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구독자만 수천만
허니비 스튜디오 이석로
구독자만 수천만
허니비 스튜디오 이석로
홍진경·선우용여·한가인·최화정·장영란·이지혜·이경규·노홍철의 공통점은? 첫째, 이름난 연예인. 둘째, 성공한 유튜버. 셋째, 이들의 유튜브 채널을 모두 한 PD가 기획했다. 홍진경 177만, 이지혜 98만, 최화정 74만, 장영란 71만, 노홍철 61만, 한가인 38만, 선우용여 30만…. 요즘 가장 잘나간다는 이들 유튜브 채널은 2년 반 된 젊고 작은 회사 ‘허니비 스튜디오’가 만들었다. 연예인보다 유명한 전속 일반인 인플루언서,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짠한형’ 등 웹 예능의 구독자 수를 합하면 수천 만에 달한다.
매일 혼자 비싼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간다는 선우용여, 자유를 갈망하는 육아맘의 리얼한 일상을 보여준 한가인 등 세간의 화제가 된 영상이 많다. 가장 최근에는 6·3 대선을 앞두고 주요 대선 후보 3명을 모두 인터뷰한 유일한 채널이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이었다는 데서 관심을 모았다. 철저히 지독하게 예능·오락을 지향하지만 뜻밖의 사회적 이슈·화제를 낳는다. 유튜브에서 먼저 주목받아 공중파를 비롯한 레거시 미디어로 진출하는 역전도 왕왕 일어난다.
허니비 스튜디오는 39살 이석로 PD가 이끌고 있다. 손대는 족족 ‘대박’을 터뜨리는 영감은 어디에서 왔을까. 의외로 그는 “교양 프로그램, 다큐를 본다”고 했다.
요즘 유튜브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회사 ‘허니비 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는 이석로 PD는 ‘대표’보다는 ‘PD’라고 불리길 원했다. 이 PD는 “제작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커머스(상업)를 얹히는 걸 구상하고 있다”면서도 “그래도 저는 사업가가 아닌 PD이고 싶다”고 말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
매일 혼자 비싼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간다는 선우용여, 자유를 갈망하는 육아맘의 리얼한 일상을 보여준 한가인 등 세간의 화제가 된 영상이 많다. 가장 최근에는 6·3 대선을 앞두고 주요 대선 후보 3명을 모두 인터뷰한 유일한 채널이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이었다는 데서 관심을 모았다. 철저히 지독하게 예능·오락을 지향하지만 뜻밖의 사회적 이슈·화제를 낳는다. 유튜브에서 먼저 주목받아 공중파를 비롯한 레거시 미디어로 진출하는 역전도 왕왕 일어난다.
허니비 스튜디오는 39살 이석로 PD가 이끌고 있다. 손대는 족족 ‘대박’을 터뜨리는 영감은 어디에서 왔을까. 의외로 그는 “교양 프로그램, 다큐를 본다”고 했다.
‘인간극장’만 봤다
-본론부터, 어떻게 모든 채널이 다 성공합니까.
“성공할 것만 하니까요.”
-그걸 어떻게 아나요.
“지금 담당하는 채널 중 한 분 빼고 모두 제가 먼저 찾아가서 유튜브 해보자고 설득했어요. 지금까지는 저의 감이 맞았던 거죠.”
-감은 타고난 건가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대중문화를 하는 사람으로서 대중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감독 중에는 ‘내건 남달라야 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마니악한(소수가 광적으로 좋아하는) 거, 신기한 거, 이해하기 어려운 걸 하고 싶어하는 거죠. 저는 완전 반대예요. 익숙한 거 90%에 신선한 거 10%면 됩니다. 그게 더 신선해요. 반대로 신선한 게 90%면 사람들이 안 봐요.”
-영감을 얻는 통로가 있을 것 같은데.
