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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미치광이’들의 北 원산 회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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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미치광이’들의 北 원산 회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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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당명 개정 절차 공식 착수…책임당원 68% 찬성
10월 경주 APEC정상회의 계기
트럼프·김정은 재회 가능성 제기
北·美대화에 ‘韓 패싱’ 우려도 커져
새 정부 발빠르게 존재감 키워야
“나는 빌어먹을 미치광이를 상대하고 있다.(I’m dealing with a fucking lunatic.)”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의 밥 우드워드 기자는 2021년 9월 발간한 저서 ‘위험(Peril)’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1기 시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미치광이(lunatic)’라고 불렀다고 밝혔다. ‘위험’은 백악관 인사 등 200여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이에 김 위원장은 당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노망난 늙은이’, ‘늙다리 전쟁 미치광이’ 등으로 조롱했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이 본격화되자 양측은 ‘러브레터’라는 별칭이 붙은 친서를 최소 27통 주고받았다.

이귀전 외교안보부장

이귀전 외교안보부장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후 다시 또 친서 얘기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대화채널 복구를 위해 김 위원장에게 여러 차례 친서를 보내려 했지만 미국에서 활동하는 북한 외교관들이 수령을 거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백악관은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서신교환에 여전히 수용적(receptive·열려 있다는 의미)”이라며 관련 보도를 부인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1기 때와 환경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후 협상 동력은 회복되지 못했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과거와 같은 비핵화 협상은 절대 없다고 수차례 공언해 왔다.

북한은 이전보다 미국을 덜 필요로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을 계기로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한 상황에서 급하게 미국과의 관계를 진전시킬 이유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후 정치·외교 분야에서 ‘미치광이 전략(madman theory)’을 협상 기술로 쓰고 있다. 예측을 뛰어넘는 결정을 깜짝 발표하거나 예상치 못한 수준의 위협으로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것이다.


‘관세 폭탄’으로 시장을 뒤흔들었다가 물러서는 행태를 반복하고, 2주 안에 공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한 뒤 이틀 만에 이란 핵시설에 벙커버스터 폭탄을 투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당시에도 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한다고 평가됐지만, 집권 2기에서는 그 범위와 강도가 더욱 커졌다.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미국 정상이 ‘신뢰받는 중재자’로서 입지를 높였던 것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미치광이 전략’으로 세계질서의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


무역 관세와 중동에 이어 다음 목표는 북한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치광이 전략을 펴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미치광이라 부른 김 위원장과 다시 대면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두 정상이 만난다면 10월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계기가 될 수 있다. 2019년처럼 판문점에서 만날 수도 있지만 즉흥적이고,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두 정상이라면 북한이 지난 1일 개장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 일성으로 “김정은이 해안가에 엄청난 콘도 역량(condo capabilities)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 바로 그곳이다. 김 위원장은 심각한 경제난에도 국제사회와의 교류나 관광 유치를 목표로 2만명 숙박 능력의 호텔과 영화관·공연장 등 각종 레저시설을 갖춘 곳으로 개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다시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려면 매력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 김 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방문은 국제적 홍보 기회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김 위원장과 다시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되면 북·미 관계가 급물살을 탈 수 있게 된다. 유의미한 결과가 나온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게 원하는 노벨평화상 수상 소망에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북·미 정상 간 직접 대화는 한반도 평화에 긍정적이지만 한국의 입지가 위태로워지는 ‘코리아패싱’ 우려는 커질 수 있다. 아직 한·미 정상이 만나지도 못한 상태에서 우리의 역할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실용 외교를 강조한 이재명 대통령과 입각을 앞둔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등 새 내각이 북·미 사이에서 ‘운전자’든 ‘가교’든 존재감을 키울 수 있게 발빠르게 움직여야만 한다.

이귀전 외교안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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