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우석 |
김현아 | 작가·로드스꼴라 대표교사
베란다 청소 좀 도와달라는 내 말에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채채가 말했다. 베란다 청소까지 시켜야겠어? 나 다음주에 군대 가는데. 입대를 일주일 앞두고 우리 집에 놀러온 조카 채채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에 기분이 들쭉날쭉해 보였다. 왜 아니겠는가. 일주일 뒤면 지금 누리는 자유를 유예한 채 1년 반 동안 유배라면 유배일 수 있는 군복무를 해야 하니 심란할 법도 하리라. 입대를 앞둔 대부분의 청년이 그렇듯 채채도 선배와 친구들을 만나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군생활에 대한 정보도 얻고 준비할 것들을 공유했다. 어떤 선배는 중간만 하라 하고 어떤 선배는 최선을 다하라 하고 어느 선배는 할 만하다 하고 어느 선배는 빌어먹을 시간낭비라고 제각각 다른 조언을 해주더란다. 나도 한마디 보태고 싶었지만 고모는 군대 가보지 않았잖아요, 라고 할까 봐 입을 닫았다. 로드스꼴라 제자 상이의 경험담도 꿀꺽 삼켰다. 시작도 하지 않은 군생활에 두려움을 심어줄까 봐.
군대를 제대한 상이가 찾아왔다. 로드스꼴라를 졸업하고도 입대를 하거나 제대를 할 때면 한번씩 찾아와 인사를 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장도에 무운을 비는 마음으로 혹은 건강하게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고마움에 맛있는 밥 한끼를 같이 먹곤 했다. 점심을 먹는 중간에 상이가 군대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 2년간 군대에 있었으니 그 얘기 말고 할 게 뭐가 있겠나 싶어 듣고 있는데 어느 순간 상이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맹렬해진다 싶더니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자대 배치를 받고 한달도 채 안 되어 상이 내무반에서 총기 사고가 났단다. 상이도 그 현장에 있었다. 분노에 찬 목소리와 총을 겨누고 쏘고 피가 튀기고 사람이 죽는 과정을 세상에, 목격해버린 것이다. 스물한살, 학교 다니며 공부나 하고 영화나 보고 친구들과 술이나 한잔 따위 일상을 보냈던 상이가 이 비현실적인 상황의 한가운데 있었던 거다. 게다가 그 현장을 상이와 그의 동료들이 수습했단다. 피를 닦고 시뻘건 걸레를 빨고 하는데 후들후들 손이 떨리고 심장이 뛰고 토할 거 같더라는 이야기를 상이는 혼신을 다해 나에게 했다. 눈빛이 형형했다. 사고 후 어떤 조치들이 있었냐 물으니 상담사가 두어차례 상담을 한 거 말곤 특별히 대응이 없었단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잊히지 않고 그 장면은 상이의 생을 따라다닐 거라는 생각이 드니 있는 대로 화가 나고 속이 상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야 오죽했겠는가.
베트남전쟁과 한국군이란 주제를 꽤 오랜 시간 들여다보며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이란 책도 낸 바 있다. 처음 이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깨달은 건 와, 내가 이토록 온전히 완벽하게 무지한 분야가 있구나, 라는 거였다. 사단과 연대, 대대와 중대, 소대 따위 군의 조직도는 물론 병장·소위·중위·상사·중사 계급도 헷갈렸다. 특전사와 해병대, 유디티(UDT), 특임대의 차이가 뭔지도, 합참과 수방사 방첩사의 역할과 기능도 알지 못했다. 그뿐이랴, 전차와 총의 종류, 전함과 전투기의 유형도 몰랐다. 한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조직에 대해 어쩌면 이리 완전히 무지했단 말인가, 신기할 정도였다. 무지이기도 하지만 배제이기도 했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공동체에 엄연히 존재하는 중요하고 막강한 조직에 대해 어느 수업에서도 배워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베트남에서 일어났던 전쟁을 공부하고 취재하고 기록하면서 전쟁은 남녀노소가 겪는데 군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부끄럽기도 억울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군대는 신기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우주산업과도 연루되어 있는데 말이다.
이십대 남성의 보수화를 다룬 문화방송(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를 봤다. 인터뷰 대상으로 등장하는 남성 청년들은 한결같이 병역 문제를 거론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인생에서 가장 자유롭고 진취적인 시기에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서 복무하는데 여성들은 그 시간 동안 자기 개발하고 취직 준비하고 외국 연수하며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에 억울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군대에서의 이력을 제대로 인정해주지도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했다. 사실 한국의 이십대 남성은 병역의 ‘의무’를 어떤 식으로든 해치우지 않고는 미래 설계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채채의 경우도 그랬다. 병역 문제는 청년 남성들의 분노를 강화하고 공고히 하는 가장 주된 요인이다. 이 문제가 유연한 해법을 마련하지 못하는 한 젠더 갈등 역시 해소되기 어려울 듯하다.
덴마크는 6월 초 남녀 모두를 징병 대상에 포함시키고 의무 복무 기간을 기존 4개월에서 11개월로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노르웨이, 스웨덴에 이어 유럽에서 세번째로 남녀 모두에게 징병제를 적용하는 국가가 됐다. 병역 제도는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시스템이다. 국가 안보를 위한 전략뿐 아니라 사회 정의, 한 개인의 인생 설계와도 연관되어 있다. 이제 우리도 병역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간단치 않은 문제다. 인구 구조의 변화, 미래 안보 전략, 인권과 복지 모든 분야와 연동되어 있다. 모병제가 능사도 아니다. 여성의 군 참여 또한 군의 구조적 개혁이 이루어질 때 제대로 가능하다. 그럼에도 지금이 군대에 대한 토론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다. 인공지능(AI)은 사회 전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군대 역시 마찬가지다. 군사작전의 개념과 병사의 정의도 달라져야 하는 시대, 군대의 변화와 혁신을 이야기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다. 갈등과 진통이 따르겠지만 정부와 시민사회가 사회적 대토론장을 열어주길 희망한다. 물론 이 논의에는 남성과 여성이 공히 참여하여 새로운 시대의 군대를 상상하고 설계하고 기획하고 건설할 수 있어야 하겠다. 지난하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경험을 한다면 우리 공동체는 성큼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채채는 입대했다. 강원도 화천 신병교육대에서 훈련을 받고 지오피(GOP)로 배치됐다. 지오피는 남방한계선 철책선에서 24시간 경계근무를 하며 적의 기습에 대비하는 소대 단위 초소를 말한다. 피엑스도 없어 일주일에 한번 간식을 실은 차가 온다고 했다. 채채를 비롯한 군장병들이 이 여름을 잘 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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