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정 기자]
[디지털포스트(PC사랑)=김호정 기자 ] 국내 상장사들이 정부의 상법 개정안 공포를 앞두고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며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대기업들은 상법 개정안 영향 및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한 외부 초청 강연을 진행하는 한편, 회사 내부규정을 정비하고 이사회 운영 투명성 확보에 나섰다.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에 대한 추가 대책을 고심하는 등 분주한 가운데 유독 태연한 기업이 있다. 바로 미국 델라웨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쿠팡이다.
국회 본회의를 거쳐 지난 1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모든 주주로 확대하고,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 이사로 바꾸는 내용을 담았다. 개정안은 감사위원 선출 시 최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을 강화하는 내용과 대규모 상장회사의 전자주주총회 도입 의무화 등이 포함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상법 개정안 도입으로 기업의 지배구조와 주주권인 보호에 획기적인 변화가 불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칼날은 정작 쿠팡에게는 닿지 않고 있다. 쿠팡이 한국에 설립된 회사가 아닌 미국 회사이기 때문이다.
국회 본회의에 통과된 상법 개정안. 사진=디지털포스트 |
[디지털포스트(PC사랑)=김호정 기자 ] 국내 상장사들이 정부의 상법 개정안 공포를 앞두고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며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대기업들은 상법 개정안 영향 및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한 외부 초청 강연을 진행하는 한편, 회사 내부규정을 정비하고 이사회 운영 투명성 확보에 나섰다.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에 대한 추가 대책을 고심하는 등 분주한 가운데 유독 태연한 기업이 있다. 바로 미국 델라웨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쿠팡이다.
국회 본회의를 거쳐 지난 1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모든 주주로 확대하고,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 이사로 바꾸는 내용을 담았다. 개정안은 감사위원 선출 시 최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을 강화하는 내용과 대규모 상장회사의 전자주주총회 도입 의무화 등이 포함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상법 개정안 도입으로 기업의 지배구조와 주주권인 보호에 획기적인 변화가 불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칼날은 정작 쿠팡에게는 닿지 않고 있다. 쿠팡이 한국에 설립된 회사가 아닌 미국 회사이기 때문이다.
쿠팡의 최상위 지배기업인 Coupang Inc는 미국 델라웨어주에 설립된 기업으로 Coupang Global LLC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다. 국내 유통기업인 한국 쿠팡㈜은 Coupang Global LLC가 지분을 100% 소유한 자회사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 사진=쿠팡 |
한국계 미국인 김범석 의장이 Coupang Inc를 창업했고, 일본 기업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가 최대 주주로 구성돼 있다. 김범석 의장은 상장 전에 소프트뱅크 손정의씨로부터 30억 달러가 넘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받았고, 뉴욕 증시 상장을 통해 42억 달러를 조달했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쿠팡은 미국 기업으로서 한국 상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번 상법 개정의 핵심 조항인 이사 충실의무 확대나 '3% 룰' 같은 규제는 쿠팡의 경영진에게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쿠팡이 미국에 본사를 둔 건 철저히 계산된 방어책이다. 김 의장은 차등의결권 제도를 통해 상장 이후에도 쿠팡에 대한 지배력을 이용하고 있다. 김 의장은 쿠팡의 보통주인 Class A주식보다 무려 29배나 의결권이 많은 Class B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10%도 안 되는 지분으로도 70%가 넘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김 의장이 뉴욕 증시를 선택한 이유는 차등의결권을 통해 쿠팡을 자신의 철학에 맞게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상법상 허용되지 않는 구조이며, 한국에서 상장했더라면 1주 1의결권 원칙에 따라 김 의장은 지분이 희석되며 경영권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높다.
국내 상장사들은 자산 규모에 따라 전자주총 의무화, 독립이사 확대, 감사위원 선출 시 의결권 제한 등으로 이사회의 구조 자체를 재편해야 한다. 이에 따라 사외이사 교체 수요가 늘고, 기업들은 기존 지배구조를 수정하는 데 막대한 부담을 떠안게 됐다.
하지만 쿠팡은 상법 개정의 부담에서 벗어나 있으면서도 여전히 국내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환경 문제 등에서도 법 제도의 외곽에 서 있다.
앞서 쿠팡은 2021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 '한국에서의 법률 리스크'를 별도로 명시했다. 쿠팡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비롯해 당시 입법 논의가 진행 중인 상법 개정안에 따른 각종 규제를 '미래 위험 요인'으로 제시하며 "해당 법안이 법제화되면 쿠팡의 핵심 비즈니스 분야에 역량이 집중되지 못할 수 있다"며 "이는 쿠팡의 사업이나 재정 상태, 실적에 대한 악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 경영인들이 기업이나 소속 임직원들의 행위로 인해 수사를 받거나 형사처벌을 받게 될 위험이 있다"며 "지식재산권 침해나 근로기준법,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고발, 제조물 관련 결함이 있으면 기업은 물론 경영진까지 기소되거나 수사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쿠팡은 상법 개정안을 잠재적이고 유동적인 미래 위험으로 간주하며 규제 회피 가능성을 은연 중에 시사한 것이다.
쿠팡의 본사가 있는 미국 델라웨어는 조세 부담이 적고 기업 친화적인 법률 체계를 갖춘 '조세피난처'로 알려져 있다. 델라웨어 주는 주 내에서 사업을 하지 않으면 법인세 8.7%를 부과하지 않으며 다른 주에서 벌어들인 수익에는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특허권, 상표권, 상호권 등 무형자산에 대해서도 과세를 하지 않아 한국 자회사가 쿠팡 본사로 로열티를 송금하더라도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쿠팡은 본사를 통해 로열티, 배당, 이전가격 등의 방식으로 한국 수익을 역외로 송금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국내에서 거둔 수익을 어떠한 규제도 받지 않고 국외로 유출하는 최적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사진=한국 쿠팡 사옥. |
한국에서 기업활동을 통해 막대한 매출을 올리면서도 상법 개정안과 같은 국내 규제에는 '미래 위험 요인'으로 간주하며 회피하는 쿠팡의 태도가 오히려 역차별 논란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아가 쿠팡을 우회 모델로 삼아 상법 개정안의 실효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법 개정안이 국내 상장사 및 국내 법인을 대상으로 두고 있어 쿠팡과 같은 외국계 기업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며 "외국계 우회 구조 기업이 법 적용 회피로 경쟁상 우위 확보 가능성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동일시장, 상이한 규제'라는 규제 불균형 현상으로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및 경쟁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유니콘급 스타트업들이 미국 법인 설립 후 역삼각 합병이나 SPC 활용 등을 통해 한국에서 사업을 영위하면서도 외국 법인으로 우회 상장하는 지배구조를 설계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국내에서 영업하는 외국계 기업의 국내 법령 적용을 무력화해 상법 개정 실효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상법 개정으로 대다수 한국 기업이 투명한 지배구조 구축이라는 시험대에 오르는 가운데 쿠팡과 같은 지배구조를 이용한 형식적 회피가 제도 취지를 무력화할 수 있는 만큼 외국 기업에 대한 사전 요건화 및 차등 적용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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