독분담금 추이, 금융협회 현황/그래픽=이지혜



이재명 대통령이 공무원들에게 공급자 중심의 행정을 하지 말라고 수차례 강조하고 있지만 금융감독체계개편 논의에선 중요 당사자인 금융권이 '패싱' 당하고 있다. 금융회사는 매년 3000억원이 넘는 감독분담금을 내고 있는데, 만약 감독체계가 개편되면 분담액은 수천억원 더 불어난다. '시어머니'가 4명으로 늘면 소비자보호와 건전성·영업행위 검사 눈치를 봐야 하는 만큼산업혁신과 발전은 뒷전으로 밀릴 위기다. '초대형 태풍'이 닥치고 있지만 정부 부처와 금융당국 출신들이 수장으로 있는 금융협회들은 침묵하고 있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감독체계 개편이 가시화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금융권은 긴장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금융정책) 금융감독위원회(감독정책) 금융감독원(건전성 감독) 금융소비자보호원(소비자보호) 등으로 '시어머니'가 4명으로 늘면 금융권의 감독분담금도 대폭 늘어는 게 당장의 이슈다.

무자본특수목적법인인 금감원의 예산은 '나랏돈'이 아니라 금융회사가 갹출한 감독분담금에서 나온다. 지난해 3000억원을 첫 돌파한 이후 올해는 3308억원으로 매년 금액이 대폭 불고 있다. 여기에 금융소비자보호원이 독립하면 인력과 조직운영비는 금융회사가 또 부담해야 한다. 업계에선 최소 1000억~2000억원 이상 늘 수 있다고 본다.

'시어머니'가 4명으로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회사가 감독체계개편의 주요 당사자인데, 시어머니를 갑자기 4명 만들겠다고 하면서 며느리에게 한 마디도 묻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도 단독검사권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시어머니는 5곳이 될 수도 있다. 다른 관계자는 "시어머니 숫자 자체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데 시어머니가 여럿이면 사이가 좋을 수가 없고, 그 눈치를 다 봐야 하는 금융권은 도대체 무슨 죄인가"고 반문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정책 수요자 입장을 물어보고 결정하는 것 하고 일방적으로 정해 통보하는 것 하고 내용은 똑같은데 수용성은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했지만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일방적으로 진행 중이다.

금융권이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정작 이런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 금융협회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업계 반발을 사고 있다.

한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위인설관(어떤 사람을 채용하려 일부러 벼슬자리를 마련함)하려고 조직개편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며 "특정 개인이 과거 사례만 들고 소비자들의 뿔난 분위기에 편승해 개편을 주장하는데 금융협회가 눈치만 보면서 제대로 할 일을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도 "대통령이 안을 확정한 것도 아닌데, 이런 때는 협회가 나서 업계 중지를 모으고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 지금은 정부의 '2중대' 역할만 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업권은 보험권이다. 소비자 민원의 절반은 보험업권이 차지해서다. 보험업권은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화재보험협회 등 협회가 3곳이 있지만 어느 곳도 먼저 총대 메고 나서지 않고 있다. 업계 출신이 협회장을 맡고 있는 은행·금융투자협회와 달리 보험협회 회장은 기재부, 금융위원회, 금감원, 행안부 등 정부 부처나 금융당국 출신으로 채워졌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관 출신 협회장은 업계와 정부 사이에서 긴밀하게 소통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업권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터졌는데도 역할 없이 침묵하고 있다"며 "보험 협회장들이 대부분 금융당국이나 정부 출신으로 이뤄져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감독체계 개편이 시급한게 아니라 금융협회 개혁이나 통폐합부터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보험업권은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화재보험 업권간의 영역이 사실상 허물어진데다 자산규모로 볼 때 3개 협회 모두 존치할 이유가 있냐는 시각이다.

김도엽 기자 usone@mt.co.kr 권화순 기자 fireso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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