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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벤치마킹해 ‘K-반도체·AI 혁신 패키지’ 신속 추진해야”

조선비즈 이코노미조선=윤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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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벤치마킹해 ‘K-반도체·AI 혁신 패키지’ 신속 추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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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반도체융합학 교수 -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학·석사,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화학공학 박사, 전 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 책임연구원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반도체융합학 교수 -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학·석사,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화학공학 박사, 전 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 책임연구원



“한국은 대만이 펼쳐 온 ‘클러스터 집적→ 민관 협업→스타트업·인재 유인’ 모델을 벤치마킹하되, 우리 현실에 맞게 보완·확대하는 정책 패키지를 구현해야 한다. 정책적으로 투자 승인 절차 간소화, 연구개발(R&D) 설비투자 세액공제 확대, 하이퍼 파운드리(거대 수탁생산) 지정제 등을 도입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핵심 인재 확보를 위해 유턴 비자, 세제 우대, 취업 비자 연계 활성화 등 문호 개방도 필요하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반도체융합학 교수는 한·중·일 반도체 산업의 역사와 한국 반도체가 직면한 과제를 다룬 책 ‘반도체 삼국지’의 저자다. 그는 최근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대만 정부가 구축한 산업 에코 시스템은 향후 산업 생태계의 무게중심을 견고히 잡게 해줄 핵심 동력”이라며 “기업이 필요로 하는 곳에 즉시 투자 지원을 할 준비가 된 대만과 달리 한국은 복잡한 행정 절차와 과도한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 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이어 “과학기술 클러스터를 육성하고, 맞춤형 인력을 양성하는 대만 정책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대기업 중심 투자에서 벗어나 중소기업·스타트업이 자생할 수 있는 구조가 정착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충분히 오랜 기간에 걸쳐 지원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만이 글로벌 AI 반도체 생태계의 허브로 떠오른 지 오래다. 그 과정에서 대만 정부는 어떤 역할을 했나.

“대만 정부는 일찌감치 ‘반도체+인공지능(AI)’을 미래 핵심축으로 정하고, 정책금융· 조세·인프라·인재 유치, 민관 협업을 종합적으로 동원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 왔다. 이 같은 차별화 전략은 대만이 글로벌 AI 반도체 허브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이다. TSMC의 최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 시설을 가급적 대만 내에 유지하도록 유도해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역량을 극대화한 것도 중요한 역할이었다.”

투자 인센티브 제공도 첨단 기술 경쟁력 제고에 적잖은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일례로 R&D 지출의 25% 세액공제, 첨단 제조 장비 투자 5% 세액공제를 제공해 기업의 사기를 높였다. 스타트업과 중소상공인(SME)을 위해서는 20% R&D 세금 환급, 산업기술연구원(ITRI)과 지식재산권(IP) 전환 센터 설립 지원 등을 통해 ‘설계→ 시제품→양산’까지 원스톱 지원 체계를 구축했다. 신주과학단지, 타오위안 아시아 실리콘밸리 개발 계획 등을 통해 토지·전력·교통·통신망 등 필수 인프라를 일괄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반도체→AI→사물인터넷(IoT)→스마트 제조’까지 수직 계열화된 가치 사슬을 한곳에 집결시켰다.”

인재 유치를 위한 노력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대만 역시 낮은 출생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에 따라 대만 정부는 전문 인력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글로벌·현지 인재 파이프라인을 강화하는 전략을 세웠다. 매년 석·박사 2만 명, 외국인 유학생·박사후과정 1만 명을 양성 및 유치하고 있으며, 신속 비자, 장기 체류 허용 등으로 해외 우수 인재 유입에 제도적 문호를 활짝 열어둔 상태다. TSMC, ASE, 폭스콘 등 주력 기업에는 맞춤형 세제· 보조금 외에도 산업단지 내 입지 우선 제공, 공정 장비 공동 개발 펀드 조성 등을 병행해 기술 확보와 비용 절감을 동시에 꾀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TSMC가 대만을 중심으로 반도체 생태계를 재편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TSMC 협력은 공정·패키징 혁신 가속화,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확대, 설계·시뮬레이션 플랫폼 표준화 등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는 대만 기업의 기술 리더십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대만을 중심으로 한 ‘통합형 파운드리-플랫폼’ 모델이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대만과 경쟁에서 한국 반도체의 약점은.

