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주소 바꿀 때 연동 안돼
“IT강국이 이게 뭐냐” 불만
“IT강국이 이게 뭐냐” 불만
지난해 1월 광주광역시 북구 자동차번호판 교부소에서 담당자가 고액 법인차량용 연두색 번호판을 정리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8000만원 이상의 신규 등록 법인 차량은 연두색 번호판을 부착해야 한다./김영근 기자 |
지난해 법인 주소지를 서울 모처에서 서울 서초구로 옮긴 50대 여성 김모씨는 지난 2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자동차세를 납부하는 지난 1월이 됐는데도 고지서가 오지 않아 직접 서초구청을 찾아갔지만, “법인 소유 자동차 주소를 서초구 사업장으로 변경하지 않아 과태료를 내야 한다”는 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한국 같은 IT 강국에서 법인 주소와 법인 차량 주소가 연동이 안 되는 게 말이 되느냐”며 “그러면 구청에서라도 알려줬어야 하는데, 과태료 장사를 하려는 건지 아무 말이 없다가 갑자기 과태료를 내라고 하니 화가 난다”고 했다. 김씨는 법인 차량 두 대의 주소를 변경하지 않아 결국 48만원(법인 차량 2대라 60만원의 과태료 부과 대상이나 자진 납부해 20% 감면)의 과태료를 냈다고 한다. 서초구 관계자는 “구민들에게 법인 차량 주소 변경을 해야 한다는 알림을 보내기 위해 올해 초 법원 등기소에 서초구로 주소 변경을 한 법인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지만, 그런 경우를 추출하는 게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며 “현재 서울중앙지법 등기소, 구청에 해당 내용이 담긴 공지문을 붙여뒀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자 메시지, 카카오톡 등을 통한 개별 통보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법인의 주소(사용본거지), 상호 등을 바꾸게 되면 법인 차량의 그것도 30일 이내에 의무적으로 변경 등록해야 한다는 사실을 개별적으로 통보받지 못해 과태료를 낸 이들 사이에서 “IT 강국에서 이게 무슨 행정이냐”는 불만이 나온다. 이로 인해 부과된 과태료가 서울에서만 지난 5년간 이미 4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확인되는 등 피해가 늘자 국토교통부가 법 제정 38년 만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자동차관리법과 자동차등록령에 따르면 법인 주소 등을 변경을 한 경우, 법인 소유 차량의 주소도 등기 완료 30일 이내에 지자체에 변경 등록해야 한다. 이를 등록하지 않으면 법인 차량 한 대당 최대 3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서초구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법인 주소 변경과 법인 차량 주소 변경은 각각 법원 등기소와 지자체에서 이뤄지는데, 법원 등기소에서 구청에 법인 주소 변경 통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인 차량은 개인 차량과 달리 본점, 지점 등이 여러 개 있을 수 있어 사용본거지가 상이할 수 있기 때문에 법인 주소를 옮긴다고 해서 법인 차량 주소도 자동으로 연동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로 인해 지자체에선 누가 법인 차량 주소 변경 대상인지 알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문제는 자동차관리법이 제정된 1987년 이후 지금까지 줄곧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과태료를 내는 이들이 많아지자 지난 2018년 권익위에서도 국토부, 지자체 등에 법인이 주소 등의 변경을 신청할 경우 국세청 등 관계기관은 법인차량 등록정보를 변경해야 함을 알려줄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권익위는 행정기관에만 권고가 가능해 등기소를 관할하는 법원행정처에는 권고를 하지 못했고, 국토부는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지금까지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법원행정처는 이러한 사항을 지자체에 통보해야 한다는 법 조항이 없어서 지금까지 지자체에 알리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과태료 통보를 받는 경우가 서울에서만 매년 4000~5000여 건에 달한다. 지난 2020년에는 이로 인한 과태료 부과 금액이 9억8300여만원에 달했고, 지난해에도 7억3700여만원을 기록했다. 지난 5년간 부과된 과태료를 다 합치면 서울에서만 39억원이 넘는다. 전국 법인 수가 100만개에 이르고, 법인 차량 수도 370만대가 넘는 상황에서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국토교통부 전경/뉴스1 |
이렇게 영문도 모른 채 ‘과태료 폭탄’을 맞는 이들이 늘자 법원행정처와 자동차관리정보시스템을 관장하는 국토부는 지난 2023년부터 관련 내용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내년 상반기쯤에는 법인 주소가 바뀌면 자동으로 법인 자동차 주소도 바뀌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국토부는 또한 자동차등록령 제22조 제2항도 개정할 예정이다. 이 조항은 법인 차량 변경 등록의 사례를 망라하고 있는데 여기에 ‘법인 주소 변경이 등기소에서 완료된 경우’를 추가해 법인 주소 등의 등기가 완료되면 법인 차량 주소 변경도 완료된 것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김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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