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조성진·임윤찬’ 노리는 무서운 10대들

차세대 韓 음악 영재들 활약

“라이벌 의식 같은 건 전혀 없고 무척 존경하는 선배님이에요.”

올해 프랑스 롱 티보 국제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김세현(18)군이 수줍게 말했다. 지난 2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간담회 자리. 2022년 18세의 나이로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던 임윤찬(21)과 비교한 적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짓궂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김세현은 “미국 보스턴에서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협연을 보았는데 ‘이보다 더 잘 칠 수 있을까’ 싶었다”고 했다.

김세현은 이미 2023년 클리블랜드 국제 청소년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주목받았던 차세대 유망주. 피아니스트 임동혁(2001년)과 이혁(2022년) 같은 우승자를 배출한 명문 대회인 롱 티보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한몸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예원학교에 다니다가 도미(渡美), 하버드대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복수 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평소 보들레르·실비아 플라스의 시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고 김광석·이문세의 노래를 즐겨 듣는 ‘애늙은이’ 취향이다. 그는 “글과 음악은 예술가의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하나로 통한다. 그렇기에 대학에서도 영문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김세현이 2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작곡가 포레의 곡 등을 연주하고 있다(맨 위 사진). 김세현은 올해 프랑스 롱 티보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래픽=김성규

‘포스트 조성진·임윤찬’ 세대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피아노·바이올린 같은 기악 분야에서 한국 음악 영재들의 눈부신 활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두드러진 변화 세 가지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우선 콩쿠르 입상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지난 3월 롱 티보 콩쿠르에서 우승한 김세현에 이어 지난 5월 신영호(18)군도 더블린 국제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2023년 반 클라이번 청소년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홍석영(18)군까지 이 ‘차세대 3인방’은 모두 2007년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피아니스트 이정우(17)군 역시 지난해 독일 에틀링겐 청소년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현악에서도 2023년 티보르 버르거 콩쿠르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17), 지난해 비오티 콩쿠르 2위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김현서(15)양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피아니스트인 신수정 전 서울대 음대 학장은 “요즘에는 기교와 음악성은 물론이고,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관까지 갖춘 ‘무서운 아이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둘째로 차세대 유망주들이 쏟아지다 보니 이들을 과감하게 독주자나 협연자로 무대에 세우는 경우도 늘고 있다. 전통적인 등용문인 금호영재콘서트는 물론, 최근에는 예술의전당과 서울시향까지 문호가 넓어졌다. 예술의전당은 최근 100석 규모의 소극장인 인춘아트홀에 10~20대 차세대 연주자들을 세우는 ‘스페셜 더 넥스트’ 연주회를 열고 있다. 더블베이스 유시헌(8월 14일),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11월 15일)과 임도경(11월 20일) 등이 이 무대에 오른다. 올 들어 서울시향도 신년 음악회와 키즈 콘서트, 강변 음악회 등을 통해서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김연아(11), 첼리스트 이재리(16), 트럼페터 이상욱(15) 등과 협연했다.

마지막으로 음악 영재들의 해외 진출에도 가속이 붙었다. 김세현은 최근 음반사 워너클래식스와 계약을 맺고 내년 데뷔 음반을 발매할 예정이다. 알랭 랑스롱 워너클래식스 대표는 “롱 티보 콩쿠르 당시 김세현의 연주를 보았는데 1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숙함과 독창성을 갖추고 있다”고 평했다. 김세현은 7월 14일 프랑스 혁명 기념일에 파리 에펠탑 앞 광장 무대에서 피아노 독주를 선보이고, 7월 23일에는 프랑스 라 로크 당테롱 페스티벌에도 참가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 역시 최근 영국 클래식 매니지먼트사인 해리슨 패럿과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음악 칼럼니스트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조성진·임윤찬 이후에도 차세대 연주자들이 쏟아지면서 한국 음악계의 ‘세대교체’ 바람 역시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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