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상업개정안 관련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참석,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 김우찬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윤태준 주주행동플랫폼 액트 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남강호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까지 확대한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지 열흘도 안 돼 더 강력한 추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의 주가 상승과 정권 지지율 상승이 상법 개정 효과라고 보고 더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를 1년 내에 소각하도록 의무화하고, 이사 선출 때 주식 1주당 의결권을 특정 이사에게 몰아주는 집중투표제 등을 상법에 담겠다고 한다.
자사주를 소각해 발행 주식 수를 줄이면 단기적으로 주가가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자사주 소각은 기업 가치를 올리는 데는 아무 역할도 못 한다. 기업 경영의 목표가 단기적 주가 상승이라면 자사주를 소각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목표가 그런 기업이 있을 리 없다. 정상적 기업이라면 자사주를 매각해 그 자금으로 신규 투자를 늘려 경쟁력을 높이려 할 것이다. 이것이 국민 경제에 더 도움이 되고, 결과적으로 주가도 올린다.
자사주가 적대적 M&A(인수·합병) 위협 때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한국적 특수성도 감안해야 한다. 자사주를 많이 보유한 기업은 대부분 대주주 지분율이 낮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SK그룹 지주사는 대주주 지분을 다 합쳐도 25.5%에 불과하다. 보유 자사주 24.6%를 합쳐야 경영권 방어에 필요한 50%를 넘는다. 이런 기업은 한둘이 아니다. 이 기업들이 자사주를 의무 소각한 뒤에 외국계 펀드의 경영권 위협을 당하면 어떻게 되나. 그 공방 속에서 주가가 올라간다고 좋아할 수 있나. 기업이 국제 경쟁이 아니라 경영권 문제에 발이 묶이면 많은 근로자와 주식을 가진 사람이 결국 피해를 본다.
집중투표제는 1주를 갖고 있는 주주가 이사 3명을 뽑을 때 3표를 한 명에게 몰아줄 수 있어 소액주주 권한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집중투표제로 선출된 이사가 특정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지나치게 대변할 경우 이사회의 정상 운영이 어려울 수 있다. 선진국들은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지 않고 기업의 자율적 선택에 맡기고 있다.
상법 개정은 일부 악덕 대주주의 횡포로부터 소액 주주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일부 상장 기업이 쪼개기·중복 상장이나 쥐꼬리 배당처럼 소액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일탈 행위를 해왔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는 일은 필요하다. 하지만 기업 대부분은 악덕 기업이 아니다. 더구나 상법은 증시에 상장된 2600여 기업뿐 아니라 비상장 기업까지 합쳐 100만여 법인에 모두 적용된다. 애꿎은 기업까지 희생양으로 만들 수 있는 무리한 법 개정은 옳지 않다.
민주당은 상법을 개정하면서 배임죄 완화 등 기업들의 애로 사항도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이런 움직임은 전혀 없이 주가 부양용 상법 추가 개정에만 올인하고 있다. 기업들의 근본적 경쟁력 개선 없이 오른 주가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상법 문제든, 다른 무엇이든 지나치면 모자라느니만 못하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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