“음, 인문학에 빠졌던 것 같아요. 대학 때 ‘인간극장’을 90년대 처음 방영된 것부터 끝까지 다 찾아봤어요. 탈북자들, 8남매 키우는 엄마. 사람 관련한 다큐멘터리가 너무 좋았어요. 어떤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고 얄미움을 느끼는지, 타고난 눈치도 있겠지만 거기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요즘도 제 알고리즘에는 그런 휴먼 다큐가 주로 떠요.”
초등학교 5학년 생활기록부부터 장래희망에 ‘PD’라고 쓰여 있었다. 더 어릴 적엔 친구들을 웃기는 게 좋아서 개그맨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 웃긴 사람들과 웃기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을 더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와 소위 말하는 ‘언론고시’를 쳐 TV조선에서 예능 PD가 됐다.
-안정된 직장인데 유튜브로 갔네요.
“방송국에서 만드는 유튜브 웹 예능이 폭발적 인기를 누리던 때였어요. 그걸 제가 맡아서 해보니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사실 방송국이든 기업이든 큰 조직에 있으면 부품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유튜브는 처음부터 끝까지 커트 하나, 자막 토씨 하나 제가 다 할 수 있잖아요. 책임과 영광이 모두 나한테 오는 게 즐겁더라고요. 조연출 6년 하면서 배운 것만큼 유튜브 1년 하며 배운 게 많았어요.”
-바로 창업했나요?
“작은 제작사에서 제안이 왔어요. 방송국 PD가 다른 방송국으로 가는 경우는 꽤 있어도 작은 제작사로 가는 경우는 없거든요. 매우 이례적인 건데, 1년 정도 또 열심히 배우고 제 회사를 차렸습니다. 자유롭게 내 맘대로 해보고 싶었어요.”
2023년 1월이었다. 두 달 만에 흑자를 봤다. 8명으로 시작한 회사가 지금은 45명으로 돌아간다. 사무실도 두 번이나 확장 이전했다. 방송국에서 나와 처음 찾아간 게 홍진경씨다. 이 PD는 “웃기는 채널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홍씨가 “공부하는 채널을 하겠다”고 우겼다. “처음엔 무슨 공부냐고 생각했는데, 공부를 주제로 하니까 ‘국영수’만이 아니라 비즈니스, 여행, 인간관계 모든 걸 다 공부로 풀어낼 수 있더라고요. 니치한(좁은) 것 같지만 브로드하게 담을 수 있는 콘셉트가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이석로PD는 '공부왕찐천재' 채널에 종종 등장한다. 이PD와 홍진경씨의 '케미'도 이 채널의 또 다른 재미 포인트다./유튜브 캡처 |
-대선 주자를 모두 부르는 유일한 채널이 됐잖아요.
“그것도 사실 우연인데, 정치인 섭외가 의외로 쉽더라고요. 공부 잘하는 직업군을 고민하다가 정치인 중에 서울대 출신이 많으니까 한번 만나보자 했어요. 그런데 정치인들은 예능이나 유튜브에 너무 나오고 싶어해요. 20대 대선 때 안철수 후보 측에서 연락이 왔고, 똑같이 해야 하니 윤석열·이재명 후보까지 하게 됐어요. 이번에는 그 인연이 이어져서 자연스럽게 하게 된 거였죠. 별다른 기획을 한 게 아니에요.”
-논란도 있었는데요(홍진경씨가 대선 전날 해외 출장 중 특정 색상의 옷을 입어 비난을 받았다).
“정말 진심을 담아 사과했고 그대로입니다. 방송 때는 분량·자막·순서까지 얼마나 예민하고 까다롭게 준비했는지 몰라요. 저희로서는 정말 상상도 못 한 오해입니다.”
“교육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허니비 스튜디오 사무실은 모니터만 70개가 넘는, 파티션 없이 컴퓨터로 가득 채워진 뻥 뚫린 공간이 메인이었다. 오전 10시가 넘었지만 출근한 직원은 5명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탕비실 옆에는 2층 침대와 간이 침대가 놓인 방이 있었고, 사무실 입구에는 아예 배달 음식을 두고 가는 선반이 마련돼 있었다. 인터뷰 전 “부기를 빼려고 천국의 계단(운동 기계)을 타고 왔다”는 이 PD는 밑창이 두꺼운 멋스러운 로퍼를 신었고, 속속 출근하는 직원들도 나들이 가는 복장에 가까웠다.
