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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中 전승절,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조선일보 안용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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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中 전승절,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속보
'수십억 횡령' 박수홍 친형 2심 징역 3년6개월…형수는 집유
10년 전 장성택 처형 등
北 불안, 북·중 멀어지며
통일 ‘별의 순간’ 반짝
한반도 정세, 완전 달라져
2013년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기관지 학습시보의 부편집장이 파이낸셜타임스(FT)에 “중국은 북한을 포기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칼럼을 썼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직후였다. 당시 갓 집권한 시진핑의 중국은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도 핵으로 난리를 치자 북 정권에 염증을 내는 분위기였다. 그해 12월 김정은이 친중파로 알려진 고모부 장성택을 잔인하게 처형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중국 지도부는 물론 일반 중국인도 ‘김씨 정권’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중국 인터넷에선 김정은을 ‘진싼팡(金三胖·김씨 세 번째 뚱보)’이라고 대놓고 비하했다. 2014년 시진핑이 현직 주석으론 처음으로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하기도 했다. 2015년 중국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전승절 70주년 참석을 요청해 왔다.

2015년 9월 3일 중국 전승절 70주년 열병식 때 시진핑(가운데)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베이징 톈안먼 성루에 올라가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 뉴시스

2015년 9월 3일 중국 전승절 70주년 열병식 때 시진핑(가운데)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베이징 톈안먼 성루에 올라가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 뉴시스


독일 통일에 소련 동의가 중요했던 것처럼 한반도 통일은 중국 협조가 필수적이다. 북·중 국경이 1400km에 이른다. 통일 당시 서독은 동독 출신인 겐셔 외교장관에게 소련 설득을 맡겼다. 1974년 장관이 돼 ‘동방 정책(동서 화해)’에 앞장선 사람이다. 겐셔는 1990년 셰바르드나제 당시 소련 외교장관을 2차 대전 독·소 격전지였던 브레스트에서 만났다. 셰바르드나제의 친형이 1941년 전사한 곳이다. 겐셔는 셰바르드나제 형의 무덤부터 찾아 묵념했다. 겐셔와 동행한 셰바르드나제가 통일의 최대 난제였던 독일의 나토(NATO) 잔류 문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 독일 통일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2015년 김정은 정권은 불안해 보였다. 어설픈 개혁·개방 흉내와 장성택 처형으로 경제와 민심은 흉흉했고 핵실험으로 혈맹 중국과의 관계도 멀어졌다. 통일이란 ‘별의 순간’이 보일 것도 같았다. 헌법상 통일 책무를 아는 한국 정부라면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승절 70주년 참석을 결정한 중요 배경 중 하나였다.

학습시보 부편집장의 ‘북한 포기’ 칼럼에도 ‘통일’이 등장한다. “한반도 통일을 촉진하면 한·미·일 간 동맹을 와해하는 데 유리하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에 대한 정치적 압력을 완화할 것이며 결국 대만 (통일) 문제 해결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했다. 중국 공산당은 대만 통일 문제만큼은 한 번도 입장을 바꾸거나 물러선 적이 없다.

한국 좌파는 어떤가. 6·25 이후 우파를 ‘분단 세력’이라고 집요하게 공격했다. 주사파는 김씨 일족을 ‘위대하다’고 추종하며 통일 운동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김정은이 “적대적 두 국가”를 내세우자 돌변했다. “통일하지 말자” “두 국가로 살자”고 했다. 이재명 정부엔 “통일은 후대로 넘기자”고 한 분이 안보 분야 장관이 됐다. 통일부 명칭에서 ‘통일’을 빼자고도 한다. 10년 전 미국 대통령은 오바마였다. 지금은 트럼프다. 대만 문제 등을 놓고 미·중 충돌이 격화하자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다시 주목하고 있다. 대만 해협 유사시 북한이 도발하면 미군 일부를 한반도에 묶어둘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에 다시 전승절 초청장을 보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 대통령이 톈안먼에 오르는 것을 미국이 달가워할 리 없다. 김정은이나 트럼프의 전승절 참석 가능성도 현재로선 낮다. 반면 푸틴은 갈 수 있다. 그런 자리에 한국이 가야 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10년 전엔 통일의 꿈이라는 역사적·헌법적 목표와 국익이 있었다. 지금 정부는 ‘통일’이란 말을 꺼내는 것도 주저하고 있다. 대신 ‘평화’를 강조한다. 중국이 우리 안보를 지켜주나. 그런데도 전승절 열병식에 간다면 ‘실용’ 아닌 ‘이념’으로 비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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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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