“대만과 비교해 한국 반도체 산업의 가장 큰 약점은 메모리 편중, 팹리스·패키징 생태계 약화, 규제·투자 유연성 부족이다. 이런 약점은 AI·로직 반도체 경쟁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한국 반도체가 대만 및 미국 팹리스, 중국·미국 파운드리와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을 높인다. 공정 미세화 수율 개선과 함께 팹리스·패키징 강화, 규제 혁신, 중견·중소 팹 투자 유인책 확대 등이 시급하다.”

대만 중심으로 재편된 반도체 환경 변화에 한국이 잘 대응하려면.

“대만이 주도하는 반도체 생태계의 집적· 스피드·유연성에 맞서려면 한국은 가치 사슬 전반의 균형 강화, 차별화 기술 확보, 글로벌·현지화 협력, 정책·인력 생태계 혁신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독립적이면서도 협력적인 한국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핵심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생태계 차별화와 글로벌 협력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당연히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 원천 기술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 흐름에 맞춰 다른 파운드리 업체나 팹리스, 소재· 부품·장비 업체와 협업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해외투자 시 정부 간 협력 프레임워크 등 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국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을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집중 지원해 혁신 아이디어를 더 빠르고 쉽게 사업화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정책적으로 투자 승인 절차 간소화, R&D 설비투자 세액공제 확대, 하이퍼 파운드리 지정제 등을 도입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핵심 인재 확보를 위해 유턴 비자, 세제 우대, 취업 비자 연계 활성화 등 문호 개방도 필요하다.”


대만 정부의 지원 정책을 벤치마킹하는 건 어떨까.

“대만이 펼쳐 온 ‘클러스터 집적→민관 협업→스타트업·인재 유인’ 모델의 핵심 요소를 벤치마킹하되, 우리 현실에 맞게 보완·확대해야 한다. △대규모·장기 안정적 R&D·투자 인센티브 △전략적 클러스터 및 인프라조성 △인재 양성·유인·교류 확대 △규제· 거버넌스 혁신 등의 측면에서 빠르고 효과적인 의사 결정을 기반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K-반도체·AI 이노베이션 패키지’로 이름 붙일 만한 포괄적인 정책 지원 패키지를 가급적 빨리 출범·실행해야 한다.”

한국과 대만이 반도체 분야에서 협력할 여지가 있다고 보는지.

“국내 반도체 기업은 대만 업체와 ‘전면적경쟁’과 ‘선택적 협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단순히 ‘협력’ 또는 ‘경쟁’ 중 하나만 택하기보다는 영역과 단계에 따라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패키징·후공정 역량 공유, 공동 R&D 컨소시엄 구축,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지정학적 리스크 분산 등에서는 협력이 필요하다.”

기술 개발 협력도 가능한가.

“원천 기술 개발 관련 협력 범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최첨단 미세 공정에서TSMC 같은 기업은 삼성과 협력을 망설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양국의 정책적 환경 차이, 규제의 범위, 이해관계 충돌, 중국과 관계, 미국과 안보 특수성 등을 감안할 때 협력 범위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 팹리스가 대만의 파운드리와 패키징 생태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방식도 경계해야 한다. 결국 양국은 독자 혁신을 이룰 수 있는 분야는 각자 집중하되 위험을 분산함에 있어 협력이 양국에 윈윈(Win-Win)이 되는 부분을 찾아 전략적 협력 관계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Plus Point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AI 반도체 시장’이 한국에 주는 교훈

권 교수는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AI 반도체 시장의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한 칩 판매를 넘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서비스·생태계를 통합한 ‘플랫폼 플레이어’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반도체 업체도 엔비디아 전략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업체도 지능형 반도체 PIM(Process In Memory)·HBM (고대역폭 메모리) 등 메모리 솔루션에 맞춘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Software Development Kit) 등을 함께 제공해 단순 모듈 공급을 넘어 ‘시스템 전체 성능 보증’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또한 개발자와 고객 간 커뮤니티를 육성해 개발자를 교육하고, 벤처기업 지원 프로그램으로 스타트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소버린 AI(Sov-ereign AI·특정 국가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AI) 연대를 구축해 미국, 유럽, 아세안 등 주요 시장별로 ‘AI 메모리·PIM 로컬화’ 전략을 수립하고 현지 데이터센터·클라우드 제공자와 파트너십을 강화할 필요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PIM·API(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 표준을 오픈하거나 공동 개발해 팹리스 및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자사 메모리 솔루션에 최적화된 코드를 작성하도록 유도해야 생태계를 확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코노미조선=윤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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