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불치병’ 전국 급속 확산
걸리면 소나무·잣나무 100% 고사
지난해 90만→올 140만그루로 급증
과학적인 방제·예방법은 알아
예산·인력 적시 투입이 관건
단체장 관심 따라 희비 엇갈려
걸리면 소나무·잣나무 100% 고사
지난해 90만→올 140만그루로 급증
과학적인 방제·예방법은 알아
예산·인력 적시 투입이 관건
단체장 관심 따라 희비 엇갈려
지난달 30일 서울양양고속도로 춘천 가는 길. 남양주 톨게이트를 지나자 도로 양쪽으로 갈색으로 말라 죽은 나무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강촌IC를 지나자 부쩍 늘어났다. 산봉우리 전체가 거의 갈색으로 물든 곳도 있었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려 죽은 것이다. 온통 푸르러야 할 요즘 산 곳곳에서 왜 이렇게 나무들이 누렇게 말라 죽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고속도로 인근인 춘천시 남산면 행촌리 야산에서 갈색으로 변한 나무에 가까이 가보았다. 주변에 굵기 30㎝ 안팎의 아까운 잣나무들을 베어내고 표시해 둔 곳이 많았다. 한국임업진흥원 최재원 책임이 드론을 띄우자 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들이 보다 선명하게, 예상보다 훨씬 많이 보였다. 드론으로 살펴 감염 나무를 찾은 다음 매개충이 활동하지 않는 10월부터 4월까지 제거 작업을 하는 것이 기본적인 재선충병 처리 방식이다.
나무를 베어 토막 낸 다음 비닐로 덮어 훈증 처리한 것도 군데군데 보였다. 북부지방산림청 김인선 병해충방제팀장은 “도로가 가까우면 베어낸 나무를 밖으로 빼내 파쇄 처리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현장에서 약품 처리해 덮는 훈증 처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드론으로 본 서울양양고속도로 강촌IC 인근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행촌리 숲. 갈색으로 보이는 나무들은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려 죽은 것들이다. 강촌IC에서 남춘천IC까지 가는 내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강촌IC는 서울 경계에서 50여㎞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산림청 임업진흥원 |
고속도로 인근인 춘천시 남산면 행촌리 야산에서 갈색으로 변한 나무에 가까이 가보았다. 주변에 굵기 30㎝ 안팎의 아까운 잣나무들을 베어내고 표시해 둔 곳이 많았다. 한국임업진흥원 최재원 책임이 드론을 띄우자 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들이 보다 선명하게, 예상보다 훨씬 많이 보였다. 드론으로 살펴 감염 나무를 찾은 다음 매개충이 활동하지 않는 10월부터 4월까지 제거 작업을 하는 것이 기본적인 재선충병 처리 방식이다.
나무를 베어 토막 낸 다음 비닐로 덮어 훈증 처리한 것도 군데군데 보였다. 북부지방산림청 김인선 병해충방제팀장은 “도로가 가까우면 베어낸 나무를 밖으로 빼내 파쇄 처리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현장에서 약품 처리해 덮는 훈증 처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서울 남산 소나무까지 위협
전국 소나무·잣나무 등 침엽수가 소나무재선충의 공습을 받아 죽어가고 있다. 가장 극심한 지역은 경북과 경남이다. 경북 포항·경주·안동, 경남 창녕·밀양, 울산 울주군 등에서 소나무가 한 해 5만그루 이상 재선충병에 걸리고 있다. 경주시는 오는 10월 APEC 정상 회의를 앞두고 있는데 재선충병이 가장 심한 지역 중 한 곳이다. 강원도 춘천·홍천, 경기도 양평과 광주·포천 등 서울 주변 시군에서도 걸린 나무들이 늘어나고 있다. 영남을 휩쓸고 강원·경기를 거쳐 서울로 진격하고 있는 모양새다.
재선충은 북미 원산지인 외래 침입종이다. 지난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1600만그루 이상의 나무들이 재선충에 쓰러졌다. 한때 재선충이 잡히는 듯했으나 2020년 신종 코로나 확산 이후 방제를 소홀히 하면서 2021년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감염목 수가 2021년 30만그루, 2022년 37만그루에서 2023년 106만그루로 세 배 가까이 뛰었다. 2024년의 경우 90만그루로 잠시 주춤하더니, 올해 140만그루(추정)로 다시 급증하는 추세에 있다.
