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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홍수 110명 사망… 주지사 “실종자 170명 더 있다”

조선일보 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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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홍수 110명 사망… 주지사 “실종자 170명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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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희생자 규모 갈수록 커져
미국 텍사스주 홍수 발생 닷새째에 파악된 실종자 규모가 당초 예상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연재해가 발생할 경우 구조 작업이 진행되면서 실종자가 점점 줄어드는 게 보통이지만 이와 반대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체 사망자 역시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갑작스러운 홍수가 덮친 미 텍사스주 과달루페강 인근 캠프 미스틱 일대의 참혹한 모습이 위성사진에 담겨있다. 왼쪽 사진은 이 일대의 과거 모습, 오른쪽 사진은 8일 모습이다. 평소 푸르던 야영장이 홍수에 휩쓸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변했고, 인근 구조물과 도로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Maxar Technologies·AFP 연합뉴스

갑작스러운 홍수가 덮친 미 텍사스주 과달루페강 인근 캠프 미스틱 일대의 참혹한 모습이 위성사진에 담겨있다. 왼쪽 사진은 이 일대의 과거 모습, 오른쪽 사진은 8일 모습이다. 평소 푸르던 야영장이 홍수에 휩쓸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변했고, 인근 구조물과 도로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Maxar Technologies·AFP 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와 AP 등에 따르면 그레그 애벗(공화당) 텍사스 주지사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4일 새벽 발생한 돌발 홍수(집중호우로 단시간에 발생하는 홍수)로 이날까지 110명이 사망하고 173명이 실종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피해가 집중된 커(Kerr) 카운티에서만 여학생 수련 시설 ‘캠프 미스틱’ 참가 어린이 5명을 포함해 161명이 실종됐다. 이번 홍수 발생 이후 애벗 주지사가 인명 피해 규모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실종자 규모가 예상보다 큰 것은 가족들이 구조 당국과 연락할 수 있는 ‘핫라인’이 6일 구축돼 뒤늦게 신고가 몰린 영향으로 전해졌다. AP는 “핫라인 개설 후 실종자 수가 이전에 발표된 수치보다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고 전했다.

이번 텍사스 홍수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캠프 미스틱' 출신 졸업생들이 모여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고 있다. /CNA Amira Abuzeid

이번 텍사스 홍수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캠프 미스틱' 출신 졸업생들이 모여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고 있다. /CNA Amira Abuzeid


20대에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애벗은 휠체어를 타고 수색 현장을 살펴보며 “모든 실종자를 찾을 때까지 수색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 작업의 ‘골든 타임’이 지나가면서 생존자가 발견될 가능성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종자가 전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사망자가 최소 280명 이상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사태는 1976년 콜로라도주 빅 톰슨 협곡 홍수 이후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내륙 홍수 재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당시 연휴를 즐기는 인파로 가득했던 협곡을 홍수가 덮쳐 144명이 사망했다.

그래픽=박상훈

그래픽=박상훈


현장 수색 작업은 전날까지 악천후로 어려움을 겪다가 이날부터 날씨가 풀려 본격화됐다. 미국 전역은 물론 텍사스와 국경을 접한 멕시코에서도 구조 요원과 자원봉사자 수백 명이 급파돼 수색·복구 작업을 돕고 있다. 미 육군 출신 자원봉사자 샌디 길머(46)는 “잔해 더미 속에서 찾아낸 젖은 가족 앨범을 꼭 돌려줄 수 있길 바란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희생자들의 사연도 이어지고 있다. 대학 친구 세 명과 함께 강변의 오두막에 묵었던 조이스 캐서린 배던(21)은 사고 직전 아버지에게 “우리는 쓸려 내려가고 있어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연락이 끊겼다. 조이스의 어머니는 7일 딸의 시신을 확인하고 페이스북에 “21년 동안 우리에게 축복을 준 사랑스러운 딸을 찾았다. 딸의 친구들을 곧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적었다.


피해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책임 소재를 둘러싼 정치 공방도 심화되고 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지난 7일 행정부의 국립기상청 예산 삭감 등이 이번 사태에 미친 영향에 대해 조사해 달라는 서한을 담당 부처인 상무부에 보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 정부 구조 조정 과정에서 진행된 예산 삭감과 인력 감축 등이 호우 예보 실패 등으로 이어져 사태를 키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100년에 한 번 있을 돌발 홍수였고 기상청은 역할을 다했다”며 “홍수를 두고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은 악의적인 거짓말이며 국가적 애도 시기에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일 피해 현장을 방문할 계획이다.

애벗 주지사는 이번 사태를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패배자들이나 할 소리”라고 답했다. 텍사스주가 지역구인 공화당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홍수 발생 당시 그리스에서 휴가 중이어서 논란이 됐다. 비판이 일자 그는 “계획된 휴가였다”며 “최대한 신속하게 (미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해명했다.


☞돌발 홍수(flash flood)

홍수의 네 유형 중 하나로 일반적으로 좁은 지역에 짧은 시간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발생하는 홍수를 말한다. 미국 기상청에서는 여섯 시간 이내에 쏟아진 비로 홍수가 날 경우 돌발 홍수로 분류한다. 하천의 범람, 산사태, 댐의 붕괴 등이 주요 원인이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집중호우가 잦아지면서 돌발 홍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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