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동 주미대사.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
조현동 주미 대사가 지난 12일 귀국길에 올랐다. 미국·일본·중국·러시아·유엔 등 5강 대사를 포함해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특임 공관장 30여 명에게 2주 내 귀국을 지시한 데 따른 것으로, 40년 외교관 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최근 만난 한 워싱턴 DC의 전문가가 “각기 다른 직함이 적힌 조 대사의 명함만 7~8장 갖고 있다”고 할 만큼, 그는 1985년 입부해 오랜 기간 미국 업무를 다룬 북미통이었다. 풍파를 많이 겪은 공직자로도 기억된다. 노무현 정부 때 내부 직원이 투서한 이른바 ‘동맹파 대 자주파’ 사건으로 좌천됐고, 보수 정부에선 다시 복귀해 승승장구했다.
문재인 정부 초반에도 그를 계속 쓰느냐 마느냐를 놓고 한바탕 격론이 벌어졌다. 결국 정치적으로 유배돼 5년을 쉬다시피 했다. 그래도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訪美),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등 72년 동맹의 서사에 이정표가 된 이벤트 한가운데 있던 공관장이었다. 조 대사는 3년 전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안보 공약 설계에 관여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외교부 1차관이 된 이후 주미 대사로 영전했다. 그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대미(對美) 네트워크로 손꼽히는 외교관이라 해도 새로 들어선 정권에 이런 인물을 계속 중용하라 요구하는 건 순진한 소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관세 전쟁’의 파고가 우리 정치·경제를 흔들고 있는 상황에서 후임자가 오지도 않았는데 촉박한 시한까지 설정해가며 일선 지휘관을 복귀시킨 게 맞냐는 의문은 남는다. 조 대사는 2023년 4월 역대 최단 기간에 아그레망을 받아 부임까지 1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문재인 정부 때 이수혁 대사는 두 달 넘게 기다려야 했다. 새 주미 대사를 임명해도 미국에서 업무를 볼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에선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안호영 대사가 일시 유임돼 5개월 동안 임무를 수행한 전례가 있었다. 국익을 극대화하는 ‘실용 외교’를 추구한다는 이재명 정부는 왜 그런 유연성이 없는가.
워싱턴 DC 곳곳에서 동맹의 이상 기류가 감지된다. 미국의 국익이 우선이라는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인사들이 백악관과 국무부를 접수하고 나서 벌어진 일이다. “빛과 물이 샐 틈 없는 철통 같은 동맹”이란 레토릭은 사라졌고 주한 미군 감축과 이전 배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주일 미군 권한 확대 같은 얘기들이 물밑에서 오가고 있다. 동맹의 근간을 흔들 만한 굵직한 사안들이지만 여권은 ‘국방 주권 되찾기’란 감성적 언어를 내뱉고, 대통령 특사라는 인사는 “전작권을 얘기 못 할 이유가 없다”며 거들고 있다. 어떤 실익이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 대미 외교의 전초 기지인 대사관을 당분간 비워놔도 될 만큼 한가한 상황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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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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