그래픽=양진경 |
소나무재선충병은 한번 감염된 나무는 100% 고사(枯死)하는 ‘소나무 불치병’이다. 재선충은 소나무 등 침엽수에 기생하는 약 1㎜ 크기의 실 같은 선충으로, 매개충(솔수염하늘소, 북방수염하늘소)의 몸 안에 서식하다가 새순이나 가지를 갉아 먹을 때 상처 부위를 통해 나무에 침입한다. 침입한 재선충은 빠르게 증식해 수분·양분의 이동 통로를 막아 나무를 죽게 만든다. 치료약이 없어 소나무는 감염 3개월에서 1년 만에, 잣나무는 6개월에서 2년 6개월 내에 100% 고사한다.
우리나라는 산림의 소나무 구성 비율이 25%로 상당히 높고 단순림이 많다 보니 재선충병이 한번 발생하면 크게 확산하는 특성이 있다. 게다가 기후 변화로 재선충병을 옮기는 매개충의 활동 기간과 개체 수가 늘어나면서 전국적인 확산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서울에서도 소나무재선충병이 소규모로 발생한 적이 있다. 지난 2007년 노원구, 2014년 성북구에 이어 2015년 남산에서도 발견됐다.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까지 걸린 적이 있는 것이다.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청정 지역이었지만 2023~2024년 서초구 청계산 등에서 잣나무 12그루, 노원구 수락산 소나무 3그루에서 발생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까지 재선충병 발생 지역과 주변 소나무류 29만여 그루에 예방 주사를 놓았다. 예방 주사를 놓으면 2년 동안은 재선충병에 걸리지 않는다.
◇예산·인력 투입하면 잡을 수 있어
우리보다 재선충이 먼저 유입된 일본(1905)과 중국(1982)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꼭 필요한 지역만 빼고 사실상 소나무 방제를 포기한 상태다. 일본은 1997년부터 ‘반드시 지켜야 하는 소나무림’을 선정해 방제 노력을 집중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1971년에야 재선충 확산의 원인이 선충이라는 게 밝혀진 것도 일본이 재선충에 당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들의 소나무 사랑이 유별난 데다 재선충병을 어떻게 예방하고 처리해야 하는지 과학적인 방법도 다 파악했기 때문이다. 감염된 소나무를 찾아내 신속하게 베어내는 것, 그리고 보호해야 할 나무가 있으면 예방 주사를 놓는 것이 그 방법이다. 이를 위해 꾸준히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선충 피해가 극심한 지역은 이 중 하나 이상을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준환 전 국립수목원장은 “지자체장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지원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감염된 나무를 제거하는 단기 대책뿐만 아니라 피해가 심한 지역을 중심으로 수종 전환 등 근본적인 해결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선충병 피해 10년 새 96% 줄인 제주도
제주도는 소나무재선충병 피해 억제에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한때 제주도에선 재선충병으로 한 해 50만그루 이상의 나무가 고사했지만 근래 2만그루대로 억제하는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는 2004년 처음으로 소나무 12그루가 재선충병에 걸렸다. 이후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2014년 피해목이 54만6000그루로 늘었다. 2016년과 2017년엔 한라산국립공원 내 해발 900m 지점까지 재선충병 감염 고사목이 발생해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한라산이 활엽수 위주여서 해안 지역 곰솔 위주로 재선충병이 퍼진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래픽=양진경 |
이후 제주 전역에서 대대적인 재선충병 감염목 제거 작업이 펼쳐졌다. 제주에서 재선충병 방제를 위해 2004년부터 제거된 나무는 268만2000그루나 된다. 그 결과 2020년 감염목이 4만6000그루로 줄었고, 2021년부터는 연간 감염목이 2만4000~3만그루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감염목이 최다 발생 대비 96% 감소한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 남영우 박사는 제주도의 성공 요인으로 “방제 전략을 체계적으로 수립하고, 피해 지역에 맞는 베어내기 방법을 시행한 데다 폭넓은 예방 접종 실시, 방제 효과를 높이는 철저한 사후 관리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염된 나무를 완전히 제거해야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스페인도 재선충 방제 모범 국가로 꼽히고 있다. 1999년 이웃 포르투갈에 소나무재선충이 상륙해 10년도 되지 않아 전 지역으로 확산했다. 스페인은 포르투갈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감염된 소나무를 찾아 과감하게 베어내는 데 꾸준히 예산을 투입해 저지에 성공했다.
※재선충병 걸린 나무와 일반 고사목 차이
재선충병에 걸려 말라 죽은 잣나무. 재선충병에 걸리면 잎이 아래로 처지면서 죽는다 |
재선충병으로 고사한 나무와 그냥 설해 등으로 고사한 나무를 구별할 수 있을까.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잎이 아래로 처지면서 고사하면 재선충병에 걸린 것이고, 잎이 위로 향하면서 마른 것은 걸린 게 아니다. 정확한 것은 현미경 관찰이나 유전자 검사를 해야 알 수 있다. 산림청은 비발생 지역에서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류를 발견해 신고할 경우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김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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