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 빨간날 복귀? 휴무 기대감에 트렌드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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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빨간 옷을 입은 그대였는데…어느 순간 옷을 바꿔입은 그대의 변신이 야속하죠. 특히 그 색이 ‘검은색’인 점이 가장 가슴 아픈데요. 하지만 이 또한 그대의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7월 17일 제헌절을 앞두고 이 ‘색깔’의 변신 가능성이 모두를 사로잡았는데요. 제헌절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법안이 최근 발의된 겁니다. 5대 국경일 중 유일하게 공휴일에서 제외된 제헌절의 법적 지위를 되살리기 위한 시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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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주년 제헌절 경축식 |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은 9일 ‘공휴일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는데요. 개정안은 제헌절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고 해당 날짜가 주말 또는 다른 공휴일과 겹치는 경우 대체공휴일을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헌법을 세운 날을 기념하며 쉬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는 요즘이죠. 그런데 이런 변신은 제헌절만의 일은 아닙니다. 과거엔 쉬었지만 지금은 일하는 날, 반대로 원래는 평일이었는데 지금은 버젓이 공휴일인 날이 더 있는데요. 그리고 그런 날들이 의외로 많죠.
제헌절은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것을 기념하는 날로 이듬해인 1949년부터 공휴일로 지정됐습니다. 7월의 한가운데를 지키던 이 국경일은 2008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개정으로 조용히 ‘쉬지 않는 날’로 내려앉았는데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거였죠. 주 5일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연간 공휴일 수가 많아졌고 정부는 선택과 집중의 명분으로 제헌절을 제외했는데요. 그러나 쉬는 날이 아니게 되면서 헌법을 기념하는 방식도 흐릿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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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정부는 10월 1일 국군의 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죠. 광복 이후 처음으로 국군의 이름으로 대규모 열병식을 벌인 1956년 이후 이날은 1976년부터 1990년까지 약 15년간 공휴일이었는데요. 그러나 1991년 관공서 공휴일 정비 과정에서 빠졌고 이후 한 번도 돌아오지 못했죠. 그랬던 국군의 날이 2024년 딱 하루지만 '다시 쉬는 날'로 돌아왔는데요. 정부는 이를 두고 "34년 만의 복귀"라고 표현했습니다. 물론 올해도 쉴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죠.
식목일도 한때는 쉬는 날이었습니다. 4월 5일 식목일은 나무를 많이 심고 아껴 가꾸도록 권장하기 위한 기념일인데요. 단순한 환경 캠페인 이상으로 국토녹화와 산업화의 상징이었죠. 1949년부터 공휴일로 지정됐고 한때는 전국 초등학교에서 단체로 묘목을 심던 시절도 있었는데요. 그러나 2006년 식목일은 공휴일에서 빠졌습니다. 4월엔 이미 어린이날과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 있다는 이유였는데요. 식목일은 지금도 기념일로 남아 있지만 대규모 인원이 나서는 행사는 사라졌죠. 나무 대신 보고서를 심는 날이 돼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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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공휴일도 있는데요. 한글날은 공휴일 재지정을 경험했죠. 1949년 공휴일로 지정됐지만 1991년 공휴일 조정 대상이 되면서 제외됐습니다. 그러나 이후 문화계와 교육계, 학계의 오랜 노력 끝에 2013년 부활했고 지금은 대체공휴일까지 적용되죠. 반면 UN의 날(10월 24일)은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국제사회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공휴일로 지정됐다가 1976년 국군의 날과의 일정 중복 조정으로 사라졌는데요. 지금은 거의 기억하는 사람도 드문 현실이죠.
사실 명절도 연휴가 아니었던 것을 아시나요? 요즘은 주말을 끼며 5일 연휴 혹은 대체공휴일까지 지정돼 최소 4일을 확보한 연휴인데요.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당일 하루만 쉬는 날이었습니다. 설 전날과 다음날까지 포함한 3일 연휴 체계는 1989년부터 시행됐는데요. 추석 역시 1980년대 후반부터 확대됐죠. 변화의 배경에는 국민 여론, 정치적 배려 그리고 당시 경제 발전에 따른 여유가 그 결정에 큰 힘이 됐죠. 공휴일은 국민의 요구와 시대정신이 반영된 정치적 선택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비록 공휴일에서 빠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날들도 많은데요. 양력설 다음날인 1월 2~3일은 과거엔 연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신정 연휴는 없죠. 스승의 날(5월 15일), 청소년의 날(5월 넷째 주 수요일), 농업인의 날(11월 11일)도 기념일로 존재하지만 공휴일은 아닙니다. 반대로 성탄절(12월 25일)과 석가탄신일(음력 4월 8일)은 최근엔 대체공휴일로 지정된 바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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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주년 제헌절 경축식 |
공휴일은 법률이 아니라 대통령령으로 정해집니다.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그것인데요. 국회의 법안 발의로 지정이 되지 않으며 최종적으로는 행정부와 대통령의 의지로 정해지죠. 임시공휴일은 국무회의를 통해 1회 한정으로 지정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정치적 유연성 확보 수단으로 자주 쓰입니다. 2015년 광복절 전날(8.14), 2020년 코로나 대응 휴식일(8.17), 2023년 개천절 전날(10.2), 2024년 국군의 날(10.1)이 바로 그 예인데요.
헌법은 국가의 시작, 그 출발을 기억하는 제헌절은 다시 공휴일이 될 수 있을까요? 제헌절은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국가 정체성과 헌정 질서의 출발을 기념하는 날로서의 상징성을 지니죠. 개천절이 ‘나라의 탄생’이라면 제헌절은 ‘국가의 틀’이 잡힌 날입니다.
물론 공휴일 증가는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는 반대 입장의 목소리도 큰데요. 헌법 교육은 쉬는 날이 아니라 학교와 사회 내 실천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주장과 공휴일 지정이 정치적 인기 영합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쉬이 넘길 수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휴일은 사회의 우선순위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은데요. 1990년대엔 경제와 산업 효율이 우선시되며 줄었고 2010년대 이후엔 상징성과 정체성 회복이 강조되며 늘어나는 추세죠.
단지 ‘편한 날’로 단정 짓기엔 아쉬운데요. 무엇을 기념할지를 집단으로 결정한 날과 다름없는 공휴일. 7월 공휴일의 빈칸, 제헌절은 다시 빨간 옷과 재회할 수 있을까요? 그 결정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이투데이/기정아 기자 (kki@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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