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먹으로 번지듯 그린 기법… 에도시대 화풍 바꾼 조선의 화가

조선일보 허윤희 기자
원문보기

먹으로 번지듯 그린 기법… 에도시대 화풍 바꾼 조선의 화가

서울맑음 / -3.9 °
리핏 하버드대 교수가 말하는 이암
강아지 작품, 17세기 日에 큰 영향
이암, '화조구자도'. 조선 16세기 중반. 종이에 먹과 엷은 색. 86.0×44.9cm. 개인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이암, '화조구자도'. 조선 16세기 중반. 종이에 먹과 엷은 색. 86.0×44.9cm. 개인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에는 조선 전기 화가 이암(1507~1566)의 동물 그림이 여러 점 전시 중이다. 봄날 꽃나무 아래 어울려 노는 강아지 세 마리를 그린 걸작 ‘화조구자도(花鳥狗子圖)’, 어미 개가 새끼 강아지들을 돌보는 ‘모견도(母犬圖)’, 흰 꽃 만개한 나뭇가지 아래 강아지들이 쉬고 있는 ‘화하구자도(花下狗子圖)’ 등이 걸렸다. 방탄소년단 리더 RM이 전시장에서 찍은 ‘화하구자도’ 사진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면서 해외 팬들의 방문도 급속히 늘어났다.

방탄소년단 RM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게시해 화제가 된 이암의 '화하구자도'.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 인스타그램에 남긴 해외 팬들의 반응. /국립중앙박물관

방탄소년단 RM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게시해 화제가 된 이암의 '화하구자도'.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 인스타그램에 남긴 해외 팬들의 반응. /국립중앙박물관


미술사학자 유키오 리핏 하버드대 교수는 “동아시아 미술사에서 이암이 중요한 이유는 당시 한국의 왕실 회화를 일본에 전파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 회화사 분야의 권위자인 그는 국립고궁박물관 개관 2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참가차 방한했다. 지난달 26일 본지 인터뷰에서 그는 “이암이 즐겨 그린 강아지, 매 등은 당시 왕실에서 주로 사용하던 회화적 기물이었고, 터럭을 한 올 한 올 묘사하는 대신 먹이 자연스럽게 번지게 그린 기법은 일본 에도 시대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유키오 리핏 하버드대 교수. /조인원 기자

유키오 리핏 하버드대 교수. /조인원 기자


왕실 화가인 이암은 세종대왕의 아들인 임영대군 이구의 증손이다. 대표작인 보물 ‘화조구자도’에서 단잠에 빠진 누렁이와 윤기가 반들반들 흐르는 검둥이는 얼굴과 몸통에 명암을 표현했고, 발은 가는 선으로 윤곽만 간략하게 그렸다. 리핏 교수는 “이암의 강아지 그림은 17세기 초 일본에 들어와 유통되면서 에도시대 저명한 화가들에게 영감을 줬고, 다양한 아류작을 파생시켰다”며 “일본 화가들도 이암의 영향을 받아 평면적 채색법과 명암 효과를 썼다”고 했다.

전시장에선 이암의 매 그림 ‘가응도(架鷹圖)’와 함께 일본 화가 가노 탄유가 스케치한 이암의 매 그림들을 함께 볼 수 있다. 가노 탄유가 당시 일본에서 유통되던 매 그림을 감정하며 남긴 스케치 두루마리다. 리핏 교수는 “가노 탄유는 에도시대 대표적 화파인 가노파를 대표하는 화가로 이암을 굉장히 존경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암 그림을 모본 삼아 작업을 많이 했다”고 했다. “송나라 휘종 그림이 궁극적인 모본이었지만 당시엔 휘종의 진품을 찾기가 어려웠고, 이암의 회화가 휘종 것으로 잘못 알려진 경우도 많았다. 지금도 일본에서 뒤늦게 이암 작품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암, '가응도'. 일본민예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이암, '가응도'. 일본민예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일본 에도시대 화가 가노 탄유의 매 그림 스케치. 조선 전기 화가 이암의 '가응도'를 보고 똑같이 그렸다. 개인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일본 에도시대 화가 가노 탄유의 매 그림 스케치. 조선 전기 화가 이암의 '가응도'를 보고 똑같이 그렸다. 개인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리핏 교수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일본 왕실의 보물 창고인 ‘쇼소인(正倉院)’ 유물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쇼소인엔 756년 쇼무(聖武) 일왕이 세상을 떠나자 부인 고묘왕후가 명복을 빌며 바친 애장품 등이 소장돼 있다. 그동안 국내외 학계는 쇼소인 소장품에 대해 실크로드를 통한 국제 교류의 산물이라는 측면에서 다뤄왔다.

반면 리핏 교수는 “쇼소인 보물은 8세기 야마토 정권의 군주로서 쇼무 일왕의 영광과 권위를 반영하는 동시에, 보살이 되길 열망한 절실한 불교 신자로서 그 지위를 거부한 포기의 대상이기도 했다”고 이중적 의미를 부여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온 화려한 오현(五絃) 비파는 ‘자신(쇼무 일왕)에게 바친 조공품’이면서 동시에 그가 보살이 되기 위한 여정에서 포기한 쾌락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리핏 교수는 “흔히 쇼소인 유물의 유통을 일차원적으로 해석하지만, 고대 실크로드 무역로는 단순한 직선이 아니라 복잡한 원(圓) 구조로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허윤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