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전공의들이 오는 9월 의료현장에 돌아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들이 복귀하면 지난해 2월 수련병원을 떠난 지 1년6개월여만에 의료공백이 메꿔진다. 그런데 누구보다 애타게 그들을 복귀를 기다려온 환자들이 이들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다. '청진기'보다 '계산기'부터 집어 든 전공의들에 대한 충격과 실망감 때문일까.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대전협 비대위)는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오는 19일 임시 대의원 총회를 열고 대정부 요구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선(先) 복귀, 후(後) 협상' 방안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공의들은 "의료현장에 일단 복귀할 테니 정부는 우리에게 '당근'을 제공하라"는 후불제 방식의 대정부 협상 카드를 준비하는 듯하다.
그중에서도 유력한 대정부 요구안으로 거론되는 게 '시험 특혜'다. 오는 9월 레지던트 3·4년 차로 복귀할 전공의들이 수련 공백 1년을 채우는 시점인 내년 8월, 전문의 자격시험을 바로 볼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전문의 자격시험을 매년 2월, 연 1회만 시행해왔다. 8월 추가 시험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오는 9월에 수련이 시작되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 때 전공의들이 복귀해도 2027년 2월까지 꼬박 기다려야 전문의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이는 '내년 8월부터 내후년 2월까지' 5개월간의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 전공의들의 계산이 깔린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입대를 앞둔 사직 전공의들은 수련이 끝날 때까지 입대 시기를 미뤄달라는 요구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수련의 연속성을 위해서라는 취지에서다. 현재 입영 대기 중인 사직 전공의는 약 2400여 명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에 따라 전공의는 '의무사관후보생'으로 병적이 관리돼 왔다. 전공의가 수련병원을 퇴직하면 병역법 시행령 제120조에 따라 '의무사관후보생 입영 대상자'가 된다. 별도 조치가 없으면 의료현장에 복귀해도 수련 중 군입대해야 할 수도 있다.
전공의들이 복귀 조건으로 구상한 이런 요구안엔 전공의들이 자신들의 시간을 지키겠다는 셈법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전공의들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동안, 정작 환자들의 시간은 거론되지도 않는다. 전문의 자격시험 응시 시점은 앞당기고, 입대 시기는 늦추겠다는 전공의들의 계산기엔 분초를 오가는 위급한 '환자의 시간'은 입력값에 없다.
이런 '조건부 복귀'가 환자에겐 달가울 리 없다. 복귀하더라도 전공의의 요구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언제든 복귀를 무효로 할 수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가 담겨있어서다. 길게는 수년에서 수십년간 진료받아야 하는 환자 입장에선 주치의가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할 판이다.
지난 14일 이재명 대통령의 '공공의대 설립안' 공약에 대해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동의한다"고 밝혔다. 의사집단은 그간 공공의대 설립을 반대해왔다. 의정 갈등은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 합리적 해결 방법을 찾기에 앞서 '조건부 복귀'에 나서려는 전공의들의 셈법이 아쉽다.
정심교 머니투데이 바이오부 차장. |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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