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에 “재정비 필요” 메시지
이재명 대통령과 우원식 국회의장, 김민석 국무총리,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지난 17일 저녁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만찬을 함께하고 있다./연합뉴스 |
이재명 대통령은 17일 “우리 헌법도 달라진 현실에 맞게 새로 정비하고 다듬어야 할 때”라며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제77주년 제헌절 메시지에서 “‘5·18 민주화운동’ 헌법 전문 수록, 국민 기본권 강화, 자치 분권 확대, 권력기관 개혁까지.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헌법의 모습”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공약했지만 이날 권력 구조 개편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개헌을 언급한 것은 취임 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개헌에 나서 주리라 기대한다”며 개헌 주체로 국회를 지목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같은 날 “시대의 요구에 맞게 헌법을 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여권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하는 일정으로 개헌에 본격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구체적인 개헌 사항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선 때 국민 기본권 강화 사안으로 안전권과 생명권, 정보 기본권 등을 언급했다. 최대한의 지방자치권 보장을 위한 헌법기관도 신설하자고 했다. 이 대통령이 공약한 대통령실과 국회의 세종시 완전 이전도 개헌이 필요한 사안이다.
이 대통령이 이날 제시한 ‘권력기관 개혁’을 두고는 검찰과 감사원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대선 때 검찰 개혁을 공약하며 개헌 사안으로 “검찰의 영장 청구권 독점 규정을 폐지하자”고 했다. 헌법상 영장은 검사만 청구할 수 있게 돼 있다. ‘검찰 수사권 폐지’를 주장하는 민주당에선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하지 못하게 하려면 이 조항을 없애거나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돼 왔다. 감사원의 경우, 이 대통령은 현재 행정부 소속인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이에 대해 야당과 시민단체에선 “검찰을 무력화시키고, 감사원마저 국회 아래 두고 통제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날 이 대통령이 개헌의 핵심이라고 불리는 권력 구조 개편을 언급하지 않은 것을 두고는 “대통령이 직접 대통령제 개헌 방향을 언급할 경우 여야 정쟁을 촉발할 우려가 있어서”란 해석이 나왔다. 헌법상 재임 중인 대통령에게는 임기 연장과 관련한 개헌 사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개헌에 이 조항이 포함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관련 질문에 “국민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며 “개헌 당시의 대통령이 추가 혜택을 받는 것에 대해 국민이 쉽게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회가 개헌을 추진해 달라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직 당시 직접 대통령 개헌안을 국회에 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따로 개헌안을 만들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의 개헌 구상은 이미 대선 때 밝혔으니 구체적인 사안은 국회가 협의해 만들면 된다”고 했다.
민주당 출신 우원식 국회의장도 이날 제헌절 메시지에서 “전면적 개헌보다 최소 수준의 개헌으로 첫발을 떼는 것이 꼭 필요하다”며 “올 하반기에는 국회 헌법개정특위를 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국회 관계자는 “특위를 구성해 집중 논의하면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는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논쟁의 여지가 큰 권력 구조 개편보다는, 5·18 민주화운동의 헌법 전문 수록 등 여야가 어느 정도 의견 일치를 본 사안 중심으로 ‘원 포인트 개헌’이 추진될 거란 관측이 나왔다. 다만 민주당 내에선 “검찰 개혁 차원에서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 폐지 등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박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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