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디지털포스트(PC사랑)=슬롯]
한때 컴퓨터 게임이 일상의 중심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필이면 기대하던 게임의 출시일이 시험 기간과 정확히 겹치면 갈등을 겪곤 했다. 이상하게도 시험 기간 중의 게임은 더욱 재미있게 느껴지곤 했다. 특히 친구와 '레벨 경쟁'을 벌이는 경우, 시험공부보다 게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로 인해 시험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그 시기의 추억은 오히려 즐겁게 기억되기도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부모님은 게임 시간을 제한하고 싶어 했다. 또 다른 시험 기간에는 그 당시 푹 빠져있었던 게임 CD롬을 압수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내가 시험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머니가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아이들의 꾀는 부모님의 예상을 뛰어넘기 마련이다.
한때 컴퓨터 게임이 일상의 중심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필이면 기대하던 게임의 출시일이 시험 기간과 정확히 겹치면 갈등을 겪곤 했다. 이상하게도 시험 기간 중의 게임은 더욱 재미있게 느껴지곤 했다. 특히 친구와 '레벨 경쟁'을 벌이는 경우, 시험공부보다 게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로 인해 시험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그 시기의 추억은 오히려 즐겁게 기억되기도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부모님은 게임 시간을 제한하고 싶어 했다. 또 다른 시험 기간에는 그 당시 푹 빠져있었던 게임 CD롬을 압수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내가 시험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머니가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아이들의 꾀는 부모님의 예상을 뛰어넘기 마련이다.
모두가 외출한 고요한 낮, 나는 안방을 샅샅이 뒤진 끝에 장롱 위 구석진 곳에 숨겨져 있던 CD롬을 찾아냈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컴퓨터를 켰다. 들킬지도 모른다는 긴장감과 해냈다는 해방감이 뒤섞인 채, 한두 시간 게임을 즐기다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 2000년 6월 30일(한국 기준) 출시된 RPG 게임 디아블로2. 시험기간에 출시돼 많은 학생들의 성적을 망쳤다는 원성을 들었다. |
장롱에서 자녀 보호 기능으로, 디지털 자물쇠의 시대
20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부모가 되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매일 같이 실감한다. 장롱 위에 숨겨졌던 CD롬은 이제 '구글 패밀리링크'나 '(애플) 스크린 타임'이라는 디지털 자물쇠로 모습을 바꿨을 뿐이다. 컴퓨터와 TV에서 스마트폰으로 무대는 바뀌었지만, 막으려는 부모와 어떻게든 뚫고 싶어 하는 아이의 기본 각본은 그대로다.
▲ 구글 패밀리링크 소개 페이지. 스마트폰 ‘자녀 보호 기능’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앱이다. |
'자녀 보호 기능(Parental control)'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현대적인 통제 도구들은 과거 부모님들의 방식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스마트폰의 총 사용 시간부터 앱별 사용 시간, 취침 시간까지 설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루 총 사용 시간을 2시간으로 제한해두면, 아이가 정확히 2시간을 사용한 시점에 스마트폰은 전화나 문자 같은 최소한의 기능을 제외하고는 먹통이 된다.
부모 입장에서는 감정적인 잔소리 대신, 시스템을 통해 객관적이고 공평하게 규칙을 집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해결책처럼 느껴진다. 더 이상 "그만 좀 해라!"라고 소리 지를 필요 없이, 앱이 알아서 아이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빼앗아 주니 말이다.
협상 테이블로 전락하는 '자녀 보호 기능'
하지만 이 완벽해 보이는 디지털 방패는 생각보다 쉽게 균열을 보이며, 많은 경우 성공적이지 않다.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가장 흔한 균열은 "아빠, 시간 30분만 더 넣어줘!"라는 아이의 외침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정해진 시간을 다 썼으니 안 돼"라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요구에는 생각보다 그럴듯한 명분이 따라붙는다. "오늘만 하는 특별 이벤트란 말이야!", "지금 접속하면 희귀 아이템을 준대!", "포켓몬고 '레이드' 시간이란 말이야, 친구들이랑 같이 잡기로 했어!" 등 아이들의 세계에도 '마감', '한정 판매' 같은 논리가 존재한다.
디지털 세대의 새로운 사회생활, 게임
현대 게임의 특징인 '사회성'과 '이벤트 중심성'이다. 특정 시간에만 열리는 콘텐츠, 친구와 협력해야만 깰 수 있는 미션은 혼자서 시간을 조절하며 즐기던 과거의 게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특정 시간에 모여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하는 일은 아이들에게 중요한 사회 활동의 일부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가 정해놓은 칼 같은 규칙은 아이를 친구들 사이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거나,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결국 부모는 딜레마에 빠진다. 규칙의 일관성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아이의 사회적 관계와 즐거움을 존중해 줄 것인가. 많은 부모는 "오늘 하루 만이야"라고 말하며 '보너스 시간'이라는 예외를 허용한다. 하지만 이 예외가 반복되는 순간, 규칙은 더 이상 규칙으로서의 힘을 잃는다.
