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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시켜달라” “해고 억울” 개인 민원에 당황한 李대통령

조선일보 주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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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시켜달라” “해고 억울” 개인 민원에 당황한 李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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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이어 대전서 타운홀 미팅
이재명 대통령은 4일 추가경정예산에 포함된 채무 탕감 정책과 관련해 “정상적으로 (빚을) 갚는 분들도 많이 깎아줄 생각이고, 앞으로도 추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추경을 통해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의 개인 채무(약 113만명 대상)를 탕감해 주기로 했는데 앞으로 대상이나 규모를 확대하겠다는 뜻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대전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소통 행보, 충청의 마음을 듣다’ 행사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은행이) 예측했던 위험을 이미 다 비용으로 산정해 이자로 받고 있는데, 못 갚는 걸 끝까지 쫓아다니면서 받으면 부당 이득”이라며 “이런 문제는 사회적으로 한번 정리해줘야 한다. 그게 형평성에 맞는다”고 했다. 정부는 내년부터 한국자산관리공사를 통해 은행 등이 보유한 장기 연체 채권을 매입해 소각할 예정이다. 이를 포함해 이번 추경의 소상공인 특별 채무 조정 정책에는 1조4000억원이 투입된다.

지난달 25일 열린 첫 번째 광주·전남 지역 타운홀 미팅 당시 민주당 출신인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도지사 등 지자체장이 참석했으나, 이번 행사엔 충청권 지자체장들은 초대하지 않았다. 대전시장, 충남·북 도지사는 국민의힘 소속이다.

◇“정규직 해달라” “해고 억울”… 예상 못한 개인 민원에 李대통령 당혹

4일 대전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추가경정예산에 포함된 채무 탕감 조치 설명에 긴 시간을 할애했다. 야권에서 빚 탕감이 채무 상환 불이행이라는 도덕적 해이를 양산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자, 이 대통령이 채무 탕감 조치의 정당성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시민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지난달 25일 호남 간담회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날 타운홀 미팅에서 이 대통령은 채무 탕감 제도를 언급하며 "정상적으로 갚는 분들도 많이 깎아줄 생각이고, 앞으로도 추가할 생각"이라고 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시민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지난달 25일 호남 간담회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날 타운홀 미팅에서 이 대통령은 채무 탕감 제도를 언급하며 "정상적으로 갚는 분들도 많이 깎아줄 생각이고, 앞으로도 추가할 생각"이라고 했다. /연합뉴스


한 소상공인은 이 대통령에게 “저는 대출 한도가 꽉꽉 찬 예비 연체자”라며 “채무 탕감에 대한 부분이 진행된다면, 투트랙으로 성실 상환자에 대한 핀셋 정책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나와 상황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자꾸 비판적인 입장 가지면 같이 살 수 없다. 사회의 기본은 연대 아닌가”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 해소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권 계급화된 일부 사람들이 있다”며 “이걸 다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어 “큰 기업들도 부실하거나 부당하면 시장에서 퇴출되는 정상적인 경제 생태계를 만들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 대통령은 또 수도권 주택 담보 대출을 6억원으로 제한하는 6·27 가계 부채 대책을 주도한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을 일으켜 세운 뒤 “이분이 그분이군요”라며 “아주 잘하셨어요”라고 말했다.


당초 이날 행사는 과학기술 발전 방향과 지역 현안이 의제가 될 예정이었다. 특히 대통령실은 세종시에 있는 해양수산부를 부산으로 이전하는 대선 공약이나 행정수도 세종 이전 같은 문제에 대해 이 대통령이 설명하는 자리로 이 행사를 기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듣는 2부 행사에선 참석자들의 개인적 하소연이 쏟아졌다. 부당 해고, 정규직 전환, 일자리 불안정성, 임금 착취, 지역 경찰의 과잉 행정, 지역 폐기물 센터 신설 관련 민원 등 내용도 다양했고 울먹이는 참석자도 있었다. 참석자들은 당일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선발됐는데, 충청권 각지에서 새벽부터 모여 기다린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한 국책연구소 전(前) 연구원은 내부 제보로 인해 해고됐다며 이 대통령에게 “우리 연구원에 꼭 와달라”고 했다. 이어 한 환경미화원은 “처우가 열악하니 회사를 직영화해달라”고 했고, 은행 콜센터 직원은 “AI의 기술 도입이 상담사들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개인 민원을 여기서 해결해 버리려고 하면 끝이 없을 것 같다” “내가 행정 담당자도 아닌데 그런 얘기 아무리 해도 진척이 될 수 없다”고 했지만, 민원은 계속됐다. 한 남성은 “공무직인데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렇게 개인적 이해관계에 관한 얘기를 하면, ‘대통령이 바쁜 시간 내 가지고 다닐 가치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사회를 본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이 행사를 마무리하겠다고 하자, 안 된다며 소리 지르는 청중도 속출했다. 이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제가 대통령이긴 하지만 일선의 개별적 민원을 처리할 권한은 없다”며 “구청의 민원 문제는 아무리 얘기해도 제가 직접적으로 뭘 하면 저를 직권남용이라고 검찰이 잡아갈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해수부 이전과 행정수도 이전 등 충청권 현안을 꺼냈다. 이 대통령은 “오늘 여러분이 ‘해수부가 왜 부산으로 가느냐’는 얘기를 할 줄 알았다. 근데 왜 그 얘기는 아무도 안 하시나 모르겠다”며 “우리 대전, 세종, 충청 시민들께서 (해수부 이전을) 좀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실 세종 이전 문제를 언급하며 “최대한 빨리 한번 와보도록 하겠다”면서도 “헌법 개정 문제라 그렇게 쉽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사당을 세종에 짓는 것은 가능하다고 하니, 그건 속도를 내볼 생각”이라고 했다. 이날 행사는 애초 계획(1시간 30분)보다 1시간가량 더 진행됐고 KTV 유튜브 등을 통해 생중계됐다.


대통령실은 다른 지역에서도 타운홀 미팅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행보의 연속”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대통령이 직접 주민들에게 지역 현안을 듣는 모습을 보이면서 여당이 지방선거에서 유리한 입지를 가져가도록 하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주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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