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매일경제 언론사 이미지

[이을용 인터뷰上] 은퇴 한 달,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다

매일경제 임성일
원문보기

[이을용 인터뷰上] 은퇴 한 달,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다

속보
올해 수출 사상 첫 7천억 달러 달성…전세계 6번째
고향팀 강원에서 보낸 이을용의 지난 3년은 그 어떤 시간보다 치열했다. 선배로서 주장으로서 팀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해야한다는 책임감이 컸기 때문이다.

고향팀 강원에서 보낸 이을용의 지난 3년은 그 어떤 시간보다 치열했다. 선배로서 주장으로서 팀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해야한다는 책임감이 컸기 때문이다.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10월23일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대구전을 통해 공식 은퇴한 뒤 꼭 한 달이 지났다. 필드를 떠났건만 선수 때보다 더 바쁘다는 이을용의 표정은 시종일관 맑았다. 밝다 보다는 맑다에 더 어울리는 표정과 말투였다. 은퇴 한 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시간을 퍽이나 알차게 쓴 것 같은 이을용이었다.

“지난 시간들을 정리하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준비하기 위해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들 중 잊을 것은 잊고 미래를 위해 다시 새겨들을 것 새겨들으려고 시간을 쪼개고 있는데, 정신없네요.”

본인 말을 다시 빌려, 다가올 시간들에 대한 준비를 듣는 것보다 지난 시간들의 정리부터 듣는 게 순서다 싶었다. 이을용은 “강원에 처음 올 때(2009년)부터 이곳을 끝으로 은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3년째이던 올 10월에 구체적으로 마음을 먹었죠. 그때 와이프한테 이야기했어요. 이제 그만 놓자고. 집사람은 서운해 했죠. 1~2년쯤은 더 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라고 한 뒤 “저라고 왜 미련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이쯤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라며 결정까지의 과정을 짚었다.

이을용의 고향은 강원도 태백이다. 그리고 2009년, 고향에 프로팀이 창단했을 때 이을용은 모든 조건이 나았던 소속팀 FC서울의 유니폼을 벗고 신생팀 강원FC로 적을 옮겼다. 이을용은 “고향팀에서 그냥저냥 있다가 마무리하겠다는 마음은 결코 없었습니다. 편하게 있으려면 좋은 선수들이 많고 처우도 좋은 FC서울에 그냥 있었어야죠. 표현이 거창해서 좀 그렇지만, 희생하겠다고 간 것”이라 했다. 그런데 마음먹었던 희생의 시간이 적잖이 힘들었단다.

“아무리 신생팀이지만 3년 정도 지나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답이 더 안 나오더라고요. 선수 생활 꽤 오래하면서 나름대로 많은 일을 겪었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습니다. 와, 아무래 안 좋아도 대충 3연패 정도하면 사슬을 끊었는데 이건 끝도 없이 지니까 맥이 빠지죠.”

패배가 길어지니 자신도 당황스러웠고 점점 패배의식에 젖어드는 후배들을 보니 또 갑갑했다. 이을용은 “팀이 추락하면, 코칭스태프가 해줄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습니다. 반전을 위해 내부적으로 어떤 단결된 힘이 필요한데, 그땐 선배들 역할이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괴로웠죠. 고참으로서 주장으로서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컸어요”라고 솔직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을용의 괴로움은 그가 전한 에피소드에서 잘 묻어난다. 이을용은 불교 집안이라 했다. 하지만 본인이 그렇게 독실한 불자는 아니었단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기대던 자신을 보았다고 한다.

“축구선수로서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강원에서의 지난 3년은 내 힘으로 해결해야할 문제였기에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 풀어줄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외롭고 고달팠어요. 오죽했으면 안 가던 절에도 나갔겠습니까. 무언가라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간이 날 때마다 들린 한 암자의 노스님과 나눈 선문답도 전해줬다. 이을용은 “그분과 많은 대화를 했어요. 결국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지지 말라는 충고였죠.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아등바등 한다고 해결될 세상사도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물 흐르는 대로 살라는 충고셨습니다”라며 진지하게 떠올렸다. 그러다 이내 표정이 익살스러워지더니 “맑은 물이 어느 순간 흙탕물이 되고 그 흙탕물도 언젠가는 맑아진다는, 아주 좋은 말씀이셨죠. 근데요. 솔직히 그건 그 스님이야기고 난 당장 죽겠었거든요”라며 호탕하게 웃어버렸다. 장난스레 회상했으나 당사자는 적잖이 힘들었다는 방증이다.


이을용의 어깨에는 그만큼 큰 짐이 있었다. 그 짐이란 성적에 대한 압박이자 리더로서의 책임감이었다,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란 끈이 이을용의 발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꼭 자신이 해결해야한다는 마음가짐이 족쇄를 채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이을용은 어렵사리 그 짐을 내려놓는 길을 택했다. 자신을 위해 그리고 후배를 위해. 이을용은 “미련이 남지만 여기서 그만 놓자 라고 결정내린 것은 그래서입니다”라고 했다. 노스님의 충고를 받아들인 셈이다. 그리고 이을용은 “그래도 다른 것을 남겼으니까요”라며 웃었다.

원하는 성적을 팀을 위해 선사하지는 못했지만 의미 있는 선례를 남긴 이을용이다. 이을용이 “난 행운아”라고 표현한 부분으로, 좋은 만남보다 더 어려운 따뜻한 헤어짐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을용은 10월23일, K리그 역사 속에 전례를 찾기 힘든 은퇴식의 주인공이 됐다. 성대했다. 스스로 언급하기 민망한 부분이라 대신 입을 빌렸다.

이을용과 십 수 년을 함께했던, 터키 진출부터 다시 K리그로 컴백(FC서울)해 이후 고향팀 강원으로 가는 길까지 늘 동행했던 에이전시 O&D의 김양희 대표는 “특정 선수의 은퇴식이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을용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함께 감격스러워했다. 김 대표는 “하프타임 때 형식적으로 감사패하나 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경기 전체가 이을용을 위한 무대였다. 강원 팬 모두가 진심으로 이을용을 보내주었다. 보는 내내 눈물이 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을용 역시 “정말 고향에서 마무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후배들에게 이런 선례를 남겼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라고 표현했다. 대부분의 노장 선수들이 커리어 막바지가 되면 구단과 마찰을 빚어 떠밀리듯 팀을 떠난 것과는 분명 대조적인 장면이었다.

이을용은 “제가 유달리 잘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 테죠. 그래서 더 고맙고요. 비록 좋은 성적을 남기지는 못했으나 강원이라는 구단과 후배들에게 이런 의미 있는 그림을 그려놓고 왔다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라고 진심어린 감사를 표했다.

누군가에게는 고향팀에서 그저 쉬엄쉬엄 은퇴를 준비한 것처럼 보였던 강원FC에서의 지난 3년은 이을용 커리어의 그 어떤 3년보다 치열했다. 강원도 이을용에게 고마웠을 터다. 이제 이을용은 그 부담과 미련을 어느 정도 내려놓았다고 했다. 지난 한 달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씩 조금씩 털어버렸다고 했다. 우승트로피보다 값진, 따뜻한 뒷모습만으로도 이을용의 마지막은 행복했다. 그 행복을 품은 채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선 이을용이다. 그의 말마따나 이제 축구인생 1막이 끝나고 2막이 시작되는 까닭이다. <계속>

사진=김영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