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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민 | 서울 문정고 3학년
인간이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고독을 느낀다.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한’ 이 감정은 저마다의 사연과 양상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고독의 형태의 공통점은 바로 ‘사회적 고립’에 놓인 상태라는 것이다. 100명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고독할 수 있다. 반대로 주변에 한두명만 있어도 인간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절대적인 사람의 수보다 그들과 이루고 있는 사회적 관계가 고독이라는 감정을 좌지우지한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세영, 사카구치 겐타로 주연 드라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재미있게 봤다. 이 작품은 일본 유학생 여자 최홍(이세영)과 일본인 청년 아오키 준고(사카구치 겐타로)가 이별 이후 7년 뒤의 시점에서 재회하는 이야기이다. 최홍은 꾸준히 외로움을 느끼고, 준고의 애정 표현을 원한다. 그러나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낮에는 학교, 오후에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준고에겐 최홍을 보듬어줄 여유가 없다. 최홍은 준고와 다투다 ‘여긴 외국이고 나는 네가 없으면 혼자란 말이야’라고 말한다. 연고 없는 타지에 홀로 유학을 와 장래에 통역사로 근무하는 등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최홍도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이자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과거 자퇴했을 때도, 고등학교에 복학한 뒤에도 한동안 외로움에 시달렸다. 친구들은 모두 고등학교에 다니니 만나도 이야기가 통하는 공통분모를 찾지 못했다. 1년간 그동안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고 살았다. 복학 이후에 만난 친구들은 이미 초·중학교부터 알고 지내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고등학교는 배정받는 곳이 천차만별이라 전부터 친구였던 이들과 계속 친하게 지내는 것이 대다수이다. 그들 사이에 내가 낄 틈은 없었다. 학교에 소속되어 있든 아니든,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고독을 촉발하는 사회적 고립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2022년까지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고독사의 대상을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으로 정의해왔다. 그러나 2023년, 이를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사회적 고립 상태로 생활하던 사람’으로 개정하였다. 더불어, 고독사의 조건인 ‘자살·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음’에서 ‘혼자’라는 키워드를 삭제하기도 했다.
고독의 원천은 저마다 외로움을 느끼는 역치가 다름에서 온다. 같은 상황에 놓여도 아무렇지 않은 이도, 괴로운 이도, 괴롭지 않은 척하는 이도 있다. 이 세 부류의 사람 중 가장 위태로운 집단은 괴롭지 않은 척, 내면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이들이다. 스스로 외로워지는 감각을 느끼고 수용해야 하는데, 이 감각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둔감해지기도 한다. 게다가 고독으로 인한 우울감에 빠지면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가 어려워진다. 개인에게서 비롯되지만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아이러니가 생겨난다.
사회적 고립과 고독으로 인한 사회 문제 해결에는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 한국법제연구원의 ‘사회적 고립 예방 및 대응을 위한 법제연구’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외로움 대응을 위한 사회적 처방을 활용하는 것을 관련 문제 해결의 중점으로 두며, 일본에서는 고독·고립에 대한 지원 요구가 쉬운 사회, 상황에 맞는 상담지원 연계, 관민 연계 강화 등을 강조한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지역사회에서 치료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과 함께 찾아가는 정신건강 서비스도 필요할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에스엔에스 상담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며 사회적 고립의 해결을 위한 세대 맞춤형 접근을 제안했다. 법률 제정, 재정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주위에 홀로 외로움에 빠져 지내는 사람이 없는지, 나 자신은 고독으로부터 안전지대에 있는지 되돌아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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