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금융강국 코리아]⑤-<1>하나은행 뉴욕지점
하나은행 뉴욕 지점 현황/그래픽=임종철 |
미국 뉴욕 맨해튼 거리를 걷다보면 높은 빌딩숲 사이에서 존재감을 뽐내기 위해 애쓰는 글로벌 은행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화려한 디스플레이로 눈길을 끄는 유럽의 바클레이즈와 BNP파리바, 맨해튼 한복판에 자리잡은 일본의 미쓰비시UFJ, 최근 새로 지은 건물에 들어선 모간스탠리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이 이곳에 모여있다.
맨해튼에선 말로만 듣던 K콘텐츠의 위상도 확인할 수 있다. 타임스퀘어 전광판에선 국내 기업들의 광고가 이어지고, 거리에선 블랙핑크의 로제가 부르는 '아파트'가 흘러나온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모이고, K팝이 들리는 맨해튼에서 정작 국내 은행의 모습을 찾기는 어려웠다. 지난달 17일(현지시간) 하나은행 뉴욕 지점의 주소를 받아들고 방문했을 땐 제대로 찾아온 건지 몇 차례나 확인했다. 상대적으로 금융업 진출 역사가 짧은 국내 은행들은 아직 제대로된 간판 조차없이 고군분투 중이다.
하나은행 뉴욕지점도 맨해튼 파크애비뉴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들어선 건물에 입주해있다. 이곳에서 이승식 하나은행 미주지역본부장이 주재원과 파견 및 현지직원 35명을 이끌며 미국 사업을 총괄한다. 그동안 하나은행 뉴욕 지점도 다른 국내 은행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나 상업용 부동산 투자 사업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최근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인공지능(AI) 열풍이 불면서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글로벌 인프라 투자에서 두각을 나타낸 중국계 은행들에 기회가 사라지고 있는 반면 미국 곳곳에 지어지고 있는 데이터센터와 발전소 투자에 국내 은행들도 참여해달라는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이중에서도 하나은행의 투자 규모가 크고 많다. 현지에 있는 국내 은행들 사이에서도 이제 한국 은행들도 미국 시장에서 투자은행(IB) 다운 사업을 해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승식 하나은행 미주지역본부장/사진=이창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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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장 급성장에 하나은행 IB 사업 훈풍…미국 데이터센터·LNG발전소에 투자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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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퀄리티테크놀로지서비스(QTS)의 데이터센터 사업이 주목된다. QTS는 메타나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테크기업에 필요한 데이터센터를 짓고 임대 및 관리해주는 서비스를 해주고 있다. 이들이 데이터센터를 사용하고 내는 이용료가 수익원이 되는 구조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은 2021년 클라우드 서비스와 AI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QTS를 100억달러에 인수했다. 이밖에 블루아울과 같은 사모펀드도 유사한 사업모델을 갖고 미국 전역에 잇따라 데이터센터를 세우고 있다. 이 같은 사업에 전 세계 은행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올해 하나은행은 이미 버지니아 북부에 지어질 데이터센터 사업에도 참여하는 등 지금까지 미국 8개 데이터센터에 총 3억달러(4070억원) 규모의 거래를 이뤄냈다. 지난해 2600만달러(35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뉴욕 지점은 그만큼 올해 훨씬 더 나은 실적을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각종 변수가 많은 투자사업에서 메타나 아마존 같은 초우량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20년 가까운 장기계약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국내외에선 이미 성공적인 IB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본부장은 "미국 데이터센터는 프로젝트당 사업 규모가 수조원에 달해 다양한 투자자들이 함께 참여한다"며 "AI 사업이 두드러지게 성장하면서 데이터센터는 앞으로 더 많이 지어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국 현지에선 데이터센터가 집중적으로 지어지고 있는 버지니아주의 땅값이 최근 너무 오르면서 업체들이 다른 지역에 부지를 알아보고 있을 정도로 데이터센터 열풍이다.
데이터센터와 함께 AI 시대 핵심 인프라로 떠오른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에도 하나은행의 자금이 대거 투입됐다. 미국 IPP(Independent Power Plant·민자발전) 사업도 칼라일이나 KKR과 같은 사모펀드가 적극적으로 자금을 쏟는 사업이다. 특히 LNG발전소는 2015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차원에서 추진했는데 현재는 AI에 필요한 전력 공급을 위해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고, 국내 은행들도 참여할 기회가 늘고 있다.
현지에서 IB 실무를 맡고 있는 손해승 하나은행 뉴욕지점 팀장은 "오바마 정부가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석탄발전소를 LNG발전소로 대체하는 사업을 시작했고 당시부터 우리도 관심을 갖고 투자를 준비해왔다"며 "이후 정권이 바뀌고 열기가 식었다가 트럼프 2기 정부에서도 AI 열풍으로 다시 활기를 찾고 있고, 하나은행도 현재 3억~3억5000만달러 규모로 6개 발전소 투자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시장 규모로 볼 때 전체 투자액이 크다고 볼 수는 없지만 국내 은행 입장에선 의미가 적지 않다. 이 본부장은 "지금까지 하나은행이 해외에서 다양한 파트너들과 다져온 네트워크 등을 통해 대형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고, 이들과 함께 투자자로 나설 수 있는 경험은 우리에겐 매우 큰 수확"이라며 "앞으로도 전문성을 갖춘 IB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금융에 계속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려도 적지 않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정권이 들어선 이후 미국 금융시장에도 수시로 변수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 본부장은 "미국시장은 진출하기도 어렵지만 영업력을 유지하고 건전성을 확보해 나가기는 더욱 어렵다"며 "하지만 지금까지 하나은행은 꾸준히 저변을 확대해왔고, 미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서 한국계 기업을 지원하고 안정적인 수익도 내는 바람직한 영업모델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뉴욕(미국)=이창명 기자 charmi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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