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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철의 스포츠시선] 프로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자율야구’

이데일리 이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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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철의 스포츠시선] 프로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자율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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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철 스포츠칼럼니스트] 출범한 지 43년이 지난 프로야구(KBO리그)에는 여러 변곡점이 있었다. 그중에서 ‘자율야구’를 표방한 1994년 LG 트윈스의 우승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이광환 전 LG트윈스 감독이 2017년 4월 4일 잠실야구장에서 시구를 한 뒤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광환 전 LG트윈스 감독이 2017년 4월 4일 잠실야구장에서 시구를 한 뒤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LG트윈스 선수들이 이광환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LG트윈스 선수들이 이광환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SSG랜더스와 KIA타이거즈 경기. KIA타이거즈 선수들이 경기 시작에 앞서 이날 별세한 이광환 전 LG 감독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SSG랜더스와 KIA타이거즈 경기. KIA타이거즈 선수들이 경기 시작에 앞서 이날 별세한 이광환 전 LG 감독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프로야구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발전해 왔다. 초창기에는 현재와 비교해 ‘프로’라는 성격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특히 선수들의 몸 관리나 기용 방식이 그러했다. 전날 선발로 등판한 투수가 다음 날 마무리 투수로 다시 마운드에 오르는 일이 흔했다. 연이틀 선발 등판하는 장면도 드물지 않았다. 그런 장면들은 당시엔 투혼이나 낭만으로 여겨지곤 했다. 당시 프로야구의 패러다임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특히 1994년 LG의 통합우승 이후 프로야구의 패러다임은 바뀌게 된다. 당시 ‘자율야구’로 알려진 LG의 핵심은 ‘스타 시스템’, 즉 투수 분업화였다. 선발투수가 5이닝 이상을 던지고, 중간계투가 이어받은 뒤, 마무리 투수가 1이닝만 소화하는 방식이었다. 중간계투도 ‘미들맨’, ‘원포인트 릴리프’ 등으로 세분화됐다. 선발투수는 5인 로테이션 개념으로, 4일 또는 5일의 휴식을 보장받았다.

지금은 ‘100구가 넘으면 선발투수를 교체해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하지만, 1990년대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인 운영이었다. 마무리 투수를 1이닝만 기용하는 것 자체가 사치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당시 마무리 투수는 2~3이닝을 던지는 ‘중무리’(중간+마무리)의 개념이 강했다.

세계적인 야구 흐름을 보더라도 LG의 ‘투수 분업화’는 늦지 않은 선택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1이닝 마무리 개념은 1980년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이끌던 토니 라루사 감독이 도입하며 널리 퍼졌다.

당시 LG의 야구는 ‘자율야구’, ‘신바람 야구’로 불렸지만, 그 본질은 ‘시스템’이었다. 철저한 분업화를 통해 잘하는 선수만 경기에 출전했고, 후보 선수는 실력이 부족하거나 패전처리 요원이라는 기존의 인식도 점차 사라졌다.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는 각자 맡은 역할이 있었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를 위해 트레이닝 파트의 권한을 확대하고, 체계적인 훈련법을 도입했다.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의 루틴을 강조했다. 이러한 문화가 정착되면서 선수들의 수명도 길어졌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30대 초반 선수에게 ‘노장’이라는 말을 붙였지만, 지금은 마흔을 넘긴 선수들도 낯설지 않다.

이 같은 시스템을 도입한 인물은 이광환 전 감독이다. 그는 일본 세이부 라이온스와 미국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으며 선진야구를 접했고, 1989년 OB 베어스(현 두산)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처음으로 이를 도입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1992년 LG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 이광환식 ‘자율야구’와 ‘시스템야구’는 본격적으로 빛을 발했다. 1993년에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1994년에는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우승하는 통합우승을 이뤄냈다. 그 이후 한국 프로야구의 패러다임은 확실히 바뀌었다.


지난 2일 이광환 전 감독의 별세 소식을 듣고 떠오른 생각이다. 그는 프로야구의 흐름을 바꾼 지도자였을 뿐 아니라,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인물로도 기억돼야 한다. 2008년 우리히어로즈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KBO 육성위원장, KBO 베이스볼 아카데미 원장 등을 지냈고, 2010년부터 2020년까지는 서울대 야구부 감독을 맡았다. 여자야구 대표팀을 지도하기도 했고, 야구 불모지인 제주도에는 사비를 들여 야구박물관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 야구의 선구자였던 고인의 명복을 빈다.

호남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 전 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