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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슬픔의 삼각형

머니투데이 이병철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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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슬픔의 삼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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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문화평론가(시인).

이병철 문화평론가(시인).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자본으로 조건화된 계층의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블랙코미디다. 영화는 총 세 파트로 구성됐다. 1부는 모델 지망생 '칼'과 그의 애인 '야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오디션에 번번이 떨어지는 칼과 달리 야야는 제법 큰 런웨이에 설 만큼 모델의 커리어를 쌓아간다. 두 사람은 연인 기념일을 맞아 고급 레스토랑에 간다. 그런데 야야가 칼에게 "고맙다"고 한 순간부터 뜻밖의 갈등이 시작된다. "네가 고맙다고 말해버리면 내가 계산해야 하잖아." 칼의 볼멘소리는 점차 커져서 여자가 음식값을 계산하는 것이 평등함이라는 주장을 한다. 야야가 자신의 신용카드로 결제하려 하지만 한도초과다. 모델활동의 불규칙한 수입에 그녀도 형편이 딱히 낫지 않다. 결국 두 사람은 동전까지 탈탈 털어 겨우 지불하고 얼굴이 벌게진 채 레스토랑을 나선다.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칼은 "성 역할에 얽매여 있다"며 야야를 나무란다. 소위 '이대남'의 사회적 위축과 '이대녀'에 대한 피해의식은 세계 보편의 현상인 듯하다.

돈은 없지만 비싼 레스토랑에는 가야 하는 이 커플은 인플루언서인 야야가 승선권을 협찬받으면서 각양각색의 부자들과 함께 호화 크루즈에 오른다. 이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릴 과시용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2부가 전개된다. '찐부자'들 사이에 낀 칼과 야야는 자신들도 부자가 된 듯한 환상에 젖는다. 야야는 재벌가 부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칼은 직원의 옷차림이 불량해 미관을 해친다며 관리자를 불러 잔소리를 한다. 이들의 부자 흉내는 어설프기만 하다. 진짜 부자들은 보법이 다르다. 러시아 비료회사 재벌 디미트리는 선장과 술을 마시며 카드게임을 하다 술김에 크루즈를 인수키로 한다. 디미트리의 아내도 만만치 않다. "당신들도 이걸 누렸으면 좋겠다"며 선심 쓰듯 근무 중인 크루즈 직원 전원을 수영장에 뛰어들게 하고는 그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구입한 사람이 주인이라며 자신의 모든 권한을 디미트리에게 넘겨버린 선장은 고주망태가 되고 마찬가지로 인사불성인 디미트리가 엉터리 선장놀이에 열중하는 동안 풍랑과 해일을 만난 배는 드디어 산으로 간다. 최고급 샴페인과 캐비어 등 만찬을 즐기던 부자들은 요동치는 배에 배멀미가 심해져 너나없이 구토를 한다. 사태는 심각해져서 화장실 변기마저 역류해 크루즈 안은 토사물과 똥물로 가득하고 사람들은 그 위를 뒹군다. 설상가상으로 아프리카 해적의 습격을 받은 크루즈는 결국 침몰하고 구사일생한 8명의 생존자가 섬에 표류하면서 3부가 시작된다.

섬에서 부자들은 그야말로 무용한 인간일 뿐이다. 식량을 구하지도 못하고 불을 피우는 요령도 모른다. 크루즈 안에서 가장 비천한 존재였던 동남아계 여성 청소노동자 '아비가일'은 잠수를 해 문어와 생선을 잡고 불을 피워 요리를 한다. 자본이 조직한 계급이 생존이라는 새로운 조건 아래에서 재편되는 순간이다. 생선 한 토막, 문어 다리 한 조각을 얻어먹기 위해 아비가일에게 복종하는 부자들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씁쓸한 맛을 남긴다. 우리는 평소 "돈 많으면 형이지"라는 말을 얼마나 자주 했나. 신처럼 떠받들던 돈이 가치를 상실한 곳에서 돈을 버는 기술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젊고 잘생긴 칼을 자신의 노리개로 삼은 아비가일의 횡포 또한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그것은 '가진 자의 전형'으로 계급을 기반으로 한 착취의 보편양식을 환기한다.

조금만 더 가져도 군림하려 들고, 군림하기 위해 조금 더 가지려고 악다구니를 쓰는 인간들의 최후는 적어도 이 영화에선 똥밭이거나 조난이다. 미간 사이 주름을 뜻하는 '슬픔의 삼각형'은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은유하는 상징이다. 브랜드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임대아파트 아이들을 '임거'(임대아파트 거지)라고 부르는 대한민국도 어쩌면 '슬픔의 삼각형'을 향해 가는 크루즈인지도 모른다.

이병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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