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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이후 주가 떨어지면 경영진 배임죄?…재계 '소송 남발' 우려

뉴스1 박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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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이후 주가 떨어지면 경영진 배임죄?…재계 '소송 남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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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개정 '이사 충실의무 대상 확대'…'대규모 M&A·R&D 되겠나'

외국계 헤지펀드 경영권 공격 수단 가능성…재계, 보완 입법 필요



]국회 본회의장. 2025.6.27/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국회 본회의장. 2025.6.27/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1. A 사 K 대표이사는 B 회사에 대한 인수합병(M&A)을 계속 염두에 뒀다. B 회사를 인수하면 시너지 효과가 분명해 보였다. 다만 B 회사가 개발 중인 신사업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한동안 연구개발(R&D) 비용 지출이 불가피하다. 법무팀에서는 B 사를 인수할 경우 주주들의 반발과 소송이 제기될 우려가 있다고 보고했다. 결국 K 대표는 B 사 인수를 포기했다.

#2. C 사 L 대표이사는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회사의 미래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는데 이로 인해 피해를 봤다면서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 배임죄 소송을 당했기 때문이다. L 대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를 단행한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상법 개정안이 3일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앞으로 이런 상황에 직면할 기업들이 많아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상법 개정안에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 때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의 합산 지분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전자 주총 의무화, 사외이사의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하고 비율을 확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경제계는 윤석열 정부 당시에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최후의 수단에 기대 방어를 해왔는데 되레 더 강력한 내용으로 상법이 개정되면서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앞으로 대형 M&A 쉽지 않아…로펌·투자회사만 노 나게 됐다"

한 재계 관계자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주주들의 소송이 무서워서 앞으로 경영진이 대형 인수합병(M&A)을 추진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법 개정으로 인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기존의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돼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하도록 하는 의무가 생겼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의사 결정을 할 때 일반 주주에게 미칠 영향도 염두에 둬야 한다.

재계는 '이사 충실의무 확대'로 소송이 남발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양한 주주들의 이익을 합치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영 판단을 하는 과정에서 주주가 불이익을 받았다고 판단해 이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과 배임죄 고발 등을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상법 개정으로 줄소송이 이뤄질 것이기에 속되게 이야기하면 로펌과 투자회사만 노가 나게 됐다"고 꼬집었다.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기업들이 소송 우려 때문에 투자 결정 등을 제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문제여서 인지하기 어렵겠지만 분명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런 소송 문제는 국내 소액주주의 주주가치 실현보다 외국계 헤지펀드가 경영권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도 문제다. 한 재계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를 비롯한 투기 자본이 기업을 흔드는 주요 방법의 하나가 소송"이라며 향후 주요 기업에 대한 소송이 빗발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계는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에 따른 소송 가능성은 결국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의사 결정을 할 때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결국 투자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은 1987년까지 누적적자가 1400억 원이 발생했는데 주주들이 적자 발생을 문제로 삼아 소송을 남발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은 없었을 것이란 설명이다.


경제계에 따르면 실제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에선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도 포함해 왔지만 M&A나 주식 발행 등 각종 기업 활동 과정에서 주주들의 소송이 빈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테슬라 등 델라웨어주 소재 기업들이 본사를 이전하는 등 부작용이 늘면서 결국 지난 3월 주주 권리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회사법을 개정했다고 한다.

외부에 취약해진 韓 기업…"보완 입법 필요"

이번 개정안에선 감사위원 선임 때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 룰'도 포함됐다. 기업에 대한 최대 주주의 과도한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다. 현재는 사내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출할 경우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해 3% 룰을 적용하고 있는데 사외이사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하도록 했다. 경제계에선 투기 자본의 국내 기업에 대한 경영권 공격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결국 투기자본이 추천한 이사가 선임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결국 회사의 주요 의사 결정을 외국 헤지펀드 등에 의해 방해를 받을 수 있고 그룹의 소유구조 변경과 투자자금 적시 조달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게다가 투기자본이 회사의 기밀까지 빼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개정안으로 인해 상장사의 사외이사 명칭이 독립이사로 바뀌고 비율도 3분의 1 이상으로 높이게 됐다. 대기업의 경우 의사 결정이 지연될 수밖에 없고 중소·중견 기업은 독립이사를 물색하는 데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사외이사 요건을 맞추기가 지금도 힘든 상황인데 의무적으로 3분의 1 이상을 채워야 하기에 중소중견 기업의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현재도 사외이사 자격 요건과 결격사유가 엄격해서 후보군이 부족한 실정이다. 결국 전문성이 부족한 관료나 학계 출신 인사들이 대거 독립이사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현장 주주총회와 병행하는 전자 주총 도입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재계는 의무가 아닌 주주들의 선택, 기업 재량에 맡기는 방식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해킹이나 시스템 오류 등의 플랫폼에 대한 검증 작업이 필요하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각종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전자 주총 중에 서버가 다운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경제계는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치권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하는데 이런 내용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곳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며 "향후에 부작용이 확인되면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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