-젊은 조직이네요.
“제가 제일 나이가 많고, 대부분 90년대생, 2003년생이 막내네요.”
-현실판 ‘MZ 오피스’군요.
“그런데 저는 매일 ‘빨리 퇴근해라, 주말에는 쉬어라’라는 얘기를 입에 달고 삽니다. 직원들이 안 시켜도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주말에도 나와서 일해요.”
-요즘 기업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네요.
“젊은 친구들한테는 비전을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확실하게 보상합니다. 몇몇은 아예 채널을 맡아서 하는데, 그 채널에서 나오는 수익을 일부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그러니까 월급보다 그 인센티브가 많은 경우가 나오더라고요. 참고로 저희 초봉이 업계 평균보다 훨씬 높은 편이에요. 그런 걸 보니 그 유명한 Z세대라고 해도, 자기 목표에 따라 움직이는 거죠.”
-후배를 키우면 경쟁자가 될 텐데요.
“저는 이 일도 어떻게 보면 교육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저와 4~5년 함께한 친구들은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친구들이 많아져야 우리 회사도 다음 레벨로 나아갈 수 있고 이 업계 자체가 굴러갈 수 있거든요. 일단은 잘 전수하고 교육하는 것, 인큐베이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D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모인 대학에서 요청하는 강의는 아무리 바빠도 무조건 가요. 우리 회사 1~2년 차 친구들이 너무 열심히 하는 게 그저 기특하고 감사합니다.”
허니비 스튜디오는 아예 경력직 PD는 뽑지 않는다고 한다. 인턴 PD를 뽑아 3개월 후 성과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시스템이다. 이 PD는 “미안할 정도로 ‘월급 루팡(일 안 하고 월급만 받는 사람)’은 없다”며 “한국에서 PD라는 직업이 굉장히 열악한데 조금이라도 상황이 나아져서 계속 인재가 유입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튜브 큰손의 다음 목표는
-실패의 경험은 없습니까. 설득에 실패한 인물은.
“음. 한 명 있습니다. 요즘 공중파 제일 많이 하는 연예인 중 한 분이에요. 하고 싶은데 지금은 너무 바쁘다셔서. 거절은 거절입니다만 기회가 있겠죠.”
-지금 기획 중인 건.
“하반기에 채널 두 개 정도를 더 시작할 것 같아요. 이제 거의 저희 환경에서는 최대치에 다다른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하게도, 이제는 저희에게 먼저 찾아오는 연예인·인플루언서들이 있는데 ‘죄송하지만 물리적으로 시간이 안 돼서 못 합니다’라고 거절하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요즘 고민 중인 채널도 있나요.
“대외비로 들어보세요. 음. 씨 어떨 것 같은가요?”
기자의 ‘감’이 시험에 드는 것 같기도 했다. 주저하며 답했다. “으음…. 아직 아닌 것 같아요.” 이 PD도 얕은 한숨 뒤에 말했다. “아, 자신은 있는데. 저의 가장 큰 다음 메가 히트가 그분일 것 같거든요. 예전에는 누군가 떠오르면 조금 고민하고 바로 들이댔는데, 이제 ‘내 욕심인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설득할 자신은 있는데, 좀 더 고민해볼게요.”
-최종 목표는 뭔가요.
“뜬금없다고 생각하실 것 같은데, 통일에 관한 다큐멘터리 찍는 거요. 제 소원이 뭐냐고 물으면 통일이에요. 은퇴하기 전에 북한 인권 다큐멘터리 만드는 게 제 꿈이에요.“
인문학과 사람에 빠져 지내다 보니 그 사람을 즐겁게 하는 감이 생겼다는 얘기였다. 다음 메가히트 채널도, 은퇴 전 만들 북한 다큐도 기대해볼 일이다.
[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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