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머스크는 170년 ‘양당의 벽’ 넘을까... 억만장자 신당 창당 잔혹사

조선일보 뉴욕=윤주헌 특파원
원문보기

머스크는 170년 ‘양당의 벽’ 넘을까... 억만장자 신당 창당 잔혹사

서울맑음 / -3.9 °
킹메이커의 반란… 머스크, ‘아메리카당’ 창당 공식화
지난해 11월 일론 머스크(오른쪽)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텍사스주 브라운즈빌에서 스페이스X 로켓 시험 발사를 지켜보고 있다. 머스크는 대선 승리의 일등 공신으로 꼽히며 트럼프 행정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최근엔 트럼프의 감세안을 맹렬히 비판하면서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았다./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일론 머스크(오른쪽)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텍사스주 브라운즈빌에서 스페이스X 로켓 시험 발사를 지켜보고 있다. 머스크는 대선 승리의 일등 공신으로 꼽히며 트럼프 행정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최근엔 트럼프의 감세안을 맹렬히 비판하면서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았다./로이터 연합뉴스


“오늘 여러분에게 자유를 되찾아주기 위해 아메리카당(America Party)을 창당합니다. 2대1의 비율로 새 정당을 원한 여러분은 그것을 갖게 될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최근 사이가 틀어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5일 소셜미디어 X에 이 같은 글을 올려 신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2대1 비율’은 전날 그가 온라인에서 진행한 창당 찬반 투표에 약 124만명이 참여해 65.4%가 찬성했다는 의미다. 머스크는 “낭비와 부패로 국가를 파산시키는 일에 있어 우리는 사실상 단일 정당 체제하에 살고 있다”고 했다. 민주·공화당을 막론하고 역대 양당 정부가 모두 국가 재정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이다.

머스크는 X에 신당을 홍보하는 여러 그림을 공유하기도 했다. 갈림길에서 민주·공화당 쪽에는 폭풍이 치고 반대쪽 아메리카당 쪽에는 밝은 햇살이 비치는 그림, 머스크의 얼굴을 한 미국의 상징 ‘엉클 샘’이 “아메리카당은 당신을 원한다”고 말하는 그림 등이다.

재정 긴축론자인 머스크는 그동안 트럼프가 추진한 감세 법안이 통과될 경우 재정 적자 해소 등을 표방하는 제3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 법안이 상·하원을 통과하고 트럼프가 전날 대대적인 서명식까지 열자 행동에 나선 것이다. 세계 제일의 부자인 머스크가 사실상 반(反)트럼프 신당 창당에 돌입하면서 미 정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다만 머스크는 창당에 필요한 공식 문서를 연방선거위원회에 제출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를 두고 이번 창당 선언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최종 결별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정치권은 머스크의 막대한 자금력과 ‘혁신 기업가’ 이미지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껏 제3정당이 성공한 전례가 없을 만큼 공고한 양당제를 머스크가 깨뜨릴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픽=이진영

그래픽=이진영


한때 최고의 '브로맨스'를 자랑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EPA 연합뉴스

한때 최고의 '브로맨스'를 자랑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EPA 연합뉴스


◇1년 만에 끝난 ‘브로맨스’

2020년 대선 때 민주당을 지지했던 머스크는 바이든 행정부의 이민·의료 정책과 지나친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프로그램을 비판하다 트럼프로 돌아섰다. 지난해 7월 대선 후보였던 트럼프가 유세 도중 총격을 받은 직후엔 공개 지지를 선언하며 브로맨스(남자들의 우정)를 연출했다. 대선 기간 트럼프 캠프에 2억8800만달러(약 4000억원)를 지원한 머스크는 지난 1월 트럼프 취임 이후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아 정부 구조 조정을 이끌었다. 머스크가 특별 공무원 신분으로 130일간 일한 뒤 지난 5월 말 퇴임할 때 트럼프는 백악관 문양이 새겨진 황금 열쇠를 건넸다.


그러나 트럼프가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이라고 부른 감세안으로 둘의 관계는 180도 바뀌었다. 머스크는 지난달 3일 소셜미디어에 열 개가 넘는 게시물을 잇따라 올리고 “역겹고 혐오스럽다”며 감세안을 비판했다. 머스크는 “이 법안은 미국 국민에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파괴적인 부채 부담을 지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트럼프는 “일론은 미쳐버렸다”며 원색적으로 비판했고, 머스크도 트럼프 탄핵을 요구하는 게시글을 소셜미디어에 인용하며 맞섰다. 최근 화해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둘은 결국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

◇‘머스크黨’ 성공할 수 있을까

머스크는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상원 2~3석, 하원 8~10석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상원은 공화당(53석)이 민주당(47석·무소속 포함)에 근소하게 앞서 있고, 하원도 공화당 220석으로 민주당(212석)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머스크 신당이 목표 의석수를 확보한다면 공화·민주 양당 사이에서 쟁점 법안에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다만 민주당(1828년 창당)에 이어 공화당이 1854년 설립된 이후 양당제가 약 170년간 유지된 미국에서 제3당이 성공한 전례가 없어 머스크가 뜻을 이룰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우선 ‘승자 독식’ 성격이 강한 미국 선거 제도의 특성이 장벽으로 거론된다. 예컨대 대통령 선거는 각 주에 배당된 선거인단(총 538명)을 많이 확보하는 후보가 승리하는데, 1위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 전체를 가져가는 방식이어서 군소 정당이 설 자리가 거의 없다. 머스크 신당이 바람을 일으킨다 해도 주 단위에서 절차적 하자 등을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하는 양당의 ‘방해 공작’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3당 후보는 양당 후보에 비해 TV 토론 참가가 제한돼 유권자에게 노출되기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선거법 전문가 브렛 캐플은 CBS방송에 “미국에서 새로운 전국 정당을 만드는 일은 엄청난 돈과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라며 “각 주의 정당 등록 요건과 전국 단위 정치 활동에 대한 규제는 매우 까다롭다”고 했다. 로이터도 “트럼프는 논란 많은 정책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임기 중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대체로 40%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머스크가 막대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해도 민주·공화 양당의 독점을 깨뜨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고 했다.

◇역대 ‘제3지대’ 시도 모두 실패

공고한 양당 체제에서 ‘제3지대’를 시도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대표적으로 기존 정치 시스템에 한계를 느낀 억만장자들이 자신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독자 세력화를 꾀했다. 그러나 결국 현실 정치에 뿌리내리지는 못했다.

자수성가 기업인 로스 페로는 1992년 대선에 공화당 조지 HW 부시 당시 대통령, 민주당 빌 클린턴 후보와 함께 출마해 제3후보 역대 최대인 18.9%를 득표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1위 후보가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제도 특성상 선거인단은 단 1명도 확보하지 못했다. 그는 ‘개혁당’을 창당해 1996년 대선에 재출마했으나 득표율 8.4%에 그쳤다.


스타벅스 창업자 하워드 슐츠, 언론 재벌 마이클 블룸버그 등도 무소속 대선 출마나 신당 창당 등 독자 세력화를 모색했으나 현실적 한계에 꿈을 접은 사례다. 억만장자는 아니지만 질 스타인 녹색당 후보도 2012·2016년 대선에 출마했다. 그러나 유의미한 득표를 하지 못했다.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

[뉴욕=윤주헌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