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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못 꺼냈다 쫓겨날 판…태국인 10명 중 8명 "총리 나가거나 의회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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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못 꺼냈다 쫓겨날 판…태국인 10명 중 8명 "총리 나가거나 의회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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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쿠데타 주역 쁘라윳 총리, 유력 후보로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가 4일 방콕 문화부에서 직원들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방콕=EPA 연합뉴스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가 4일 방콕 문화부에서 직원들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방콕=EPA 연합뉴스


태국 국민 10명 중 8명은 패통탄 친나왓 총리가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의회를 해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국 정치인에게 자국 군을 비하한 통화 내용이 유출되고 헌법재판소로부터 총리 직무까지 정지된 상황에, 민심까지 등을 돌리면서 정권이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다.

14일 방콕포스트 등에 따르면, 태국 정부 산하 국립개발행정연구원(NIDA)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2.1%는 ‘패통탄 총리가 사임하고 새 총리를 선출해야 한다’고 답했다. 의회를 해산하고 재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는 응답도 39.8%에 달했다. 10명 중 8명 이상이 조기 정권 교체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패통탄 총리가 국정을 계속 이끌어야 한다는 답변은 15%에 그쳤다. 패통탄 총리는 태국 정치 거물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막내딸이다.

가장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는 쁘라윳 짠오차(32.6%) 전 총리가 꼽혔다. 2014년 군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뒤 2023년까지 9년간 집권했던 인물로, 여전히 보수층의 견고한 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다시 정계에 복귀할 경우, 태국이 다시 '군부 시대'로 회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 응답자의 1%는 ‘쿠데타가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9, 10일 전국 성인 1,31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쁘라윳 짠오차 전 태국 총리가 2019년 6월 방콕 정부청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방콕=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쁘라윳 짠오차 전 태국 총리가 2019년 6월 방콕 정부청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방콕=AP 연합뉴스 자료사진


패통탄 총리를 불신하는 여론은 최근 발생한 외교 실책에서 비롯됐다. 지난 5월 말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 지대에서 양국 군이 충돌해 캄보디아 병사 한 명이 사망했다. 두 나라 간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패통탄 총리가 캄보디아 ‘실세’로 꼽히는 훈센 전 총리와 통화하면서 자국군 사령관을 비난한 내용이 유출됐다.

군부 영향력이 막강한 태국에서 군을 부정적으로 언급하며 훈센 전 총리 앞에 머리를 숙인 건 통수권자의 자격 미달이라는 비난이 거세졌다. 이에 연립정부 제2 당인 품짜이타이당은 연정 탈퇴를 선언하고 총리 불신임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총리 사임을 촉구하는 시위도 잇따른다. 태국 헌법재판소는 이달 1일 패통탄 총리에 대한 해임 심판 청원을 받아들여 그의 총리 직무를 정지시켰다. 헌법상 윤리 기준을 위반했는지 여부도 심리 중이다.

이후 여론이 더욱 악화하면서 패통탄 총리의 정치적 고립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민간 여론조사를 보면 그의 지지율은 지난 3월 30.9%에서 최근 9.2%로 급락했다. 야당인 인민당의 낫타퐁 르엉빤야웃 대표는 “총리가 정당성을 회복하는 길은 의회를 해산하고 국민에게 다시 권한을 돌려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