아이는 정해진 시간을 지키는 대신, 부모를 설득하거나 조르는 방법을 학습하게 된다. 부모는 매번 '허락'과 '거절' 사이에서 감정을 소모하며 끝없는 줄다리기를 하고, 아이는 규칙의 경계를 끊임없이 시험하며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결국 자녀 보호 기능은 갈등을 해결하는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갈등을 유발하는 협상의 테이블이 되어버린다.
▲ ‘패밀리 링크 뚫는 법 |
대원칙: '감시자'가 아닌 '가이드'가 되기
디지털 자물쇠는 언젠가 풀어줘야 할 임시방편일 뿐이다. 우리의 진짜 목표는 아이의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어도 스스로 '멈춤' 버튼을 누를 수 있는 내면의 힘, 즉 '자기 조절 능력'을 길러주는 데 있다. 이 능력은 잔소리나 처벌이 아니라 스스로의 경험에 의해 조금씩 성장한다.
부모는 스마트폰을 통제하는 '감시자'가 아니라, 디지털 세상이라는 낯선 숲을 아이와 함께 탐험하는 '가이드'가 되어야 한다. 가이드는 길을 막지 않는다. 위험한 곳을 알려주고, 길을 잃지 않도록 방향을 제시하며, 여정 자체를 의미 있게 만들도록 돕는다. 이런 원칙을 염두에 두고,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해 본다.
첫째, 스마트폰 사용 규칙 함께 세워보기
부모가 만든 규칙을 아이가 따르게 하는 것은 결국 또 다른 통제일 뿐이다. 아이를 협상 테이블의 반대편이 아닌, 우리 편으로 끌어와야 한다. "우리 가족의 스마트폰 사용 규칙을 한 번같이 만들어볼까?"라고 제안하고, 아이 스스로 사용 시간과 지켜야 할 약속을 정하게 하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직접 만든 규칙에 더 강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규칙을 강요하는 적'의 위치에 서지 않는 것이다.
"하루 2시간 끝!"이라는 칼 같은 통보 대신, 아이와 함께 주간 계획을 세워보는 방법을 권해보고 싶다. "이번 주에는 친구랑 꼭 같이 해야 하는 게임 이벤트가 언제니?", "숙제나 공부는 보통 언제까지 하니?" 등을 물으며 미디어 사용 계획을 함께 조율한다. 이런 계획 과정에서 아이가 느끼는 욕구나 필요에 공감하는 순간, 부모는 '감시자'가 아닌 '신뢰할 수 있는 동행자'가 된다.
▲ 구글 패밀리링크 소개 페이지. 스마트폰 ‘자녀 보호 기능’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앱이다. |
둘째, 스마트폰 사용 경험을 함께 점검하기
계획을 세웠다면, 그 계획이 잘 이행됐는지를 함께 점검하는 회고의 과정도 필요하다. 단순히 사용 시간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는 놀라운 자각이 될 수 있다. (아이는 "내가 이렇게 오래 했다고?"라며 깜짝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만 점검하고 제한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통제자'가 아닌 '대화자'의 위치에 서는 것이다. "이렇게 많이 했어? 다음에는 줄이자"처럼 아이와 대립하는 방식의 대화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
디지털 세계에서 아이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여정을 함께 되짚어보는 것이다. 아이가 어떤 콘텐츠를 보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함께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얼마나 썼는지"보다 "무엇을 했는지", "어땠는지", "기분은 어땠는지"를 함께 이야기하는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
질문은 자기 조절 능력의 '거울'
예를 들어, "오늘 본 영상 중에 기억에 남는 건 뭐야?", "그 게임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어?", "재미있었어? 아니면 좀 지쳤어?" 같은 질문은 감시가 아닌 공감의 대화가 될 수 있다. 이런 대화를 통해 아이는 자신이 한 활동을 스스로 점검하고, 부모는 그 세계를 함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사용 경험을 함께 돌아보는 시간은 아이에게 자기 조절 능력의 '거울'을 만들어준다. 내가 무엇에 오래 머물렀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알아차리는 연습이 쌓이면, 충동적인 사용을 조절할 내면의 힘도 조금씩 자라난다.
<이 기사는 digitalpeep님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부모를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시리즈에서는 집에서 직접 아이를 기르며 겪는 다소 주관적인 경험을 통해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부모, 가정, 사회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어린아이들을 기르는 부모에게 꼭 필요한 실용적인 내용을 다룰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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