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월 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위반등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뉴스1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의혹과 관련해 17일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이 회장 등이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 회계를 주도하고 주식 시세를 조종했다는 혐의였다. 참여연대의 의혹 제기에서 시작해 금융위원회 조사·고발을 거쳐 서울중앙지검이 먼지떨이식 수사로 무려 19개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으나 최종심까지 단 1개 혐의도 유죄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국정 농단 사건 이후 9년 만에 모든 사법 리스크를 벗었다.
이 수사는 초기부터 무리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분식 회계 수사에서 증거를 찾지 못하자 증거인멸, 횡령 등 다른 의혹을 제기해 별건 수사, 과잉 수사 비판을 받았다. 이 회장과 삼성 수뇌부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도 법원에서 줄줄이 기각됐다.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할 정도였다.
하지만 검찰은 도리어 수사 인력을 늘리고 수사 범위를 넓혔다. 뭐라도 나올 때까지 털겠다는 오만과 오기였다. 1심에서 모든 혐의가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항소를 포기하라는 여론이 일었으나 검찰은 중단하지 않았다. 이 기소를 주도한 사람은 윤석열-이복현 라인이었다. 이씨는 “국민에게 사과드린다”면서도 이재용 회장에겐 사과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기업이 입은 피해는 계산할 수조차 없다. 국가의 피해이고, 국민의 피해다. 이런 수사 악습을 최소화하는 것이 검찰 개혁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중대범죄수사청,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수사기관을 난립시키는 민주당의 법안으로는 경쟁을 부추겨 과잉 수사를 부르고 별건 수사, 표적 수사로 사람을 잡는 특수 수사의 폐해를 더 키울 가능성이 있다.
이 회장으로선 이제 사법 족쇄에서 해방돼 ‘뉴 삼성’의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국가 수출의 20% 이상을 책임지는 삼성의 총수가 경영에 전념하지 못하고 국정 농단 사건으로 83회, 합병 재판으로만 102회 등 9년간 185회 법정에 출석해야 했다. 그 사이 세계 시장에선 인공지능 혁명이 펼쳐지고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 기술 경쟁이 숨 가쁘게 벌어졌다. 경쟁국 기업들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고 맹렬히 추격했고, 삼성의 ‘메모리 반도체 1등’ 위치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 회장은 이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강력한 혁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 회장 스스로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 문제”라고 했듯이 한국의 대표 기업 삼성은 지금 도약이냐 쇠락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가 알던 삼성이 어디 갔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도체 경쟁력을 회복하고 인공지능·로봇·바이오 같은 신성장 동력을 키워 다시 한번 우리 경제의 견인차가 돼주길 바란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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