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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판단마다 법률 검토”… 상법 개정에 기업들 ‘비상’ [기업 헌법 대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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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판단마다 법률 검토”… 상법 개정에 기업들 ‘비상’ [기업 헌법 대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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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충실의무 확대·감사위원 선임제 개편 등 기업 리스크 급증
정관 변경·이사회 재편·D&O보험 확대… 거버넌스 대응 본격화



“투자 하나 결정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상법 개정안이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기업들의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등의 조항이 포함되면서 이사회 운영부터 기업설명회(IR) 전략까지 전방위적인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반응이다.

6일 주요 대기업 관계자들은 이번 상법 개정안으로 투자 의사결정이 지체될 가능성이 높고, 장기적인 성장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기업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조항은 ‘선관주의 의무’로 대표되는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다. 기존에는 이사의 판단 기준이 ‘회사 이익’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전체 주주 이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로 인해 향후 주총이나 투자자 측에서 인수·합병(M&A), 배당, 구조조정 결정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잦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로펌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M&A 공시만 뜨면 일단 소송을 걸고 본다. 한국도 유사한 패턴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며 “이사회에서 직원 위로금 지급이나 배당 계획을 논의하는 순간조차, 업무상 배임 이슈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주요 의사결정마다 법적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내부 기준 정비 등 리스크 총력 방어 체제에 나섰다. A기업 관계자는 “그간 주요 의사결정에 법무 검토와 주주 영향 분석을 진행해왔지만, 이번 개정으로 이를 보다 강화할 계획”이라며 “정관 변경과 IR 전략 재정비 여부도 개정 법률에 맞춰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B기업 관계자는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고, 추가 대응책을 검토할 것”이라며 “소수 주주의 소송 남발이나 헤지펀드의 경영권 위협 등은 실질적인 부담 요인”이라고 우려했다.

실무진들도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C기업의 경우 의사결정에 앞서 외부기관의 객관적 평가자료를 확보하고 법률 검토·리스크 점검을 강화할 계획이다. 특히 법무팀·이사회 운영팀·ESG팀이 중심이 돼 시나리오별 리스크 평가 및 대응방안 검토에 착수했다.

이 같은 변화는 기업 내부 실무진에게는 곧바로 ‘업무 패러다임의 전환’을 뜻한다. 특히 법무, 재무, 이사회 운영, 준법지원 부서 실무자들은 시행령과 향후 판례 해석까지 감안한 리스크 매뉴얼 수립에 착수했다. 각 팀은 주요 경영상 안건이 회의에 상정되기 전부터 이해상충 소지, 정보 비대칭 가능성, 주주가치 영향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기업 법무팀 한 관계자는 “경영 판단의 근거자료, 절차, 회의록 작성까지 모든 의사결정이 향후 소송 대비 문서화돼야 한다”며 “의사결정 속도보다 정당성 입증이 우선되는 기류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재무팀 역시 M&A, 자산매각, 신사업 투자 등에서 법률 자문과 회계 리스크 시뮬레이션을 의무화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이사회 사전 시나리오를 작성해 ‘법적 방어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밖에 전자 주주총회 의무화 조항도 새로운 부담 요인이다.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 역시 IT 인프라 투자에 따른 고정비 부담과 보안, 시스템 안정성 문제에 민감하다. D기업 관계자는 “단순히 시스템을 도입하는 수준이 아니라, 주주 간 신뢰 기반 위에서 안정적 IR이 가능해야 한다”며 “IR 측면에서도 전자주총 시스템 보완과 외부 가이드라인에 따른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이미 상법 개정안이 예고됐던 만큼, 연초부터 사전 대응책 마련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왔다. 현대자동차는 보수위원회를 사외이사 100%로 구성하고, ESG 리스크를 전담하는 BRM실을 최고경영자(CEO) 직속으로 신설했다. 기아는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소각 등 적극적 주주환원 정책과 소액주주 의견 수렴 구조를 마련했다.


이사 책임보험(D&O Insurance) 역시 재조명받고 있다. 한온시스템과 넥센타이어는 임원 배상책임보험을 매년 갱신하거나 확대 도입해, 법적 리스크 발생 시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기아 역시 이사 책임보험 도입으로 소송 리스크 대비에 나섰다.

한편, 법무법인들도 기업들의 거버넌스 대응 수요에 발맞춰 전담 조직을 잇따라 신설했다. 법무법인 세종은 이동건 변호사를 주축으로 ‘기업지배구조 전략센터’를, 법무법인 태평양은 ‘거버넌스 솔루션 센터’를 각각 출범시켰다. 센터 개소 직후부터 대기업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기업과 투자자, 정책당국 간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선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번 개정이 오히려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며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각 주체가 참여하는 논의가 병행돼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투데이/송영록 기자 (syr@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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