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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무리한 상법 개정에 빌미 주는 일탈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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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무리한 상법 개정에 빌미 주는 일탈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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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저평가 기업으로 꼽히는 태광산업이 자사주 전량(지분율 24.41%)과 바꿀 수 있는 교환사채(EB) 3200억원어치를 발행하기로 해 소액주주들이 반발하고 있다. 태광산업은 교환사채로 확보한 자금을 신사업에 투자한다고 한다. 하지만 태광산업은 지난 1분기 말 기준으로 1조4000억원의 현금성 자산과 지분 매각 대금 9000억원 등 충분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새로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없다.

일부 기업 대주주들이 상속·증여세 부담을 줄이려 주가를 일부러 낮게 유지하려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실제로 태광산업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21배로 코스피 평균(1.03배)보다 훨씬 낮다. 그만큼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태광산업 지분 5.95%를 보유한 2대 주주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상법이 개정되면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될 수 있는데 이를 피하려는 꼼수”라고 했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가가 오르는 효과가 있는데 태광산업은 자사주 소각을 못하게 만들어 주가 상승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상법 개정에 크게 우려하고 있다. 여기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현재 상법 개정안대로 주주에 대한 이사회의 의무가 추가되면 소액주주 소송이 남발돼 투자·인수합병 같은 전략적 결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전략적 투자나 인수합병을 소송이 두려워 못하면 그 기업은 쇠락한다. 그 결과는 주가 하락으로 주주들이 피해를 본다. 하지만 그런 한편에서 태광산업 사례처럼 대주주의 비상식적 행태로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 또한 잇따르고 있다.

얼마 전에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무려 3조6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가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샀다. 작년엔 두산그룹이 매년 수천억 원 흑자를 내는 두산밥캣을 만년 적자 회사인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려 했다가 주주들이 반발해 무산됐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상법 개정 찬성 여론이 높아졌다. 최근 국민의힘도 상법 개정에 “전향적 검토”로 입장을 바꿨다. 일부 일탈 기업들이 상법 개정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계 전체의 합리적 우려까지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균형 잡힌 시각과 장기적 고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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