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 바디우, 들뢰즈의 세계관 | 장용순 지음, 이학사(2023) |
독서가의 처지에서 프랑스 현대철학은 난해하다. 아니, 불친절하다고 말하는 게 적합할 듯하다. 멋져 보이고 세련된 듯싶지만, 알듯 말듯 헷갈리다 끝내 읽던 책을 덮기 십상이다. 친절한 안내자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평소 이런 푸념을 늘어놓은 경험을 한 독서가에게 맞춤한 책이 있다. 장용순의 ‘라캉, 바디우, 들뢰즈의 세계관’이 바로 그것이다.
지은이는 라캉과 들뢰즈는 불친절한 저자라며, 라캉은 읽히지 않을 의도로 썼고, 들뢰즈는 개념을 설명 없이 냅다 쓴다면서 프랑스 철학을 어려워하는 독서가를 달래준다. 그러면서 이들의 개념을 일일이 탐구하기보다는 그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라캉을 맨 앞에 내세우고 이 세계관을 직접적으로 이어받은 바디우를 두번째로 설명하고, 바디우와 대립하지만 세계관을 공유한 들뢰즈를 맨 마지막에 다룬다. 라캉의 세계관을 떠받치는 두 기둥은 실재계와 상징계다. 실재계는 무의식이자 혼돈이며 언어 이전의 상태다. 상징계는 의식이자 질서이며 규범의 세계다. 지은이는 도표를 자주 활용해 개념을 설명해 주는데, 실재계를 덮은 상징계에 두개의 구멍을 만들어 놓고, 작은 구멍이 ‘대상 에이(a)’이고 큰 구멍은 ‘증상’이라고 설명한다. 대상a는 상징계가 포섭하지 못한 대상으로 욕망을 직접적으로 충족시킬 수 없고, 충족될 것이라는 환상을 주는 것이라 설명한다. 큰 구멍은 증상으로 상징계를 뚫고 나온 실재계인데,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된 것의 귀환’을 떠올리면 된다.
바디우는 라캉의 정신분석과 집합론, 그리고 무한론과 정치적 주체론으로 자신의 철학 세계를 구축했다. 우주에 무한히 흩뿌려진, 셈할 수 없는 아주 작은 입자라는 뜻의 ‘다자’는 라캉의 실재계와 비슷한 개념이다. 하나로 셈해진, 한계와 테두리가 있는 ‘일자’는 라캉의 상징계에 해당한다. 라캉이 말한 상징계의 질서 체계를 바디우는 백과사전의 지식체계라 하면서 ‘상황의 상태’라 했다. 바로 이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을 ‘사건’이라 하는데, 라캉의 증상 이론을 이어받아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는 조짐을 가리킨다.
들뢰즈는 ‘잠재태’와 ‘현실태’로 라캉의 것을 변주한다. 잠재태는 에너지와 강도가 아직 발현되지 못한 응축된 상태다. 현실태는 조직화, 유기체를 뜻한다. 지은이는 들뢰즈의 세계관을 ‘생기론’이라 정리한다. 꿈틀거리는 생명적인 것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사유다. 잠재화, 탈유기체화, 탈주, 미분은 ‘탈영토화’와 같은 개념으로 기존의 체계(현실태)에 고착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증상과 사건의 개념을 들뢰즈는 ‘특이성’이라 했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
지은이의 친절한 해설에서 알 수 있듯 라캉, 바디우, 들뢰즈에게 공통된 것은 고착되지 않아야 한다는 사유다. 상징계를 발전시키고 고착화하는 것보다 사회질서가 무너지면서 실재계로 가는 몰락이나 붕괴가 발생하고 이후 새롭게 이루어지는 창조를 긍정하는 철학인 셈이다. 이들이 한결같이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 있는 이유를 알 법하다. 지은이를 따라가다 보면 프랑스 현대철학을 호사가나 현학적인 관점에서 읽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새삼 알게 된다. 오늘을 강고하게 지배하는 질서를 깨고 다른 세계의 출현을 꿈꾸는 사람이 알아야 할 철학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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