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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 문제로 세계유산 지각 등재 '반구천 암각화'...침수 해결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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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 문제로 세계유산 지각 등재 '반구천 암각화'...침수 해결 언제쯤

속보
"트럼프, 베네수엘라와 전쟁 배제하지 않아" NBC
하류 댐 탓에 연평균 39일 침수
보존 대책 20년 넘게 제자리
수위 낮추면 식수 줄어 딜레마


태풍 카눈 상륙 다음 날인 2023년 8월 11일 울산 울주군 언양읍 반구대 암각화가 절반가량 물에 잠겨 있다. 울산=연합뉴스

태풍 카눈 상륙 다음 날인 2023년 8월 11일 울산 울주군 언양읍 반구대 암각화가 절반가량 물에 잠겨 있다. 울산=연합뉴스


'15년 6개월'.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린 뒤 정식 등재까지 걸린 시간이다. 같은 해 잠정목록에 포함된 남한산성은 4년 만에, 서원은 9곳을 묶은 연속유산임에도 8년 만에 등재된 것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더 걸렸다.

역사·문화적 가치가 빼어난 데도 이례적으로 지연된 배경에는 수십 년 반복된 침수 피해와 이를 둘러싼 보존 대책 부재, 행정 갈등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12일(현지시간) 등재를 최종 결정해 당장 큰 산은 넘었지만 근본적인 보존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13일 울산시 등에 따르면 국보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아우른 반구천 암각화는 명승으로 지정된 반구천 일대 약 3㎞에 걸쳐 있다. 이 중 반구대 암각화는 사연댐 상류 4.6㎞ 지점이라 댐 수위가 53m를 넘으면 침수가 시작되고, 57m가 넘으면 완전히 수몰된다. 이 때문에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이후 2015년과 2020년 두 차례의 우선등재목록 심의에서 잇달아 고배를 마셨고, 2021년에야 우선등재목록에 선정됐지만 이듬해 등재신청후보 심의에서 두 차례 연속 보류 판정을 받는 등 난관을 겪었다.

침수의 원인인 사연댐은 암각화 발견 6년 전인 1965년 건설됐다. 당시는 대규모 개발사업에 앞서 문화재조사가 의무적으로 이뤄지던 시기가 아니었다. 설상가상 수문이 없는 자연월류형으로 설계, 물이 가득 차면 흘러넘치게 두는 것 외에 수위 조절도 어렵다. 결국 암각화는 최근 10년 동안에만 431일, 연평균 39일 물속에 잠겼다. 2011년 울산대 반구대암각화 유적보존연구소가 1972년과 2008년 촬영된 암각화 암면 사진을 정밀 분석한 결과 56개 지점에서 탈락이 확인되기도 했다.

침수가 반복될수록 부식과 풍화작용으로 인한 훼손도 빨라지는데, 보존 논의는 2000년대 들어서야 본격화됐다. 2003년부터 차수벽 설치, 생태제방 건설, 물길 변경, 카이네틱(투명구조물) 댐 설치 등 각종 보존책이 도출됐지만 암각화와 주변 경관 훼손 우려로 모두 무산됐다. 2014년부터는 상시로 물을 빼내 수위를 53m 이하로 유지해도 집중호우나 태풍 등으로 한 번에 많은 비가 내릴 때는 도리가 없다.


1965년 울산 울주군 언양읍 사연댐 건설로 생긴 사연호. 이 물이 울산시민의 식수라는 게 수십 년 이어진 반구천 암각화 보존의 딜레다. 울산시 제공

1965년 울산 울주군 언양읍 사연댐 건설로 생긴 사연호. 이 물이 울산시민의 식수라는 게 수십 년 이어진 반구천 암각화 보존의 딜레다. 울산시 제공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21년부터 사연댐에 수문 3개를 설치해 수위를 조절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총 650억 원을 들여 2027년까지 사연댐 여수로(수위를 낮추기 위한 수로) 47m 지점에 폭 15m, 높이 7.3m 규모의 수문 3기를 설치하는 것이 핵심이다. 수문이 설치되면 현재 60m인 여수로 수위가 52m로 낮아져 반구대 암각화의 침수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공정이 다소 지연돼 수문 설치는 2030년쯤 마무리될 전망이다.

문제는 수문 설치로 댐 담수 능력이 감소하면 울산시민이 쓸 식수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마련한 '낙동강 통합물관리 방안'에 따라 경북 청도군 운문댐에서 물을 끌어오는 대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지만 지자체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답보 상태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반구천 암각화는 울산의 자랑이자, 한반도 선사문화를 대표하는 귀중한 유산"이라면서도 "수문을 열면 하루 4만9,000톤의 식수가 줄어드는 만큼 대체 식수 확보 방안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네스코는 등재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훼손되면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분류하고, 문제가 장기간 해결되지 않으면 세계유산 목록에서 제외한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56곳이 위험 유산으로 관리되고 있는데, 독일 드레스덴의 엘베 계곡과 오만의 아라비아 오릭스 보호구역, 영국 리버풀 해상상업도시 3곳은 자격이 박탈됐다.

울산= 박은경 기자 chang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