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원의 아내 김선희씨가 발언하고 있다. 신장식 의원 제공 |
이춘재│논설위원
“난 떳떳하니까 걱정하지 마. 당신 나 못 믿어?” 사람 좋은 웃음으로 아내를 안심시켰던 남편은 이 말을 남긴 채 2023년 5월1일 세상을 등졌다. 윤석열 정권의 탄압에 맞섰던 고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원의 얘기다. 부인 김선희씨는 지난 10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그때 일을 떠올렸다. “아빠에 대한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할 제 아이들이, 아빠와 동료분들이 잘못한 게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조국혁신당 서왕진 의원이 이날 대표 발의한 ‘윤석열 정권 검찰권 오남용에 관한 진상조사 및 피해 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양씨와 같은 이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법이다.
윤석열 정권은 취임 6개월도 채 안 돼 이태원 참사 등으로 폭락한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건설노조를 제물로 삼았다.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2월21일 국무회의에서 난데없이 ‘건폭’(건설 현장의 폭력행위)이란 말을 꺼냈다. “아직도 건설 현장에서는 강성 기득권 노조가 금품 요구, 채용 강요, 공사 방해와 같은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 검찰, 경찰,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가 협력해 강력하게 단속하라.” 할 줄 아는 일이라곤 누굴 수사하는 것밖에 없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다운 지시였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특진을 내걸고 부하들을 독려했다. 수사 초기 50명이었던 특진 대상을 90명으로 늘렸다. 승진에 목말라하는 경찰의 조직문화는 과잉 수사를 불렀다. 양씨가 대표적이다. 강원지역 건설업체들은 양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탄원서를 냈다. 노조 간부인 양씨가 현장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이 말한 채용 강요, 금품·노조 전임비 요구, 공사 방해는커녕 오히려 공사 진행에 건설노조 덕을 크게 본다고 했다. 그런데도 경찰은 양씨를 협박범으로 몰았다. 양씨의 죽음에도 ‘건폭몰이’는 멈추지 않았다. 2023년 8월까지 무려 5천명이 넘는 노조원들이 입건됐다. 수사받는 동안 이들의 일감은 끊겼다.
경찰은 건설노조를 악마화한 조선일보와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은 화끈하게 봐줬다. 사자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발된 이들 사건을 2년 동안 질질 끌다가 대선 직전인 지난 5월23일 슬그머니 무혐의 처분(불송치)했다. 양씨의 죽음 직후 2023년 5월17일 조선일보는 ‘분신 노조원 불붙일 때 민노총 간부 안 막았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원 전 장관은 이 기사를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는 글과 함께 퍼 날랐다.
기사 내용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패륜적이었다. 양씨가 극단적 선택을 할 때 현장에 있었던 동료 노조원이 방조하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취재와 기사 게재 과정 모두 신문의 수준을 의심케 할 정도로 허술했다. 기자는 건설노조와 경찰 쪽에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분신 방조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상황이 찍힌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만 보고 기사를 쓴 것으로 의심됐다. 사회부장은 기사를 자회사 소속 기자가 작성했다는 이유로 ‘책임은 전적으로 자회사에 있다’고 발뺌했다. 자신은 ‘편집국장의 부탁으로 지면 일부를 내어준 것 외에는 관여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월간조선은 하루 뒤인 5월18일 온라인에 ‘[단독] 분신 사망 민노총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 유서 위조 및 대필 의혹’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유서 3장 중 1장의 글씨체가 ‘굳이 필적 감정을 하지 않고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 유서의 필적은 양씨의 것과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잡지는 전문가의 필적 감정도 받아보지 않고 위조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분신 방조 의혹 기사의 근거가 된 시시티브이 영상은 춘천지검 강릉지청과 강릉경찰서만 갖고 있는 증거물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기자와 시시티브이 관리 직원 등에 대한 압수수색도 없이 무혐의 처분했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 조미소 경감에게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언론 취재에 응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답했다. 윤석열 정권의 ‘검찰통치’는 윤 전 대통령 혼자서 만든 게 아니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권력자에게 잘 보이려고 쓴 ‘영혼 없는’ 공무원들이 일조했다. 윤석열 정권의 ‘아이히만’(나치 부역자)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지 않으면 ‘제2의 윤석열’은 또 나온다.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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