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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모은 기상·금융·천체 데이터… ‘오케스트라’가 되다

조선일보 광주광역시=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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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모은 기상·금융·천체 데이터… ‘오케스트라’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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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아티스트 료지 이케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서 개인전
료지 이케다가 20년 만에 완성한 '데이터-버스(data-verse)' 3부작이 길이 40m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우주 관측 자료, 유전자 정보, 기상·금융·도로 데이터가 스크린 3개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진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료지 이케다가 20년 만에 완성한 '데이터-버스(data-verse)' 3부작이 길이 40m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우주 관측 자료, 유전자 정보, 기상·금융·도로 데이터가 스크린 3개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진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머리 위에서 데이터가 쉴 새 없이 흐른다.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통로, 천장에 설치된 영상이다. 인간의 유전자 정보를 담고 있는 DNA 데이터를 기하학적 패턴으로 변환했다. 관객들은 쉼 없이 바뀌는 정보를 폭포처럼 맞으며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세계적인 사운드 아티스트 료지 이케다(59) 개인전이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열리고 있다. 복합전시 3·4관에서 지난 10일 개막한 ‘2025 ACC 포커스-료지 이케다’전이다.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은 ACC가 10년 만에 이케다와 재회했다. 이애경 학예연구사는 “이케다는 예술과 기술, 사회와 문화의 융복합을 추구하는 ACC의 비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가”라며 “지난 2015년 개관 당시 거대한 설치 예술을 선보였던 그를 10주년 대표 전시에 다시 초청했다”고 했다.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천장에 설치된 신작 ‘데이터. 플럭스(data. flux)[n˚2]’. DNA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패턴이 10m 길이의 LED(발광다이오드) 스크린을 끝없이 흐른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천장에 설치된 신작 ‘데이터. 플럭스(data. flux)[n˚2]’. DNA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패턴이 10m 길이의 LED(발광다이오드) 스크린을 끝없이 흐른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이케다는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음악 작곡가이자 사운드 아티스트다. 데이터를 조형 언어로 활용해 시각적 감각을 일깨운다. 이번 전시에는 신작 4점을 포함해 총 7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캄캄한 전시장엔 어떤 설명도 없다. “일방적인 해석보다 관객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됐다. 입구 천장에 설치된 신작 ‘데이터. 플럭스(data. flux)[n˚2]’는 DNA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패턴이 10m 길이의 LED(발광다이오드) 스크린을 끝없이 흐른다. 또 다른 신작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는 가로, 세로 10m의 바닥 스크린에 투사된 검은 원과 흰빛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작품. 몸을 울리는 전자음이 빠르게 퍼지면서 관객의 감각을 증폭시킨다.

하이라이트는 초대형 스크린 3개가 넓은 전시장을 가득 채운 ‘데이터-버스(data-verse)’ 3부작. 작가가 20년 만에 완성한 대작이다. 40m 길이의 벽에 투사된 다양한 데이터가 끊임없이 흐른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수집한 우주 관측 자료,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수집된 유전자 정보, 화산·산불·홍수 같은 이미지, 도시 간 네트워크까지 방대한 정보가 고주파 사운드와 함께 쏟아진다. 지난 9일 언론 공개회에서 만난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세포부터 광대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여러 규모의 데이터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며 “순수한 음악처럼 즐겨달라”고 했다. “매초마다 변화하는 기상 데이터나 금융 데이터 같은 동적인 데이터, 천체 물리학이나 입자 같은 정적인 데이터를 조화롭게 활용했다. 모두 허구가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데이터다. 수많은 정보를 직접 공부하고 이해하면서 추출했기 때문에 20년이나 걸렸다.”

그는 이 과정을 “작곡했다”고 말했다. 스스로도 비주얼 아티스트가 아닌 ‘작곡가’라고 표현한다. “전시 연출을 할 때도 모든 사운드와 개별 작품이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연동돼 보이길 바란다”며 “콘서트에서는 누구도 의도를 질문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자신만의 경험과 감정을 통해서 느끼고, 본인만의 메시지를 찾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상욱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은 “기술과 데이터가 주도하는 이케다의 전시를 통해 인간의 감각과 사고, 존재를 어떻게 사유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12월 28일까지.

☞료지 이케다(59)

1966년 일본 기후시에서 태어났다. 1990년대 백색 소음을 결합해 전자음악 실험을 시작했다. 데이터를 조형적 재료로 활용하는 데이터 미학의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시청각 감각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몰입적 경험을 통해 인지의 한계를 실험한다. 현재 파리와 교토를 중심으로 활동 중이며,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 모던, 파리 퐁피두센터 등 세계 유수 기관에서 전시를 선보였다.

[광주광역시=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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